[특별기획]세월호 침몰에서 참사 키운 부실 대응까지..'비극의 재구성'

최민영 기자 입력 2014. 5. 7. 19:30 수정 2014. 12. 1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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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2014.09.19.17:00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2분. '119 신고전화'로 한 고교생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달됐다. "살려주세요!".

전날 밤 9시 인천항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고 있었다. 당시 세월호에는 안산 단원고 2학년생 325명, 다른 승객과 선원 등 모두 476명(이 숫자는 아직도 불분명하다)이 타고있었다.

4월16일 오전 9시 30분. TV화면 속 세월호는 수면 위에 떠 있었다. 국민들은 믿었다. "시간은 충분하다. 승객들은 순조롭게 구출될 것이다"라고. 그런데, 그런 믿음이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차라리 '속수무책'으로 당한 사고라면 "무엇을 어찌할 수 있겠는가"라고 위안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어른들은 세월호가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아이들이 '수장'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아이들이 죽어갈 때 국가는, 어른들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도대체 '이런 나라'가 어디 또 있을까. 승객 304명을 침몰하는 여객선에 남겨둔 채 선장과 선원은 도망을 쳤다. 구조·구난에 나서야 할 함정과 크레인선발은 '안전상의 문제가 있다' '승인이 안났다'는 등의 이유로 아예 출발을 않거나, 늑장 출발을 했다. 첨단장비 사용은 미루고, 도움을 주겠다는 외국의 제의는 뿌리쳤다. 아이들이 배 안에서 사투를 벌일 때 대한민국의 어른들은 폭탄주 술판을 벌이고, 실종자 명단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식음을 전폐한 부모들 옆에서 라면을 먹고, 정부에 대한 비난에 '빨갱이'라며 색깔공세를 폈다. 대한민국 언론은 '앵무새'처럼 확인도 안된 정부 발표를 그대로 내보냈다. 일부는 치명적 오보였다. 그러는 사이 304명의 아이들과 국민들은 차례로 숨져갔다.

'대한민국'은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미래를 꿈꾸던 아이들과 함께 '국가에 대한 국민의 믿음'은 거친 '맹골수도'에 잠겨버렸다.

국민 모두는 '먹먹'해졌다. 진도로, 안산 단원고로, 서울광장으로 수백만명이 달려가 추모하고 울고, 노란 리본을 달고…. 그런데도 슬픔은 사라지지않는다. '지켜주지 못한 죄' '살려내지 못한 죄' '살리려고 죽을 힘을 다하지 못한 죄'…. 온 국민 모두가 우울증에 빠져있다.

대한민국은 '2014년4월16일'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가 1997년 외환위기 때와도 같은 상흔을 남길 것이며, 충격의 수준은 6.25 전쟁이 남긴 것에 맞먹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에 수십 년간 누적돼온 모든 치부를 '날것'으로 드러냈다.

무능한 정부, 비겁한 정권, 부패한 자본, 소명의식 없는 언론이 이 모든 참사를 함께 만들어냈다. 눈물을 가슴에 묻고 우리는 이번 사건을 찬찬히 짚어보려 한다. 잃은 아이들과 이웃들을 위해 언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추모이자, 살아 돌아와준 아이들을 위한 변화의 시작으로 삼고자 한다.

이 기사는 완결된 기사가 아니다. 앞으로 세월호 참사의 실체가 드러나는 대로, 우리는 사건이 잊혀지지 않도록 한 땀씩 이 기사에 덧댈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의 의견들을 모을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를 기억해야 한다.

Q. 4월16일 오전 8시49분(변침)~11시18분(침몰), 149분간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①학생들은, 4월 16일 오전 8시49분 부터 오전 10시17분까지 88분간 어른들을 믿고 기다렸다.

오전 8시49분. 세월호는 오른쪽으로 45도 급변침 후 급감속 했다.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구조된 승객들의 육성 증언을 들어봤다. 그들은 하나같이 "8시40분쯤 두어번 배가 크게 기울어졌는데 10분쯤 지나자 갑자기 급격하게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고 했다.

오전 8시52분. 단원고 학생인 최모군은 전남소방본부에 첫 신고를 했다. "살려주세요." 최군의 첫 마디는 다급한 구조 요청이었다.

JTBC가 지난 9일 보도한 방송을 보면, 고 김시연양의 휴대전화에 찍힌 영상이 있다. 오전 8시56분쯤 한 학생이 "우리는 진짜로 죽을 위기야. 이 정도로 기울었다. 오늘은 4월 16일"이라고 말한다. 그 순간 "선내에 계신 위치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잡을 수 있는 봉이나 물건을 잡고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이 나왔고, 학생들은 "야, 미쳤나봐" "이런 상황에서 막 그러지 않냐? 안전하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그러면 지들끼리 다 나가고" "지하철도 그렇잖아. 안전하니까 좀만 있어달라고 했는데, 진짜로 좀 있었는데 죽었다고. 나간 사람들은 살고" 등의 말을 주고받지만, 안내방송에 따라 기다렸다.

오전 9시. 학생들은 서로에게 구명조끼를 건넸다. 학생들은 기울어진 배에 몸을 기댄 채 휴대폰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등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구명조끼 입어, 너도", "내것 입어", "(선생님) 조끼 입으셨어요", "사랑해", "살아서 보자"….

오전 9시30분쯤. 경향신문이 단독 입수한 동영상을 보면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개인 사물함 아래 피해 있다. 선내방송에서는 '움직이면 위험하니 가만히 있으라'는 목소리의 안내 메시지가 전해졌다.

뉴스타파의 보도를 보면, 고 박수현 군은 사고 당일 오전 8시52분부터 15분 분량의 동영상과 40여장의 사진을 남겼다. 동영상 속의 박군과 다른 학생들은 "배가 기울어졌다", "죽기 싫다", "동생은 수련회에 가지 말라고 해야겠다", "선생님은 괜찮으시대", "구명조끼는 다 입었어?" 등의 말들을 주고 받지만, "이동하지 말고 대기해주십시오"라는 방송을 믿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전 9시38분. 승객들의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해경이 왔다. 움직이면 안된다. (언론에) 속보 떴다"는 내용도 담겼다.

탈출한 단원고 2학년 ㄱ양은 "안내방송에서 침착하게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고 지시해서 방송을 믿고 선실에서 기다렸다"면서 "그 말만 믿고 끝까지 기다린 애들은 못 나왔고 나와 친구들은 침몰할 것 같아서 기어 나왔다. 그래서 살았다"고 말했다.

안산 단원고 학생인 고 박수현 군이 마지막으로 남긴 사진 8장 가운데 하나. (출처=jtbc)

경향신문이 입수한 단원고 학생들의 카카오톡 메시지에도 당시 상황이 담겨 있다. 2학년 어느 반의 단체방. 한 학생이 "아직 다친 애들은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전하자, 담임 교사는 "다행이다"라고 답했다. 교사가 다시 "얘들아. 살아서 보자"라고 메시지를 전하자 학생들은 일제히 "사랑합니다"라고 답했다.

JTBC가 공개한 동영상 속에는 단원고 학생 김모양의 간절한 마지막 기도가 담겨 있었다. "우리반 아이들 잘 있겠죠? 선상에 있는 아이들이 무척이나 걱정됩니다. 진심입니다. 부디 한 명도 빠짐없이 안전하게 (수학여행) 갔다올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이 기도는 김양의 마지막 기도가 되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단원고 학생, 교사들에 의해) 마지막으로 전송된 카카오톡 메시지는 10시17분이었다"고 밝혔다. 마지막 메세지는 한 학생이 보낸 것으로 "기다리래, 기다리라는 방송 뒤에 다른 안내방송은 안나와요" 였다.

뉴스타파가 보도한 고 박수현군이 오전 10시11분45초에 촬영한 마지막 사진은 객실 입구 쪽 모습을 비추고있다. 이 시각은 해경이 구조를 시작한 9시30분보다 40분이 지난 시각이다. 아이의 표정은 굳어져가고 있었다.

세월호에 탑승한 학생이 사고 직후인 오전 9시30분쯤 촬영한 동영상.

②선원들은,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한 뒤 배를 버리고 도망을 쳤다.

4월16일 오전 8시49분. 세월호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기관장 박모씨는 조타실 직통전화로 기관실에 탈출을 지시했다. 선원들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 교신하면서 "지금 배가 많이 넘어졌습니다. 빨리 좀 와주십시오."(8시55분)라고 하면서도 선내 방송으로는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방송했다.

