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MC 유재석도 때론 혼자만으론 버겁다
4년 만의 새 예능 유재석을 위한 어설픈 훈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유재석의 코미디는 앙상블이다. 그의 옆엔 늘 그가 맥락을 만들고 웃음을 증폭할 수 있도록 돕는 파트너가 있다. < 엑스맨 > < 해피투게더 > < 무한도전 > 등을 통해 톱MC로 거듭나는 데는 박명수와의 호흡이 절대적이었다. 캐릭터물에 가까운 < 런닝맨 > 에서는 지석진, 광수, 하하가 그 역할을 나눠서 담당한다. < 놀러와 > 가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도 김원희와 티격태격 하면서 맞춘 안정적인 혼성 앙상블 때문이었다. 그런데 파일럿으로 편성된 < 나는 남자다 > 에서는 이런 유재석 토크 특유의 앙상블을 찾기 힘들었다. 유재석 혼자 다수의 패널과 게스트, 그리고 방송에 참여하는 250여명의 방청객들을 이끌었을 뿐이다.
물론, 다른 MC들과 차별화되는 유재석의 특기 중 하나가 비방송인들을 포함해 다수의 출연자를 지휘해 웃음을 만드는 조율 능력이다. 겸손함과 호감을 바탕으로 관찰력과 순발력을 발휘해 도저히 재미있기 힘든 사람도 웃길 수 있는 맥락을 만들어낸다. 2010년 < 무한도전 > 의 '연말정산 뒤끝공제 특집'이나 '쓸친소' '못친소' 등이 그런 예다. 4년만의 새 프로그램인 < 나는 남자다 > 는 유재석이 진행을 잘한다는 것을 한 번 더 확인시켜줬다. 그런데 그 이상의 즐거움이 없었다. 리모컨을 집어던질 정도로 재미없었다는 게 아니다. 소소한 웃음이 잔잔하게 깔려 있지만 문제는 남자들의 수다라는 이야기판에 빨려 들어가기 어려웠다.
실시간 검색어를 하루 종일 장악할 만큼 이슈가 됐음에도 정작 시청률은 동시간대에서 가장 낮은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종편과 케이블발 토크 열풍이 부는 시점에 무언가 도전적인 시도나 유재석만의 토크쇼라는 새로운 흐름의 씨앗이 보이지 않았다. 명확한 콘셉트와 타깃을 설정한 토크쇼임에도 매우 어수선했다. 고작 한 번 방송한 프로그램의 코너나 멤버 구성 등 세부적인 문제를 언급하는 건 어설픈 훈수다. 문제는 유재석이라는 대형 MC와 '남자들의 공감'이라는 주제를 연결한 지점에 대한 의문이다.
< 나는 남자다 > 는 여러 패널과 250명의 방청객을 모아놓고 공감의 콜로세움을 세운다. 내무반 토크의 판을 키운 버전이다. 그런데 생각해볼 것이 있다. 20대 후반의 남성들이 예비군 훈련을 대할 때 특유의 정서적 결속력을 공유하는 건 1년에 한 번 있는 이벤트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많은 커뮤니티에서 스스로 남탕이니 군대 같다느니, 우리는 해도 안 된다느니 하는 찌질함을 희화하고 수군거리는 개그코드는 자조적 유희다. 이걸 함께하자고 들어낼 때 한두 번은 색다르게 느껴질 수 있으나 남자들의 애잔한 전우애가 주는 위무의 웃음은 유통기한이 매우 짧다. 진심으로 머물고 싶은 세계도 아니고, 실제 세상에서 원하는 모습도 아니라서 공감을 통해 얻을 게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남성들의 소심함과 순박함이 이성에게 귀여움으로 다가가기도 하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딱 질리기 십상이다. 조정치의 거품을 생각해보면 된다.
공감과 소통을 화두로 비방송인을 방송으로 끌고 들어왔을 때는 일상과 맞닿은 정교함이나 정보가 있어야 한다. '사연'과 '정서'만으로는 지속가능한 포맷을 이끌어가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 나는 남자다 > 처럼 많은 수의 방청객이 함께하는 XTM의 < 탑기어 > < 더벙커 > 나 스토리온의 < 100인의 여자 > < 100인의 선택 > 온스타일의 < 겟잇뷰티 > 등은 정서를 기반으로 하되 그 위에 매회 새로운 콘텐츠(정보)를 얹어서 재미를 만든다. 형태는 다르지만 시청자들의 사연으로 방송을 꾸리는 토크쇼들은 시청자들의 호기심 수준과 방송 수위를 동기화한다. < 마녀사냥 > 은 남녀관계에 있어 남자들의 생생한 뒷담화를 다루고 XTM < 10나무 > 는 연애라는 주제를 놓고 공서영, 예원, 레이디 제인과 허경환이 각각 남녀의 입장에 서서 티격태격한다.
토크쇼에서 관계의(어떤 뜻으로든) 진전을 판단해주는 그린라이트니, 데이트 비용 문제와 같은 민감한 논의를 하는 이때에 < 나는 남자다 > 는 포경수술의 기억, 남고의 추억, 야동의 추억, 모태솔로에 대한 고백을 하고 아이돌에 열광한다. 너무나 전형적인 에피소드식 접근이다. 유재석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대신 에피소드를 이끌어내고 조율하지만 이런 틀에선 서로 주고받는 토크의 합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러니 그 많은 패널들은 병풍이 되고 만다. 혹시나 해서 언급하자면 < 10나무 > 에서 날아다니는 허경환도 < 나는 남자다 > 에 출연했다.
< 나는 남자다 > 에 대한 평가는 아직 유보다. 웃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애초에 기대했던 유재석의 특장점과 교감과 소통이 화두가 된 예능의 흐름이 만났을 때의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수트부터 정갈한 헤어스타일까지 유재석은 지금까지의 모습 그대로 성실히 임했다. 이것으로 만족하기에 유재석이란 이름은 너무 크다. 지금 예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새로운 흐름이 계속해서 공중파 밖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남자들이란 정서 위에 유재석 만의 무엇이 얹어져야 한다.
< 우리동네 예체능 > 을 기획했던 이예지PD는 강호동과 프로그램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강호동이 가장 잘하는 게 먹방과 운동이라 그 중 운동을 택했다고 말했다. < 나는 남자다 > 와 유재석도 마찬가지다. 정작 다른 MC와 차별되는 유재석만의 장점, 앙상블을 극대화할 장치를 우선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다음 남자들의 정서와 공감대를 맞출 포맷을 찾아야 더 자연스러워 질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를 정리하기 위해선 유재석의 장기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 나는 남자다 > 가 유재석이니까 프로그램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유재석만이 보여줄 수 있는 토크쇼로 돌아오길 기대해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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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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