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초상화, 피부질환까지 또렷이

2014. 3. 1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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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피부과 의사 이성낙 박사 논문

519점 분석 결과 20여가지 확인

정밀화풍 추구 탓…중·일엔 없어

조선시대 초상화 500여점을 조사한 결과 대상 인물 가운데 14.06%가 천연두를 앓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선시대에 천연두가 창궐한 사실이 문헌에 나오기는 하지만 초상화를 통해 그 증거를 찾아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부과 의사인 이성낙 박사는 최근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 낸 박사학위 논문 '조선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 병변 연구'에서 조선시대의 초상화 519점을 분석한 결과 20여가지 피부병변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천연두 자국이 발견된 초상화는 모두 73점으로 14.06%를 차지해 검은 점인 멜라닌세포모반(21.77%), 검버섯인 노인성 흑자(16.37%)에 이어 세번째로 많다. 이런 사실은 조선시대에 천연두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창궐한 사실이 초상화에 그대로 반영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영조 50년(1774년)에 만들어진 <등준시무과도상첩>이 주목된다. 여기에는 당시 무과 특별승진시험에 합격한 18명의 초상화가 합철돼 있어 일종의 표본집단 구실을 하는데, 이 가운데 김상옥, 유진하, 전광훈 3명, 16.67%가 천연두 병변을 보인다.

이는 조선시대 평균 14.06%보다 2.61%포인트가 높은 수치다. 천연두는 고열과 발진을 동반하는 전염병으로 치사율이 95%에 이르며 병에 걸렸다가 살아남더라도 얼굴이 얽어 '흉측한' 인상을 준다. 한국에서는 1879년에 예방백신을 놓기 시작해 현재는 공식적으로 박멸된 것으로 본다.

천연두에 관한 첫 자료는 <삼국사기> "선덕왕 6년(785년)에 왕이 갑자기 진이 돋는 병에 걸려서 13일 만에 죽었다"는 기록이다. 중국에서는 317년에 천연두 기록이 처음 나오는데, 4세기께 중국에서 한반도로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50여차례 천연두가 언급돼 있을 만큼 조선시대에도 천연두가 흔하고 무서운 질병으로 인식됐다.

천연두 반흔을 가진 초상화의 대상자들은 '외모'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초상화로 그려질 정도라면 정3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이들이 대부분이다. 가장 높은 관직에 오른 인물은 오명항(1673~1728). 그는 얼굴 전면이 천연두 자국으로 뒤덮여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외모 장애자'로 취급될 정도다. 하지만 그는 최종 벼슬이 우의정일 정도로 출세했다. 이성낙 박사는 천연두 자국이 당시에는 흠이 되지 않았다면서 이는 당시 선비사회의 개방성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고 밝혔다. 얼굴에 천연두 자국이 남은 사람 중에는 김정희, 이서구, 김한철, 김육, 서유구 등 유명인사들도 포함돼 있다.

비슷한 시기에 조선, 중국, 일본 3국에서 천연두가 유행했는데도, 조선의 초상화에서만 천연두 자국이 발견된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도 천연두를 앓아 얼굴이 얽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공식 초상화에는 천연두 자국이 없다. 지은이는 간경변을 앓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초상화 얼굴이 희게 그려진 것으로 미루어 일본도 천연두 자국 등을 그대로 묘사하지 않았다고 본다. 초상화 그리는 원칙이 달랐다는 얘기다.

지은이는 "조선 초상화를 분석한 결과 얼굴에서 병변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하게 그려졌다"며 "이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의 초상화는 한 가닥의 털, 한 올의 머리카락이라도 달리 그리면 안 된다는 정자의 초상화론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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