오전 9시01분. 선원 중 한 명은 휴대전화로 청해진해운에 사고 보고를 했다. 탈출 및 구조활동을 지휘해야 할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들은 그 시각 청해진해운과 7차례 통화를 했다. 7차례 통화 중에 승객 구조에 대해 주고받은 내용은 없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 전화를 주고받은 직원과 선원들이 모두 배 침몰 상황에 대해서 만 대화를 주고받았고 승객 구조 등에는 신경쓰지 않았다"고 밝혔다.청해진해운 측도 선장과 선원들에게 "배가 왜 넘어갔느냐", "어쩌다 사고가 났느냐", "배에 무슨 일이 있느냐"며 배의 상태만 물어봤다. 인천항 운항관리실도 세월호에 전화를 걸어 상황만 문의하고 말았다.

선원들은 승객들이 접근할 수 없는 전용통로로 이동해 집합해 있었다. 이들은 제복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오전 9시25분. 진도 VTS에서 "선장이 판단해서 인명 탈출을 지시하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선원들은 "그게 아니고 지금 탈출하면은 바로 구조할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라고 답신했다.

오전 9시30분. 해경 경비정 도착했다. 세월호는 45도쯤 기운 상태였다. 선원들은 조타실·기관실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시각 학생들은 '어른들의 안내방송'에 따라 객실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시각 갑판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목포해경 123정이 세월호의 좌현에 접근해 구조를 시작했다. 경비정에 탑승했던 해경은 방송으로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지시했다.

오전 9시46분. 속옷 차림의 이준석 선장이 구조됐다. 나머지 선원 15명도 해경이 던진 밧줄 타고 구조됐다.

선박직 선원 15명 중 단 한 명도 승객을 구조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박모 기관장은 탈출을 위해 5층 조타실에서 3층으로 내려오면서 단원고 학생들이 많이 타고 있던 4층을 그냥 지나쳤다.

당시 선박직 선원들은 동료 승무원 2명이 다쳐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도 이들을 내버려 둔 채 탈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당시 해경 어업지도선이 촬영한 동영상.

배를 버린, 그리고 구조를 기다리던 학생들을 버린 세월호 선원들은 16일 오후 진도읍 실내체육관으로 옮겨진 뒤 한 외식업체가 마련한 곰탕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운 뒤 커피까지 마시고 자리를 떴다. 반면 구조된 학생들은 음식을 입에 대지 못했다. "친구들이 오면 같이 먹겠다"며 함께 탈출하지 못한 친구들을 애타게 기다렸다. 자원봉사자 허모(47·여)씨는 "나중에 TV 방송을 통해 이들이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선원들이란 걸 알고 울분이 일었다"고 말했다.

21년 전인 1993년 서해페리호 침몰사고 당시 선박직은 모두 배와 운명을 함께 했다. 불과 20년 사이,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책임자들의 태도는 판이하게 달랐다. 자신의 목숨만 챙겼다. 이들에게 승객은 책임져야 할 소중한 생명이 아니라 단지 '숫자'에 불과했다. 그들은 맹골수도에 '숫자'들을 버리고 온 것이다.

검찰은 5월16일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15명의 선원을 살인죄·선박매몰·수난구호법 등의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그리고 사고가 벌어진 지 약 2달 만인 6월 10일 열린 첫 재판에서 이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인명 구조 의무가 있고 그 의무를 이행할 수도 있었지만 승객들의 사망 가능성을 알고도 이행하지 않았으므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한다"고 말했지만, 이 선장 등은 변호인을 통해 "승객들이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구호 조치 없이 탈출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여러 사정과 상식에 비춰 이해하기 어렵다"고 맞섰다.

7월 8일, 두번째로 열린 공판에서 세월호 사고 당시의 동영상이 공개됐다. 동영상을 통해 본 선원들에게서는 사고 초기 승객들에 대한 적극적인 구호조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유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선원들에 대한 엄벌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며 아전인수격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세월호 조타수 오모씨 인터뷰 영상(그것이 알고싶다 캡쳐)
세월호 조타수 오보씨 인터뷰 영상(그것이 알고싶다 캡쳐)
세월호 조타수 오모씨 인터뷰 영상(그것이 알고싶다 캡쳐)

③해경과 군 당국은 오전8시52분 '학생의 첫 신고' 후 152분이 지나서야 여객선 진입 수색을 벌였다. 그마저 실패했다.

안산 단원고 최모군으로부터 첫 신고가 들어온 시각은 4월16일 오전 8시52분. 세월호가 제주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신고한 시점은 이보다 늦은 오전 8시55분이다. 모든 선박은 조난과 긴급상황을 대비해 모두가 들을 수 있는 공용채널 'VHF 16번'을 켜두지만 세월호는 이 채널을 사용하지 않았다. 제주VTS 역시 세월호로부터 첫 신고를 받은 뒤 12번 채널을 고집하다 통신이 잘 되지 않자 21번 채널로 바꾸기도 했지만 끝까지 양측은 공용채널인 16번은 사용하지 않았다. 공용채널로 교신했다면 해경을 포함해 사고 현장 인근의 모든 선박이 상황을 곧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후 제주VTS로부터 전화로 상황을 전달받은 진도VTS는 9시6분부터 37분까지 세월호와 교신했다.

첫 신고후 14분이 지나서야 공용채널을 통해 주변 선박들이 세월호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첫 신고 후 38분이 지난 오전 9시30분. 해경 항공구조단 소속 특공대원들이 탑승한 소형 헬기가 제일 먼저 사고해역에 나타났다. 5분 뒤 목포해경 경비정 123정(110t)이 도착했다. 경비정이 구조작업을 시작한 오전 9시 36분 당시 세월호는 왼쪽으로 60도 정도 기울어져 있었지만 3층부터 시작하는 객실은 물에 잠기지 않았다. 이 때까지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많은 승객들이 선실에 있었다. 세월호 침몰사고 검경 합동수사본부 관계자는 "해경이 처음 도착한 9시30분에 세월호는 45도 가량 기울어져 있었을 뿐"이라며 "해경이 (이때 세월호에) 진입해 구조했으면 (세월호 승객) 전원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해경은 '이미 배가 기울어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9시44분 한 경사는 갑판에 올라 객실 쪽에서 구명 뗏목을 향해 걸어간 뒤 3분만에 2개를 발로 차 바다에 떨어뜨렸다. 선내에 진입해 승객들에게 탈출을 충분히 지시할 수 있는 시간이다. 123정은 '승객 여러분 총원 바다로 뛰어내리십시오'라는 방송을 반복했다고 했지만 해경이 공개한 동영상에는 헬기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사고해역에 출동한 123정은 전문 구조요원이 없는, 육지로 치면 경찰 순찰차나 마찬가지다. 해경 구조전문 인력인 122구조대가 사고 해역에 도착한 시간은 11시24분이었다. 112 구조대는 차량을 타고 70㎞를 이동한 후 배를 타고 현장에 접근하는 데 2시간 20여분이 걸렸다. 대형 헬기로라도 전문 구조요원들을 초기에 집중 투입했어야 했다.

해경과 군 경비정 9척은 9시30분부터 11시까지 순차적으로 도착했다. 그런데 해경의 상황 보고서를 봐도 선내에 진입해 선실 등에 갇혀있는 승객들의 탈출을 도운 정황은 없다. 오전 11시24분 목포 해경구조대 4명이 여객선 진입 수색을 한번 시도했다가 실패했다는 기록이 전부다. 세월호는 11시18분쯤 선수 일부만 남기고 완전히 전복돼 침몰했다.

5월18일, 해경 구조대가 왜 사고해역에 도착한 뒤 선내에 진입하지 않았는지를 보여주는 녹취록이 공개됐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춘진 의원이 공개한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 경비정과 상황실 간 '주파수공용통신(TRS)' 녹취록에 따르면 해경 지휘부는 현장에 도착한 123정에게 선내 진입 명령을 여러번 내렸다. 하지만 123정은 "경사가 심해 올라갈 길이 없다"면서 "122구조대가 와서 구조해야 될 것 같다"고 답했다.'122구조대'는 세월호 침몰 이후인 11시20분에 도착했다.

123정은 사실 현장지휘함정으로 함량미달이었다. 이는 감사원의 세월호 침몰사고 중간 감사결과에서드러난 사실이다. 해경은 사고 구역에 200t 이상 중형함정을 1척씩 배치했어야 했지만, 당일 배치된 123정은 100t급 소형함정이었다. 투입되었어야 했던 중형함정은 모두 중국어선 불법조업 단속에 동원됐었기 때문이다.

감사 결과, 해경 소속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는 모니터링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세월호의 급변침과 표류 장면을 놓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감사가 시작되자 내부 폐쇄회로(CC)TV를 철거하며 사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해경은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 승무원의 안내 방송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별다른 대책없이 방치했다. 세월호와 직접 교신을 하며 즉각적인 지시를 해야 했지만, 선장과 두 차례 휴대전화로 통화한 것이 전부였다.

