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 엉터리 운항관리자 제도] 나랏돈 받는 세월호 運航관리자, 13가지 의무 중 7가지 안 지켰다

세월호 참사는 여객선 안전의 '파수꾼' 역할을 맡은 운항관리자가 법률상 정해진 본분만 다했더라도 막을 수 있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운항관리자는 여객선이 안전 수칙을 지키는지 감시하고 출항할 때마다 과적(過積) 여부를 점검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이들이 받는 월급은 전액 여객선을 타는 승객들이 내는 운임 및 세금(국고보조금)에서 나오지만 법률상 정해진 의무를 내팽개쳤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운항관리자는 여객선사들의 이익 단체인 한국해운조합이 채용하고 있고, 해양수산부는 뒷전으로 물러서 감독을 전혀 하지 않았다. 운항관리자가 제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이 이번 사고의 결정적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운항관리자 의무 13가지 중 7가지 안 지켜
본지가 27일 운항관리자가 해야 할 직무 13가지를 규정한 해운법 시행규칙(전체 15조8)을 분석한 결과 세월호를 담당하는 운항관리자 A(32)씨는 그중 7가지를 준수하지 않았다. 세월호의 안전한 출항을 위해 필요한 의무 중 절반 이상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얘기다〈표 참조〉.
먼저 A씨는 선장이 출항하기 전에 제출하는 점검 보고서를 확인해야 할 의무(3조)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선장 이씨는 컨테이너 개수를 아예 기재하지도 않았고, 차량도 운항 관리 규정(148대 선적 가능)보다 32대 많은 180대를 실었지만 A씨는 무사 통과시켰다.
세월호는 취항 이후 158번에 이르는 출항 중 157차례 과적했다. A씨가 적재 한도 초과 여부에 대한 확인 의무(6조)를 수행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외에도 A씨는 '선장의 선내 비상 훈련 실시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10조)'거나 '구명 기구 완비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11조)'는 의무도 소홀히 했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일부 선원은 "비상 안전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고, 구명벌 46개 중 단 한 개만 정상 작동했다.
A씨는 1조에 적시된 선원에 대한 안전 관리 교육도 소홀히 했다. 세월호의 이준석(69) 선장을 비롯한 항해사·기관사 등 선박직 직원 15명은 승객들을 전혀 구조하지 않은 채 탈출했다가 전원 구속됐다.
◇해운조합 "꼼꼼히 점검했다" 주장
해운법상 운항관리자는 3급 이상의 해기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승선 경력이 3년 이상이어야 한다. A씨는 2급 항해사 자격증을 갖고 있고 H해운에서 항해사로 3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어서 자격 기준은 충족한다. 하지만 운항관리자로서 경험은 불과 3년 4개월에 그친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30대 초반의 A씨가 아버지뻘인 선원들에게 이런저런 명령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운항관리자는 안전 확보를 위해 출항 정지를 명령할 권한까지 갖고 있다. 하지만 A씨는 이런 권한을 활용하지 않은 채 안전상 치명적인 결점을 여럿 가지고 있는 세월호를 방치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운조합은 A씨를 감싸고 있다. 해운조합의 한 관계자는 27일 본지와 가진 통화에서 "(A씨가) 꼼꼼하게 점검했으며 (세월호가) 출항할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과적 여부도 운항관리자는 만재흘수선(선박이 물에 잠기는 최대 깊이를 표시한 선)을 초과했는지만 확인하는 것이며, 평형수를 빼고 짐을 더 실었는지는 1등 항해사만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운항관리자가 받는 월급에는 해운조합 돈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다. 여객선 운임 중 3.2%를 해운조합이 걷고, 모자라는 부분은 매년 7억~10억원가량 국고보조금을 받아 월급을 준다. 운항관리자들의 연봉(평균 4300만원)이 모두 국민과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A씨 일본 기준으로는 운항관리자 맡을 수 없어
1949년 일찌감치 운항관리자 제도를 도입한 일본 기준으로는 세월호 담당 A씨는 운항관리자가 될 수 없다. 일본은 선장 경험 3년 이상 또는 갑판 선원 5년 이상 경험이 있어야 운항관리자가 될 수 있다고 정했다. 따라서 선장을 해보지 않았고 항해사만 3년 해본 A씨는 일본에서는 자격 미달이다.
일본에서도 운항관리자는 여객선사들이 채용한다. 하지만 국토교통성 항만국 소속 공무원인 운항관리관들이 운항관리자들을 감시하고 있어서 해운조합에만 운영을 맡긴 채 나 몰라라 하는 우리나라 해수부와는 다르다. 일본에서는 또 여객선사들이 운항관리자를 임면(任免)할 때 국토교통성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운항관리자
여객선의 안전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배가 출항하기 전에 과적 여부 등을 점검해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이다. 연안여객선 업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인 한국해운조합이 항해사·기관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 중에서 채용한다. 운항관리자들의 연봉(평균 4300만원) 중 78%는 여객선 운임의 일부(운임의 3.2%)로 충당하고, 나머지 22%는 국고보조금으로 지급한다. 임면(任免)하는 권한은 해운조합에 있고, 정부는 운항관리자의 직무를 감독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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