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안나푸르나 가다..'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손정빈 2014. 5. 7.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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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소설 '7년의 밤', '28'로 주목받은 작가 정유정(48)이 첫 에세이집을 냈다. 다시 세상에 맞설 용기를 얻기 위해 생애 처음 떠나기로 한 여행지는 용감하게도, 자신의 소설 '내 심장을 쏴라'의 주인공 '승민'이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워하던 신들의 땅 히말라야다.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 방황'은 그곳에서 펼쳐질 별들의 바다를 보기 위해 작가 김혜나와 함께 한 안나프루나 종주 17일간의 기록이다.

폭주하는 기관차 같던,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진짜 이야기꾼으로 불리길 바랐던 정씨는 단 한 편의 단편소설도 발표한 적 없이 오직 네 권의 장편소설만으로 독자를 상대하며 달려왔다. 그러나 지난해 '28'을 탈고한 뒤, 내부 에너지가 고갈돼 무기력해진 자신을 마주한다. 생의 목적지로 돌진하던 싸움꾼이 사라진 것이다. 해결 방법을 찾아야 했다. 머릿속에 안나푸르나가 떠올랐다. 자신이 쓴 소설의 주인공이 속박된 자신을 스스로 해방시켜 날아가기를 염원한 곳이다.

정유정식 '힐링' 방법으로 선택된 안나푸르나 종주는 네팔 히말라야 산맥 중부 안나푸르나 영봉을 끼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한 바퀴 도는 만만치 않은 트레킹 코스다. 안나푸르나의 아름다운 산과 고개를 두루 볼 수 있으며, 동부 마낭 지역과 서부 무스탕 지역의 다양한 문화도 경험할 수 있는 천혜의 여정으로, 해발 5416m의 쏘통라패스를 통과해야 하는 미션이 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도 다녀올 수 있는 트레킹 코스지만,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없이는 쉽게 도전할 수 없고 지대가 높아 고산병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그녀는 주변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환상종주에 도전하기로 한다.

정씨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남도의 섬, 저수지 아래로 잠든 마을, 속을 알 수 없는 해저, 개썰매를 타고 달리는 알래스카 등 언제나 낯선 세상을 여행 중이다. 소설만 봐서는 세계여행 전문가일 것 같은 그녀는 사실 여행을 결심하기 전까지는 여권도 없었던 골방 체질에 타고난 길치였다. 오직 소설 쓰는 일밖에 몰랐다. 막상 히말라야로 떠날 결심을 하자 여행사 알아보는 것부터 막막했다. 결국 주변의 도움을 얻어 채비를 꾸리는 과정에서 후배 소설가 김씨와 의기투합, 여정을 떠난다.

세상에 다시 맞설 용기를 얻기 위해 나선 여행인데, 자꾸 사고가 난다. 날씨는 좋지 않고 말 못할 속병까지 생긴다. 게다가 왠지 지금 앓는 감기가 고산병이 아닐까 의심이 들고, 고산병 예방을 위해 챙겨먹은 약은 웃지 못할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를 끼고 도는 '환상종주'는 어느새 갈 길을 잃고 빙빙 도는 '환상방황'이 돼버린다. 이렇게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술술 풀어놓는 정씨의 입담은 때로는 마음 아프거나, 때로는 킬킬 웃게 만드는 묘한 힘을 발휘한다. 여행에 서툰 그녀가 저지른 실수에 미소 짓다가도, 육체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에 감탄하게된다. 울고 웃으며 행군을 이어간 그녀가 따뜻하고 든든한 동료들의 도움으로 최고 난관인 쏘롱라패스를 무사히 넘었을 때 전해지는 감동은 그녀 소설 못지 않다.

더불어 지금의 정유정을 만든 과거의 이야기가 마치 소설처럼 재미를 안겨주며 현재의 여정과 엮여 펼쳐진다. 작가의 과거와 현재 모습, 앞으로 걸어갈 길이 궁금한 독자라면 처음으로 내적 고민을 고스란히 털어놓은 이 에세기가 큰 선물이 될 것이다.

길 위에서 정유정은 계속 질문한다. 여행이 끝나면, 다시 돌아가면 이제는 세상에 맞설 수 있겠는지. 힘이 소진돼버린 자신을 다시 링 위에 올라선 선수로 바꿀 수 있겠는지. 마침내 오르고야 말았던 안나푸르나의 품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다시 일어설 힘을 달라고 염원하기도 했다. 여정을 마친 후 전혀 쓸 생각이 없었던 여행에 관한 에세이를 쓰게 되면서 비로소 안나푸르나의 대답을 얻는다. 303쪽, 1만4000원, 은행나무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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