해경 뿐 아니라 각 정부 부처, 기관의 무능도 함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전국 재난정보를 실시간 수집·전파하는 안전행정부 중앙안전상황실(상황실)은 세월호 침몰사고를 언론보도를 통해 뒤늦게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행부 외청(外廳)인 소방방재청이 인명구조를 위해 헬기를 출동시킬 때까지도 침몰 사실을 전혀 모르는 '깜깜이' 상황이었다. 또 경찰청·소방방재청·해양경찰청 구조인력이 현장에 도착한 다음에야 청와대·국무총리실 등에 사고 발생 사실을 전파했다.

게다가 구조 골든타임에 119 상황실은 구조보다는 '의전'을 더 중시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8시58분부터 10시57분까지 소방방재청 산하 전라남도 119 종합상황실은 목포해양경찰서에 전화해 구조자를 서거차도에서 팽목항으로 옮기도록 수차례 다그쳤다. 119 상황실은 10시34분 "보건복지부와 중앙부처에서 지금 내려오고 있다는데 서거차도는 섬이라서 못 간다"면서 서거차도에 옮겨진 구조자들을 팽목항으로 이송할 것을 요구했고, 해경 측은 "높으신 분이 서거차도로 오든 팽목으로 오든 저희들은 모르겠고, 우린 한 사람이라도 구조하는 게 우선 아닙니까"라고 답했다.

그러자 119상황실은 목포해경의 상위 부서인 서해지방해양경찰청으로 전화를 걸어"서거차도는 섬이라 많은 인원이 못 간다" "중앙정부에서 집결해 팽목항에 대기하고 있는데 서거차도에서 다른 데로 가버리면 다 붕 뜨게 된다"고 했고 "유관기관들이 팽목항으로 집결하고 있는데 그게 중요하지 않다면 안된다"고 화를 내기도 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지금 사람을 구조하는 게 급선무이고 배는 침몰했다. 구조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가까운 섬에 내려놓고 구조하러 가야 하니까 일단 나중에 전화하면 안될까요"라고 답했다.

비판이 쏟아지자 소방방재청은 "팽목항이 환자 응급처치와 헬기 이송에 적합한 지역이므로 구조자를 이송할 필요성이 있다고 통보한 것"이라면서 "'중앙부처'의 사람들이란 보건복지부의 재난의료지원팀, 중앙구조본부 구조팀 등 긴급구조지원 인원으로 의전과는 관련 없다"고 해명했다.

지난 7월 뒤늦게 공개된 세월호 사고 당일 청와대와 해경의 핫라인 통화내용은 더욱 충격적이다. 사고 발생 4시간이 지나도록 해경은 생존자를 370명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 초기 대응 당시 혼란을 야기했던 '전원 구조' 오보는 결국 해경의 과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시간 후에야 정정된 구조자 숫자 166명을 보고받은 청와대 관계자는 "큰일 났네. 이거 VIP(대통령)까지 보고 다 끝났는데"라고 답변했다. 사고 초기 대통령에게조차 정확한 상황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으니, 컨트롤타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리 만무한 일이었다.

④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의 손을 잡아준 어른들은 대한민국에 없었다.

크레인선은 세월호가 물에 잠기는 속도를 늦출 수있었다. 그러나 승인이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속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차가운 물 속의 아이들이 버텨낼 시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어른들은 느리게만 움직였다. 가장 먼저 도착한 크레인이 17일 밤 11시40분쯤이었다. 총 5대의 크레인이 출동했지만 사고수습본부는 아무런 활용도 하지 못했다. 10여일 만에 크레인들은 성과 없이 현장에서 철수했다.

해군의 첨단구조함 '통영함'에 걸었던 희망도 사그라졌다. 1590억원이나 들여 건조해 지난해 10월 인수받기로 한 함정이 사고 시점에 조선소에서 덩그러니 잠자고 있었다.

배가 더 이상 가라앉지 않도록 리프트백(공기주머니)을 설치하는 방안은 6800t이라는 세월호의 무게 앞에 무용지물이었다. 아이들이 잠긴 곳을 알려주는 부표에 불과했다. 그나마 일찍 설치했더라면, 가라앉는 속도라도 늦출 수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고해역 인근에서 작전 중이던 미군 함정이 구명용 보트를 탑재한 구조 헬기를 보냈지만 해군이 승인을 하지 않아 되돌아갔다. 국방부는 "선체가 대부분 침몰한 상황에서 한국 공군 항공기를 비롯한 다수의 헬기들이 집중 운영되고 있어 원활한 구조 작전을 위해 일단 귀환해, 추가 요청에 대기하도록 요구했다"고 해명했다. 그동안 안전행정부와 해양부, 교육부를 비롯한 각 정부기관들의 대책본부는 우왕좌왕 했다. 사망자과 실종자 숫자도 파악하지 못했다.

Q, 사고 초기 '아무것도 하지 못한 대한민국', 무엇이 희생자 가족과 국민들을 더 먹먹하게 했는가?

①아이들의 구조를 기다릴때 어른들의 망언과 만행이 이어졌다.

새누리당 세종시장 후보인 유한식 현 시장은 18일 폭탄주와 헹가레를 곁들인 술판을 벌였다. 한기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서)"좌파 단체를 색출해야 한다"고, 같은 당 소속의 권은희 의원은 "좌파들이 선동한다"고 몰아세웠다. 해경 간부는 "80명 구하면 대단한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가 직위해제 됐다. 사고 책임자 중 한 명인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한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진도실내체육관의 의료용 탁자 위에서 즉석라면을 먹어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난을 샀다. 안전행정부 송영철 국장은 사망자 명단이 적힌 상황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려다 실종자 가족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라면 먹는 서남수 교육부 장관. (출처= 오마이뉴스 )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청와대는 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며 '발뺌'을 했다. 지지부진한 구조작업에 지친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가겠다며 진도 거리로 나섰을 때 경찰은 채증 동영상 카메라를 들이대며 길을 막았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막내아들 정모군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슷한 사건 일어나도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다른 국가 사례랑 달리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통령이 가서 최대한 수색 노력하겠다는데도 소리 지르고 욕하고 국무총리한테 물세례하잖아 ㅋㅋㅋ. 국민 정서 자체가 굉장히 미개한데 대통령만 신적인 존재가 되서 국민의 모든 '니즈'를 충족시키길 기대하는 게 말도 안 되는거지. 국민이 모여서 국가가 되는건데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겠냐"라는 글을 남겨 논란을 일으켰다.

세월호 희생자 유족은 "정몽준 후보 아들이 쓴 글에는 '국민'이라고 표현됐지만 글의 맥락상 대통령과 국무총리와 있던 것은 '유족'이었다. 유족을 미개하다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며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막내아들을 경찰에 고소했다.

수개월이 지나도 망언은 끊이지 않았다.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특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은 세월호 사고를 조류인플루엔자(AI)에 비유해 논란에 휩싸였다. 조 의원은 "AI와 산불 등 재난에 대통령이 '수습'을 지시했다고 컨트롤타워로 볼 수는 없지 않으냐"라는 취지로 발언해 "어떻게 닭과 비교하느냐" "희생자가 닭이에요"라며 유족들의 원성을 샀다.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잇달아 세월호 사고를 '교통사고'로 규정하기도 했다. 홍문종 새누리당 전 사무총장은 "일종의 해상교통사고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거기서부터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고,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이것이 손해배상 관점에서 보면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라고 했다. '세월호 사고=교통사고'라는 도식은 국가의 무능을 면책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들을 분노케 한 것은 사고 자체라기보다 사고가 인재, 참사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는데도, 정부와 여당의 책임 회피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경찰들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을 몰래 따라다니고 대화를 엿듣다가 발각되기도 했다.4월19일 가족들이 "청와대로 가서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만나자"고 결정한 뒤 한 경찰 간부는 진도실내체육관 바깥에서 누군가와 '왜 가족들 청와대로 가는 거 보고 안했어' 라고 통화를 하다가 가족들에게 들켰고, 또다른 정보 경찰관은 가족회의에 몰래 들어갔다가 발각됐다.

이어 5월19일에도 안산 단원경찰서 소속 정보 경찰관들이 유족들을 차로 쫓아가다 들켰다. 경찰은 처음에는 부인했지만 결국 안산 단원경찰서장이 "불법은 아니지만 동의없이 숨어서 한 것은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4월16일부터 20일까지 안산 단원고와 합동분향소에 모두 801명(누적인원)의 정보 경찰이 투입됐다. 사고 초기에는 하루에 20명 수준이었으나 지난 2일쯤부터는 30명 가까이로 늘렸다. 진도인원까지 합하면 정보 경찰만 모두 1700여명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를 추모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한 촛불집회와 침묵행진 참가자들을 무리하게 연행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경찰은 토요일은 17일 저녁 열린 세월호 촛불집회 이후 청와대 행진에 참여한 시민 가운데 115명을 연행했다. 당시 시민 상당수는 경찰의 해산명령에 귀가하려 했지만 앞뒤 길을 다 막는 '토끼몰이'식 체포작전으로 오히려 해산이 어려웠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어 일요일인 18일에는 '가만히 있으라' 시위를 제안한 용혜인씨(25)를 포함해 침묵행진 참여자 100여명이 서울 시내 경찰서 곳곳에 연행됐다.

교육부는 청와대 게시판에 실명으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을 선언하는 글을 올린 교사 43명에 대한 징계를 추진키로 했다. 경북대 인문대 교수, 전주교대 교수들은 징계 추진을 중단해야한다고 공개적으로 촉구했지만 교육부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② 정부의 무능·무책임, 거짓발표, 언론의 무검증 속보 경쟁…실종자 가족들을 분노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 당일부터 구조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탑승자 수와 구조자 수가 여러 번 뒤바뀌었고, 구조자 명단에 올랐던 딸이 다시 실종자 명단에 올랐다. 전남 진도 체육관에 실종자 구조·수색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 화면이 설치된 것은 지난 4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이 다녀간 뒤였다. 박 대통령이 체육관에 들어서자 실종자 가족들은 박 대통령 앞에 무릎을 꿇고 아이를 살려달라고 빌었고, "여기가 어디라고 와. 여기 오지 말고 (현장에서) 지휘하라고!"라며 분노를 터뜨렸다. 정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통해 사고를 수습한다며 나섰지만,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현장에서는 이뤄지지 않은 부풀려진 '수색작업 발표'가 이어졌다.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 당일, 날씨가 나쁘지 않았는데도 왜 총력을 다해 구조하지 않았는 지 따졌다. "왜 잠수부를 수백명이나 불러놓고 수색을 하지 않느냐"고 묻자, 해경 관계자는 "조류가 거세 구조작업 진행이 어려우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만 했다.

하지만 해경은 맹골수도의 물살이 약해지는 시간인 '정조시간'을 착각하고 있던 것으로 이후 드러났다. 가장 물살이 셀 때 헛발질을 하고 있었다. 국립해양조사원은 "맹골수도는 일반 연안의 정조시간과 차이가나는 지역"이라는 정보를 해경에 전달했으나 해경은 이같은 정보를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가족들은 지난 4월18일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현장에는 책임을 지고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상황실 조차 마련돼지 않았다고 당국의 대처를 비판했다. 가족들은 "현장을 방문했을 때 헬기 2대, 배는 군함 2척, 경비정 2척 특수부대 보트 6대, 민간 구조대원 8명에 불과하고 인원도 200명도 안됐지만 정부는 인원 555명, 헬기 121대, 배 69척을 투입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당일부터 다양한 구조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받아들인 것도 며칠이 지나서였다. 그 사이 아이들의 생존가능성은 점점 줄어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아 침몰된 선박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③ 박근혜 대통령의 뒤늦은 사과…그러나 희생자 가족들은 '사과가 아니다'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29일 국무회의에서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해 "이번 사고로 많은 고귀한 생명을 잃었는데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며 사과했다. 사고 발생 13일 만이었다. 하지만 대국민사과가 아닌 국무회의 중 발언이었다. 세월호 사고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사과한 것을 두고 "5000만 국민이 있는데 박 대통령의 국민은 국무위원 뿐인가. 비공개 사과는 사과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날 정부합동 분향소에 나타난 박근혜 대통령은 조문만 했고 사과를 하지 않았다. 성난 유족들은 '여기까지 와서 사과 한마디 안할 수 있느냐'고 거칠게 항의했다. "대통령님, 우리 새끼들이었어요. 끝까지 현장에 있으셨어야죠 그거 아니예요? 왜 서로 미뤄요? 우리 딸하고 9시48분까지 통화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웃더라고요". 박 대통령이 떠난 뒤 대통령의 조화는 분향소 밖으로 치워졌다. 국민의 분노는 높아져만 갔고, 새누리당 지지율의 바탕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과반 이하로 추락했다. 그리고 6.4 지방선거를 한달쯤 앞둔 5월 6일, 박 대통령은 석가탄신일 조계사 법요회에 참석해 다시 한 번 사과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국민사과의 형식은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한달을 맞은 5월16일 청와대에서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 대표단 17명과 면담을 가졌고 "(진상규명) 특별법을 만들고 검·경 수사 외에 특검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근본부터 잘못된것은 바로잡아야지 그냥 내버려두면 그게 또 계속 자라 언젠가 보면 부패가 또 퍼져 있고 이렇게 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라며 "앞으로 개각을 비롯해 후속조치들을 면밀하게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5월19일에는 대국민담화를 통해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경의 구조업무가 사실상 실패했다"면서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담화 말미에 단원고 학생 권혁규·정차웅·최덕하군과 남윤철·최혜정 교사,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김기웅·정현선·양대홍씨, 민간 잠수사 이광욱씨 등 세월호 사고의 의인(義人) 10명의 이름을 차례차례 불렀다. 호명 중 두 교사를 언급할 때부터 두 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으나 닦지 않았다. 이날 질의응답은 없었으며 박 대통령은 오후에는 UAE에 수출한 원전1호기 원자로 설치식 참석을 위해 떠났다.

단원고 유가족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사과발언을 '사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위 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보낸 화환은 유족들의 항의 속에 이름이 보이지 않도록 뒤로 돌려졌다. 이 화환은 끝내 현장에서 철수됐다. (아래)

대통령의 사과 이후에도 민심이 사그러들지 않자, 6.4 지방선거를 앞둔 정부 여당은 다급해졌다. 수도권 전패 가능성까지 제시되자 새누리당은 "한번만 살려달라"는 읍소 대책을 내놓았다. "집권당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한다"며 낮은 자세를 취하라는 당의 선거 대책도 제시됐다. 이에 대응해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은 '세월호 심판론'으로 자신있게 표결집에 나섰다. '세월호 참사'가 6.4 지방선거의 최대 변수로 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6.4 지방선거의 표심은 여야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정부의 무책임과 무능력에 대한 '세월호 심판' 민심의 반영으로 서울시장 선거에서 완패하는 등 야당에 밀리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야당이 내세운 심판론의 승리라고 볼 수도 없었다. 박원순 후보의 개인기가 돋보인 승리였을 뿐 인천, 경기, 강원 등에선 민심을 다잡지 못했다. 세월호 정국 속에서도 승리하지 못한 '무능한 야당'에 대한 책임론은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 등 지도부에게 돌아갔고, 야권은 소용돌이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뒤이은 7.30 재·보선에서는 공천 파동 등 야당의 혼란 속에 새누리당의 압승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자 여권은 이 여세를 몰아 세월호 정국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세월호특별법과 청문회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휴가에 들어가면서 "일상으로의 복귀"를 주문했고, 당·청이 이를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작업에 들어간 셈이다.

④ 대한민국 언론은 속보 경쟁에 매몰됐다.

4월 16일 오전 11시9분. 안산 단원고를 관할하는 경기도교육청은 기자들에게 세월호에 탑승한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확인 결과 잘못된 정보였다. 교육청 담당과에서 학교에 문의한 뒤 전원 구조됐다는 말을 듣고 이를 대변인실이 기자들에게 전달했고, 속보에 목말랐던 언론은 교육 당국의 이같은 발표를 확인취재하지 않고 받아쓰기 식으로 기사화했다. 현재까지 알려지기로는 "전원 구조될 것 같다"는 해경 관계자의 말을 학교 관계자가 "전원 구조됐다"고 잘못 알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해경의 발표는 따로 놀았지만, 언론은 이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내보냈다. 구조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던 실종자 가족들에 가해진 '희망고문'이었다. '대대적인 수색', '잠수인력 500여명 투입' 등, 정부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발표가 언론에 그대로 실렸다.

4월18일 오전 열린 대표자 회의에서 실종된 단원고 학생 학부모들은 "기자들을 믿을 수 없다. 생존자가 있다는 말을 목이 쉬도록 했어도 왜 기사를 안내 주느냐. 촬영도 하지 말고 모두 나가라"며 항의했다.

언론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예의가 부족했다. '그림거리가 되는 피사체'인 가족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댔고, '이야깃거리가 되는 인터뷰이'인 생존 학생에게 "친구가 죽었는데 지금 기분이 어떠냐"며 잔인한 질문을 던졌다. 언론은 이들을 '사람'이 아니라 '기삿거리'로 대했다. 사람이, 생명이, 언론에게는 '이익'과 '명성'을 가져다줄 수단이었던 것일까.

일부 언론은 실종자 가족들과 유가족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편집'하면서 정권의 이익과 야합했다. MBC는 "실종자 가족들이 '해양수산부장관과 해경청장을 압박'하고 '총리에게 물을 끼얹고''청와대로 행진'을 했다면서, '잠수부를 죽음으로 떠민 조급증'이 아니냐"며 비난했다. 김모 KBS 보도국장은 "세월호 사고 사망자가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많지 않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유가족들의 거센 사과 요구를 받았다.

대형 언론사 중에서도 믿을 언론 매체가 거의 없었다. 언론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5월8일 KBS 임창건 보도본부장 등 고위 임원들은 합동분향소를 찾았다가 유가족들로부터 '교통사고 망언'에 대한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하지만 이날 분향소를 찾은 임원 중에는 발언의 당사자인 김시곤 보도국장은 없었다. 유가족들은 KBS사장의 사과와 김 국장의 파면을 요구하기 위해 자녀의 영정을 가슴에 품고 KBS를 찾아갔다. 하지만 KBS앞은 경찰 차벽으로 둘러싸여있었고 유가족 중 일부가 로비까지 들어갔으나 길환영 사장은 끝내 만나지 못했다. 유가족은 청와대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경찰병력 900여명이 청와대 길목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유가족들을 가로막았고 유가족들은 "우리는 시위하러 온 게 아니다"(김병권 유가족대책위원장)라며 울부짖었지만 길은 열리지 않았다. 경찰과 유가족들이 대치하는 사이 동이 텄다.

다음날 아침 9시 유가족 대표단이 청와대로 들어갔지만 '정무수석이 박 대통령에게 면담 요구 의사를 전달하겠다'는 얘기만 듣고 나와야 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전 기자들에게 "순수 유가족분들의 요청을 듣는 일이라면…"이라고 말해 유가족들로부터 "또 이간질하는 것이냐"는 비판을 받았다. 오후 3시25분쯤, KBS 길환영 사장이 청운효자주민센터 앞에서 기다리는 유가족들을 찾아와 "케이비에스로 인해 상처받은 유족 여러분께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결국 이날 박 대통령은 만나지 못한 채 20여시간의 행진을 끝내고 안산으로 돌아갔다.

KBS 내부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입사한 40기 KBS 기자들과 그 윗 기수인 39·38기 기자 30여명은 7일 오전 KBS 사내 망에 '반성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여러 기자들이 함께 쓴 이 글에는 "현장에서 KBS 기자는 기레기('기자 쓰레기'라는 뜻의 속어) 중의 기레기 입니다"라며 "얼마 전 후배가 세월호 관련 시민 인터뷰를 시도하다 시민에게 '제대로 보도하세요. 왜 그 따위로 방송해서 개병신(KBS) 소리를 들어요?'라는 말을 들었다"며 자괴감을 표출했다.

통상 언론계에서 막내기수의 성명서는 '보도 책임자의 사퇴'라는 암묵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교통사고 망언' 뿐 아니라 뉴스 앵커에게 검은 옷 착용 금지 지시를 한 김시곤 국장은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임의 뜻을 밝힌 뒤 "사사건건 보도본부에 개입한 길환영 (KBS) 사장은 사퇴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이후 김 국장은 길 사장이 대통령의 뜻이라면서 눈물까지 흘리며 사퇴를 종용했다고 추가로 밝혔고, '정부 쪽에서 해경을 비난하지 말 것을 여러 번 요청했다' 며 청와대와 길 사장의 보도개입 사례를 제시했다.

KBS 보도본부 산하 보도국, 시사제작국 보직부장 전원인 19명이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보직을 사퇴했고, 임창건 보도본부장도 사표를 제출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97.9%가 길 사장 불신임"이라는 신임투표 결과를 내놨지만 길 사장은 사퇴를 거부했다. 5월19일 1시부터 KBS 기자협회와 PD협회는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KBS에 이어 MBC 기자들도 '참담하고 부끄럽다'고 밝혔다. 5월12일 MBC의 30기 이하 기자 121명은 보도자료를 내고 "MBC 뉴스의 비 이성적, 비상식적,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보도 참사의 책임은 MBC기자들에게 있다"며 "가슴을 치며 머리를 숙인다"고 고백했다. 이들은 자사의 보도에 대해 "국가의 무책임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를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훈계하면서 조급한 비애국적 세력인 것처럼 몰아갔다"면서 "해경의 초동 대처와 수색, 그리고 재난 대응체계와 위기관리 시스템 등 정부 책임과 관련해 MBC는 그 어느 방송보다 소홀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MBC 측은 일선 기자들의 이같은 목소리에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아이가 실종된 한 학부모가 시신 확인실 천막 앞에 쓴 글. "어찌 이렇게 참담할 수가 있습니까. 부모의 입장에서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게 너무도 아프고 또 아프기만 합니다"면서 "저 또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 땅에 살아가고 있지만 현재 살아있다는 자체가 부끄럽기만 합니다"고 적었다. 그는 "계속되는 인재에도 재난대비 매뉴얼도 없고, 지휘체계는 엉망진창에다 거짓말만 일삼는 이 무능한 '정부'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말했다.

⑤ 분열된 대한민국…상처는 더욱 깊어간다.

사고 157일이 지난 9월 19일 현재까지도 10명의 실종자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유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잊혀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 여당은 이제 그만 '일상으로 돌아오라'고 주문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를 둘러싼 의혹과 참사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진상 규명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정부에 대한 세월호 유족들의 분노와 원망은 날로 깊어지고, 여기에 동참하는 시민들의 물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추모 집회에는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함께 촛불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을 가로 막고 있다. 5월 8일 시민들의 주도로 청와대 앞에서 진행될 촛불집회에 대해 경찰은 소음, 교통 혼잡 등의 이유로 금지했다. 6.10 민주항쟁을 맞아 열린 세월호 추모집회 61건에 대해서도 모두 금지 통고를 내렸다. 이날 진행된 '가만히 있으라 세월호 추모 침묵행진'에서는 집회에 참가한 시민과 경찰의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 부상자가 발생했고, 17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의 대응은 날로 강경해지고 있다. 8월 13일 청와대 인근에서 '416 광화문 국민농성단'이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질 것을 요구하며 청와대 행진을 시도했다. 경찰은 7명의 유가족이 포함된 이들을 강제로 해산했다.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을 막으며 대치를 시작했고, 1시간 후 농성단을 한 명씩 끌어내며 이들을 제지했다. 경찰은 차벽을 세우고 불법 채증을 해가며 유가족을 비롯한 시민들을 압박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세월호는 온 국민이 슬픔을 함께 해야 할 불행한 상처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분열과 갈등으로 몰고 가는 골칫거리처럼 지목되기 시작했다.

세월호 유족들을 비난하는 이들까지 나타났다. 유족들을 더욱 깊은 상처와 고통 속으로 빠트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 조광작 목사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가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고 발언해 논란에 휩싸였다. 전주의 한 30대 남성은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세월호 참사 기사에 "한국놈들 제발 쓸데없는 시신 집착증 좀 버려라"는 댓글을 달아 실종자 가족을 모욕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세월호 참가 희생자들을 인터넷 게시판에서 성적으로 모욕하는 이가 등장하기도 했다.

7월 14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 15명은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에 돌입했다. 이들은 단식에 돌입하며 피해자 단체 추천 전문가가 절반 이상 참여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특별위원회 구성을 골자로 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유민아빠'로 알려진 김영오씨는 46일간 단식을 이어가며 세월호 희생자 가족 단식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김씨의 이혼 경력 및 양육비 미지급 문제 등으로 그를 비난하는 여론도 나타났다.

9월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일베 회원 등 청년들이 '피자 투쟁'을 벌이고 있다.

단식 농성을 둘러싸고도 우리 사회는 깊은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 농성장 옆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 회원들이 치킨, 라면, 햄버거, 도시락 등 각종 음식을 먹는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은 단식 농성장 천막에 난입해 방뇨를 하고 달아나기도 했다. 그 자체로 잔인하고 야만적이었던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를 더욱 잔인하고 야만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를 치유한 것은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앞두고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우리 대통령이나 정부, 정치인들이 했어야 할 위로를 교황으로부터 대신 받았다.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선물한 노란 리본을 달고 나타났고, 미사에서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며 유가족을 위로했다. 교황이 한국을 떠나며 말한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줬다.

하지만 교황이 돌아가고 난 뒤 우리 사회에는 어려운 숙제가 남았다. 우리 스스로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고, 화해와 화합으로 비극과 야만의 시대를 극복해내는 일이다.

Q. 부실과 무능함으로 일관한 해경이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

세월호 참사는 '화물 과적'과 화물을 고정하는 작업인 '고박 불량'이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 승객은 나몰라라 하고 제 목숨 챙기기에만 급급한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이 화를 키웠다. 여기에 초동 대처와 이후 구조·수색 작업에서 부실과 무능함으로 일관한 해경도 결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①세월호가 물에 잠기기까지 2시간 동안 해경은 무엇을 한 것인가.

세월호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구조대는 어선단속정 123정이었다. 그 곳엔 구조전문인력은 없었다. 해경은 123정에게 현장지휘 임무를 맡겼다. 123정측은 세월호와 진도VTS간의 교신 내용을 들을 수 있는 채널도 청취하지 않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해경은 오전 8시58분 서해청은 신고를 접수한 직후 목포항공대 기지에 '헬기를 이용해 수중 구조작업에 탁월한 특공대를 현장에 급파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목포항공대 헬기(B511)는 항공구조사 2명만 태우고 사고해역을 향해 이륙한 뒤였다. 나머지 2대의 헬기 중 1대(카모프)는 수리 중이었고 다른 헬기(B512)는 중국어선의 불법어업 단속을 위해 가거도 해상에 출동한 3009함에 탑재돼 있는 상황이었다.

특공대원 7명이 전남지방경찰청 헬기와 다시 민간 어선으로 갈아타고 사고해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15분. 이미 세월호는 뱃머리 일부만 남긴채 물속에 잠겨 특공대원들이 선내에 진입할 수 없었다. 가장 신속히 현장에 도착해 인명 구조를 펼쳐야 했던 해경 특공대는 타고 갈 헬기가 없어 출동이 늦어졌고 세월호 침몰 위치를 표시하는 부표만 매달고 철수해야 했다.

해경에서 급파한 '구조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객실 창문 쪽에선 흰색·붉은 색 물체가 부정기적으로 보이는 장면이 해경 공개 동영상에서 포착됐다. 사람들은 탑승객 누군가가 배의 유리를 집기로 깨려 시도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배의 창문은 이내 검은 물살에 덮혀갔다. 당시 객실에 있던 아이들을 포함한 승객들은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그리고 단 한명도 구조되지 못했다.

9시35분쯤 해경 123정이 해역에 도착한 모습. 그러나 갑판에 나와있는 승객은 아무도 없다. (해경 동영상 캡쳐)
해경이 못보고 지나친 객실 SOS (JTBC 캡쳐)
해경이 못보고 지나친 객실 SOS(JTBC 캡쳐)
4월16일 123정 구조영상
4월16일 오전 9시32분 모습

②해경 지휘부는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다.

해상사고가 발생하면 중앙구조본부장은 해양경찰청장이 맡게 돼 있다. 그런데 인천 송도에 위치한 해경 종합 상황실을 지휘해야하는 김석균 해경청장은 세월호 침몰 당시 헬기를 타고 목포로 향했다. 그 사이, 그러니까 사고를 수습할 지휘관이 헬기 속에서 이동하는 사이 세월호는 완전히 침몰했다.

사고의 정황을 밝힐 수 있는 진도 VTS 측과 세월호의 교신 내용을 해경은 미루다가 뒤늦게 공개했다. 그런데 공개된 교신내용 일부가 삭제됐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팀이 만난 전문가는 공개된 '세월호와 진도VTS 교신내용'의 일부가 끊겨있다고 지적했다. "덮어 씌운다든가 아니면 두개가 혼합이 됐든가 의도적으로 편집됐을 가능성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해경 측은 이같은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사건 직후인 17일 세월호 이준석 선장을 해경 관계자가 자신의 집에서 재운 정황 등이 확인되면서 해경이 청해진해운 측과 사건을 놓고 '입맞추기'를 시도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③인명구조 명령은 없었다.

해경이 세월호 사고 이후 인명구조와 관련해서는 공식적으로 명령을 발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난된 선박을 인양하는 구난과 달리 구조는 사람을 구하기 위한 개념이다. 사고 초반부터 선박을 인양한다며 3차례 구난(인양) 명령을 발동한 해경이 정작 사람 목숨을 구하기 위한 구조 명령은 한 차례도 내리지 않은 것이다.

해경의 무능을 둘러싼 국민의 비판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대국민담화에서 해경의 구조업무가 사실상 실패했다"면서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출범 61년 만의 해체라는 극약처방을 받게 된 해경은 충격에 휩싸였다. 김석균 해경청장은 "국민과 대통령의 뜻을 겸허하게 수용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해경 해체' 처방이 적절한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는 20일 오전 학내 교수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통령이 뒤늦게 책임을 인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해경 해체만으로 모든 책임을 면하려는 태도는 스스로의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며 "철저한 진상조사와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진단을 통해서 책임소재를 밝히고, 그에 상응한 개혁을 즉각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정부의 국정을 파탄으로 몰고 가고 있는 청와대와 권력기관들의 인적 쇄신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며 "청와대 비서실장, 국정원장, 안보실장, 홍보수석, 그리고 검찰총장의 자리를 쇄신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역시 20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와에 대해 "해양경찰청 해체, 해양수산부 축소는 포퓰리즘 처방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세월호 실종자 구조작업에 투입된 민간회사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

④'언딘 마린 인더스트리'라는 일개 기업이 UDT/SEAL, SSU와 같은 군 정예요원의 구조작업보다도 먼저였다.

세월호 구난작업을 현장에서 사실상 주도, 장악한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와 해경은 어떤 관계인가. 해경은 그동안 '언딘' 위주로 구조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데 대해 "관련 법규에 따라 구난 조치를 해야할 의무가 있는 선박 소유자가 조치를 취한 것으로 결자해지 차원"이라고 설명해왔다. 선박 소유자인 청해진해운이 언딘과 계약한 것이며 해경은 언딘과 직접적 관계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시사인'의 지난 5월 1일 보도를 보면, 청해진해운은 애초 언딘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해경 담당자가 '언딘이라는 업체가 있는데 벌써 구난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청해진해운 쪽에 계약하라고 말했다"고 청해진 해운 관계자는 증언했다.

'언딘'은 민간 잠수업체로 심해 잠수 전문 구난업체다. 이 업체는 이명박 정부 들어 집중적으로 지원을 받았다. 2012년에는 5760만원, 2013년에는 2억3409만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았다. 언딘은 이명박 정부에서 지분투자도 받았다. 정부가 투자한 펀드가 언딘 지분의 29.92%를 차지한다. 언딘의 대주주는 지분의 64.52%를 갖고 있는 김윤상 해양구조협회 부총재다. 해양구조협회는 해양경찰청의 법정단체다.

언딘 측은 특혜논란 속에 '돈벌이 집단'이라며 여론의 비난을 받자 구조작업에만 참여하고 선체 인양작업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5월 8일 밝혔다.

지난 2010년 UDT/SEAL 대원들이 침몰한 천안함 수색작업 준비를 하는 모습
언딘 주주 및 지분

Q. 청해진해운을 둘러싼 의혹은 뭔가.

①세월호는 온전하지 못한 배였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 해운은 추락한 기업윤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사고발생 당일인 16일 오전 9시 1분부터 40분까지 세월호 선원들은 청해진해운 간부들과 7차례에 걸쳐 전화통화를 했으나, 승객 걱정보다는 배 걱정이 먼저였다.

청해진 해운의 물류팀장은 배가 가라앉고 있던 4월16일 오전 9시38분, 화물량을 180t 줄여 컴퓨터에 입력했다. 세월호가 실을 수 있는 최대적재 화물량은 1070t이었으나, 사고 당일에는 그 세 배에 달하는 3608t의 화물과 차량을 싣고 있었다. 그만큼 배의 균형을 잡아줄 '평형수'는 4분의 1밖에 채우지 않았다.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배에서 탈출하던 시간, 회사는 과적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세월호는 온전한 배가 아니었다. 일본 마루에 페리사가 18년간 사용해온 선박을 들여와 "차량 출입구 문을 잘라내 앞부분은 가볍게 했고 선미 쪽 상부는 객실을 늘려 무게가 200여t 더 늘어나면서 무게중심이 뒤틀어졌다"고 세월호 운항경험이 있는 한 1등 항해사는 증언했다. 증개축으로 승선인원은 804명에서 921명으로 117명 늘어났지만, 이로 인해 무게 중심은 구조변경 전 11.27m에서 구조변경 후 11.78m로 51㎝ 높아졌다. 이 때문에 배의 균형이 흔들릴 때 필요한 "복원력이 당초 설계보다 많이 떨어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선원들 사이에서도 세월호는 기피대상이었다. 선원들은 평소 "화물이 너무 많아서 배가 가라앉을 위험이 있다"고 해운사 측에 알렸지만 청해진 해운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화물을 배에 고정하는 결박조치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허술했다. 안전한 운항보다는 이익 극대화, 즉 '돈'이 먼저였다.

"생매장된 우리 아이들, 할머니와 할아버지, 신혼부부와 유학생, 이주노동자까지. 분향소에서 이 무거운 죽음을 느낄 수 없어 가슴 아팠다. 우리가 죽인 300여 희생자들께 이 그림을 바친다.(만화가 고경일 교수)" (출처=트위터 서해성 @jiksseol)

② 이렇게 위험한 배를 감독해야 할 기관은 그동안 무엇을 했나.

연안 여객선에 대한 선원 안전교육과 입출항 안전점검은 한국해운조합이 맡아왔다. 그런데 이 단체는 감독기관보다는 이익단체다. 2100여개 선사들이 회비를 내는 단체가 선사들을 상대로 깐깐한 감독을 하기는 어렵다. 3년 전에는 내항여객선 안전관리 업무를 분리해서 별도의 조직을 설립하자는 입법시도가 있었으나, 예산이 드는데다 안전관리는 선사 자율에 맡기는 게 국제추세라는 이유로 당시 이명박 정부가 반대해 무산됐다. 정부가 안전 관련 업무를 무분별할 정도로 민간단체에 위탁한 것이 결국 세월호 참사라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이익단체와 정부와의 결탁에는 '낙하산 자리'라는 거래가 있었다. 한국해운조합은 퇴직한 해양 및 교통관련 관료들을 이사장으로 영입해 방패막이로 삼고, 현직 공무원은 나중의 자리를 생각하며 해운조합의 문제를 묵인하는 일종의 커넥션이 형성됐다.

해운조합은 검찰의압수수색에 대비해 지난 4월 23일 내부 문건을 대량 파기하고 일부 컴퓨터를 교체하거나 자료를 삭제한 증거인멸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해운조합이 '인선회'라는 단체를 통해 정·관계에 로비를 하고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의혹과 관련한 서류를 파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③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청해진해운 특혜의혹

청해진해운이 2012년 일본 마루에 페리사로부터 세월호를 사들인 금액은 116억원인데 산업은행이 100억원을 융자해주었다. 정책금융에 의존해 사실상 자기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 세월호를 수입한 것이다. 산업은행은 "청해진해운이 충분히 상환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특혜 의혹이 제기된다. 계약대로 7년 안에 100억원의 원리금을 상환하기는 쉽지 않을 정도로 청해진해운의 재무상태는 나빴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슷한 시점에 이명박 전 정권은 규제를 완화하면서 여객선의 운항연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려주었다. 여기에서도 특혜 의혹이 제기된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와 오하마나호, 두 대의 여객선으로 인천-제주 노선을 독점운행해왔다. 제주도를 오가는 화물로 많은 수익을 냈고, 운송가격을 올렸는데도 매년 적자가 났다. 업계 관계자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청해진해운 소속 직원들의 임금수준은 업계에서도 짜기로 소문났다.

그런데 청해진해운은 두 쌍둥이 배를 지난 2월과 3월에 걸쳐 잇따라 국제시장에 중고매물로 내놨다. 새로운 선박 매입을 위한 사전준비였는지, 아니면 배의 문제를 알고 팔아 정리할 계획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청해진해운은 파산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가족 피해 보상과 정부의 구상권 청구 대상이 없어질 우려가 높아진 것이다.

일본 마루에 페리로부터 사들인 18년된 페리선(사진 위)을 청해진 해운은 세월호로 국내에서 운행하면서 선실을 증축하는 등 배를 개조했다. (아래)

④ 의심받는 청해진해운과 해경 간 커넥션

이용욱 해경 정보수사국장은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학생'으로 알려지면서 지난 5월 2일 경질됐다. 해운업을 바탕으로 기업을 키운 유 전 회장이 해경 내에도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국장은 7년간 청해진해운의 모회사인 세모그룹에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회사에 다니면서 딴 박사학위와 관련해 "회사 지원 없이 사비로 등록금을 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논문에는 '박사학위 논문에 공무할 기회를 준 유병언 회장에게 감사드린다'는 별도의 감사인사를 썼다. 이 국장은 또 "사고 수사에는 전혀 관여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18일 당시엔 팽목항 상황실 자리를 자주 비우는 것에 대해 가족들이 항의하자 "제가 본청 수사도 같이 맡아서 진행하기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즉 수사에 참여하고 있음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세모 근무경력과 '유병언 장학생' 사실이 알려지며 경질된 이용욱 해경 정보수사국장. (출처=연합뉴스)

⑤청해진 해운의 실소유주로 지목되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누구인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은 청해진해운으로부터 약 10년간 매달 월급, 자문료, 퇴직금 등 10억여원을 직접 받은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청해진해운의 최대주주인 천해지가 직접 밝힌 내용에 따르면 천해지는 관계사 아해프레스에 지난해 164억원을 지급했다. '아해'는 사진작가인 유 전 회장의 예명으로, 아해프레스는 그의 사진작품 활동을 홍보하고 작품 전시 및 판매를 맡아왔다.

유병언 전 회장은 '기업이 곧 교회'라는 독특한 교리에 바탕해 1962년부터 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를 일군 인물이다. 교리에 따라 신도들은 임금을 거의 받지 않고 유병언의 소유기업을 위해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 전 회장은 1986년 한강유람선 운영권을 따내며 승승장구하다가 1987년 구원파 신도 32명이 공장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오대양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검찰 수사에서는신도들이 자살한 것으로 결론났지만 타살설은 잦아들지 않았다. 유 전 회장은 교인들을 속여 돈을 가로챘다는 상습사기 혐의로 1992년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세모그룹은 1997년 부도처리됐다.

지난 2013년 1월, 아해 사진집 출판기념회에서 자신의 인생이력에 대해 말하고 있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 출처 : ahaepress 동영상 캡처

그런데 불과 2년만에 청해진해운이 설립됐다. 유씨의 두 아들이 최대주주인 지주회사 아이원홀딩스가 사실상 지배하는 것으로 돼있지만, 유병언 전 회장의 측근은 유 전 회장이 세금을 탈루하고 각종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임직원 명의로 청해진 해운의 주식을 차명보유하고 있다고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폭로했다. 그는 또 "유 전 회장은 여야 균형을 맞춰 정치인을 상대로 골고루 금품로비를 했다"면서 로비자금 심부름꾼은 현재 청해진해운 관련회사 임원으로 있는 모씨가 맡았다고 주장했다.

유 전 회장 일가는 검찰 수사 앞에 미적거렸다. 그의 장남 대균(44)씨는 각종 컨설팅비 명목으로 100억원 이상의 돈을 계열사로부터 부당하게 받은 혐의를 받고 있지만 검찰소환을 거부했다.

그러다 결국, 검찰은 스스로의 무능을 만천하에 알리게 됐다. 6월 12일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한 변사체가 유 전 회장이라는 사실이 한 달 여가 지난 7월 22일 최종 확인됐기 때문이다.

결국 검찰은 유 전 회장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고, 장남 대균씨와 도피 조력자 박수경씨 등 3명을 구속기소하며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 지었다. 검찰은 유 전 회장 일가를 세월호 참사의 주범으로 몰며 대대적 수사에 나섰지만, 결정적 증거 확보에 실패하고 유 전 회장이 사망함으로써 검찰의 수사는 '용두사미'에 그치게 됐다.

1일 오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안산 사진공동취재단 =정동헌 기자
"최대한 뒤로 물러나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지난 4월 30일 오후 2시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공식 합동분향소. 자원봉사자들이 취재 라인을 뒤로 밀어내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숨진 친구들을 조문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 있다.

Q. 후진국형 대형사고, 후진국형 사고처리 무엇이 문제인가.

①한국 사회는 국민 생명에 대한 가격을 '싸게' 매기고 있다.

최소한의 안전을 강화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비용을 지불하기보다는 최대한의 이윤을 추구하는 태도가 수십년 간 한국 자본주의의 잘못된 관행으로 자리잡아왔다. 이런 '신자유주의 적 사고판단'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대구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서해훼리호 침몰을 비롯한 참사 때마다 '안전을 경시한 인재'라는 분석이 있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안전보다는 수익이 언제나 우선이었다. 생명보다는 돈이 우선이었다.

한국의 산재 사망비율은 하루평균 5명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1위이다. 재개발로 용산 주민들이 죽고,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쌍용차 직원들이 죽어나가도 한국사회를 굴리는 돈의 논리는 그간 단 한 번도 꿈쩍한 적이 없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다시 일상으로 무심하게 돌아갔다.

그 '돈의 논리'와 깊숙히 결탁한 관료와 무능한 당국이 결국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그 적나라한 현실 앞에 한국 사회는 묻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이 강고한 돈의 논리 앞에 안전할 수 있는 이는 과연 있는가. 질문은 이제 시작됐다.

②수습도 늘 국민의 몫이다.

한 학부모는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최소한 안전은 보장된 나라에서 살고 싶다. 한심한 정부, 한심한 관료, 한심한 행정, 한심한 사고처리,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 수많은 자원봉사자와 조문행렬이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남겼다.

한 누리꾼은 트위터에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뿐 아니라 관계자들 모두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건 정부가 아니라 자원 봉사자들이고 임시합동분향소에서 진행을 돕는 이들도 정부 공무원이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이다"라고 적었다.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봉사활동을 한 심재준씨(45)는 "정부는 구조도 포기했지만 구호도 포기했다. 사복경찰이나 투입해 민간 자원봉사자들과 실종자 가족들을 감시·사찰하고 있다는 데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IMF사태로 힘들 때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을 때 국민들은 열성을 다해 동참했다. 국가의 큰 위기에 닥칠 때 '자원봉사'자들은 늘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원래 정부가 채워야 하는 건 아닌지 국민들은 묻고 있다. 사고 수습 과정이 민관의 협력은 좋은 일이지만, 정부가 해야 할 기초적인 것까지 국민들에게 맡기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대국민 성금 모금'도 마찬가지다.

③표류하는 '세월호 특별법'…갈등과 혼돈 속으로

6월 2일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 규명과 제도 개선을 목표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출범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치권이 후속 대응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이 국조특위와 세월호특별법 제정, 두 가지 방안이었다.

하지만 8월 30일 국조특위는 90일간의 활동 끝에 성과없이 '빈손'으로 막을 내렸다. 그간 기관보고 대상과 일정, 청문회 증인, 세월호특별법 제정 등을 둘러싼 여야 간 대치로 허송세월만 하다 '하이라이트'인 청문회조차 열어보지 못하고 활동을 마쳤다. 야당 측에서는 2차 국조실시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세월호특별법 협상이 교착되면서 성사 여부도 미지수인 상황이다.

무기력한 국조특위를 지켜보며 세월호 유가족들은 정치권의 진상규명 의지나 노력을 불신하게 됐다. 성역없는 조사를 위해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조사기구를 설치할 특별법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됐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세월호특별법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도 국조특위를 통한 학습효과라는 해석이 나왔다.

7월 9일 가족들의 주장을 담은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 입법청원되었다. 국민들의 성원과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희생자 가족들의 힘이 합쳐진 결과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에 동참한 시민은 9월 2일 현재 480만명에 달한다.

이 특별법안은 특별위원회에 피해자가 추천하는 사람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인적 구성을 규정하고 있다. 또 3년 간의 활동을 보장함으로써 충분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세월호 참사와 무관한 우리 사회의 여러 불안요소까지도 점검하고 대안을 마련할 안전사회 소위원회도 두도록 한다. 특히, 특검과 같은 수준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특별위원회에 부여함으로써 진상규명에 더 다가설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정치권과 유가족 간 입장은 큰 차이를 보이며 공전 중이다. 쟁점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할 것인지', '수사의 주체가 될 특별검사를 어떻게 뽑을 것인지'에 대해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여당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법체계에도 맞지 않고 진상조사와 수사를 섞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여야는 8월 7일과 19일 잇달아 합의안을 내놓았지만, 가족들은 이를 모두 거부했다.

여야 합의안은 특검에게 수사와 기소를 맡기되, 특검 추천은 상설특검법에 따라 특검후보추천위원회의 국회 몫 4인을 여야가 각각 2인씩 추천토록 했다. 진상조사위는 여야 각 5명, 대법원·대한변협 4명, 가족 3명이 추천하는 인사로 구성토록 했다. 가족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특검에 넘긴 진상조사위가 실질적 권한이 없는 껍데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고, 여야 합의안에 제시된 110일간의 수사기일이 충분한 조사와 수사에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또 특검추천위원 중 국회 추천 몫인 4명을 모두 야당이나 가족이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권과 가족 간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자, 해결책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에 대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9월 16일 유가족들의 요구사항을 모두 거부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가족들이) 지금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자는 주장에 대해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결단을 하라고 한다"면서 "그것은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고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세월호 정국에 대한 '정면돌파' 선언인 셈이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는 "결국 '국가개조'는 허울 좋은 구호에 불과한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진상조사 대상이 진상규명을 하지 않겠다고 가이드라인을 설정한 것"(새정치연합 유기홍 수석대변인)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박 대통령의 강경한 선긋기로 인해 세월호특별법 협상은 장기화되는 조짐이다. 일각에서는 제2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문제처럼 사회적으로 고립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Q. '먹먹해진 한반도' 치유를 위한 첫 단추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세월호가 침몰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것이다. 신뢰를 잃은 국가는 사회적 구심점을 잃고 모래성이 되기 마련이다. 사건의 충격으로 한국 사회는 '집단 우울증'에 빠졌다.

단 한명의 생명 구조 소식 없이, 현장에서 전해진 사연들은 온 국민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세월호 선체 내부에서는 구명조끼 끈으로 서로를 묶은 남녀 고교생 시신 2구가 발견됐다. 이들을 물속에서 처음 발견한 ㄱ씨(58)는 "어린 학생들이 (죽음의 공포 앞에서) 얼마나 무섭고 힘들고 괴로웠겠느냐"며 "나름대로 함께 공포에 맞서려고, 살려고 서로의 몸을 끈으로 묶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들은 시신이라도 찾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지난 4월30일부터는 진도 팽목항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 '몸단장을 하면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팽목항에 남아 있는 엄마들이 화장을 하고, 아빠는 진도 시내로 나가 이발을 하기도 했다.

팽목항 가족대책본부 옆 선착장에는 음식 등이 놓인 두 개의 밥상이 있다. 실종자들을 위해 가족들이 차린 것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음식이 쌓이고 있다. 미역국과 하얀 쌀밥, 과일부터 피자와 햄버거, 컵라면, 과자, 탄산음료수 등 아이들이 평소 즐겨 찾을 법한 간식거리들도 가득 쌓였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시민들이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가족을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해 줄 말은 길지 않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다음 생엔 더 행복하고 안전한 사회에서… 사랑한다", "기다릴게". 시민들은 노란 리본을 달기 시작했다. e메일에도, 문자메시지에도 노란 리본이 달렸다.

'어머니'들의 아픔과 분노는 극에 달했다. "소화도 안되고 심장도 벌렁거리고 자꾸 몸이 처져요. 평생 울 눈물 다 흘리고 평생 할 욕 다한 것 같아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세월호 재앙은 균이 혈관을 타고 들어간 형국이고 사회 전체가 심리적 죽음에 이를 정도"라고 트라우마의 심각성을 말했다. 또 세월호 트라우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에 한국전쟁과 맞먹는 상흔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4월25일 밤 서울 세종로 동화면세점 앞에서 시민들이 여객선 세월호 참사를 원망하는 플래카드를 걸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김기남 기자
말할 수 없는 슬픔을 겪고 있는 경기 안산 단원고가 24일 3학년 등교를 시작으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단원고 입구에 세월호 탑승자의 무사귀환과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다. /김기남 기자
세월호 침몰사고 21일째인 6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한 실종자 가족이 동생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며 가져다놓은 신발이 놓여 있다. 진도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치유의 방법은 무엇일까.

정혜신 박사는 '국민적 트라우마는 어떻게 치유하면 좋겠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심각한 신경증이 있지 않다면 이 슬픔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길 권합니다. 우선 분향소부터 찾으시길요. 함께 슬퍼할 수 있으면 많이 슬프지 않습니다. 많이 힘들다면 혼자 슬퍼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진실발견과 책임소재의 명확화, 그에 따른 처벌과 배상이 먼저"라고 말했다. "책임질 자 탈탈 다 털고 나서 성금 모금을 하자"면서 "청해진해운 유병언 일가, 한국선급과 해운조합 등 안전관리사, 국가 등 책임 반드시 따져 철저하게 '배상'하게 해야 한다. 사상 최고의 배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국가나 기관, 법인 등이 '배상'하게 되면 그 배상의 원인인 개인 위법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게 된다"며 "책임있는 당사자들이 물어내라는 것이며 대통령부터 관제사까지 모든 책임공무원 책임만큼 구상해야 한다. 국민세금으로 모두 물어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돕는 성금 모금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유가족들도 "투명한 사고 진위 파악이 먼저"라고 말했다.

한 외국 언론사의 기자는 한국에서 대형사고가 나면 장관을 경질하고 사람을 처벌할 뿐, 사고를 일으킨 근본 원인은 바꾸지 못하더라고 지적했다. "장관만 바뀌고 문제는 남더라"는 것이다. 사건에 닥쳤을 때 제대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안전전문가를 기르지 못한 우리의 시스템과 문화도 문제로 지적된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5월14일 연세대 교수 131명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성명을 발표했다. '슬픔을 안고 공동체 회복의 실천으로'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이들은 "세월호 참사는 분명한 인재였다는 점에서 특별한 반성을 우리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다"며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국가라는 제도와 책임의식이라는 윤리와 양심의 침몰이었다"고 밝혔다.

교수들은 특히 "탐욕과 비리, 생명경시 풍조가 우리 사회에서 말끔히 제거될 때까지, 그래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인간적인 삶을 누리고 나눌 수 있을 때까지 반성과 개혁의 발걸음을 멈추지 말 것을 희생자들에게 엄숙하게 약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에 그랬듯이, 이번 사건도 잊혀질 지도 모른다. 소시민의 안전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정부를 보며 우리는 '각자도생'을 꾀하고, 공동체는 붕괴할 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지금 위기의 벼랑 끝에 서 있다.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누가 이 사회에서 안전할 수 있을까.

<최민영 기자 min@이고은 기자 freetree@송윤경 기자 kyung@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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