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성 간첩 맞다'는 탈북자 A씨의 초능력

입력 2014. 2. 26. 13:15 수정 2014. 2. 2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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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안홍기 기자]

지난 1월 7일 '탈북 서울시공무원 간첩'으로 구속됐다가 1심 무죄를 받고 풀려난 유우성씨가 서울 서초동 민변에서 수사기관의 증거은닉 날조 혐의 고소 고발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안홍기

1심 무죄 뒤 항소심 재판 중인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서 검찰 측의 증거가 위조된 정황이 드러나 국정원과 검찰이 궁지에 몰린 가운데, 이 사건 최초 제보자라는 한 탈북자가 다시 나서 유우성씨가 간첩이 맞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의 행적과 증언 내용을 시간순으로 배열해 보면 앞뒤가 안 맞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동아일보 > 24일자에 실린 인터뷰에서 제보자라는 탈북자 A씨는 유씨 아버지가 '아들이 회령시 보위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으므로 유씨가 간첩인 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의 공문서를 위조한 의혹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고 이번 사건의 핵심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그럴듯해 보이는 건 그가 북한에서 약 5개월간 유씨의 가족과 가장 가까이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함경북도 회령시 유씨 아버지 집에서 동거했다. 유우성씨의 여동생 유가려씨도 이 집에서 함께 살았다.

그가 동거한 시점은 2010년 2월부터 6월까지다. 그는 2009년 11월말 유씨 아버지를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이미 탈북해 있는 친언니와 '전화작업', 즉 공안이 모르게 휴대전화 등을 통해 국경 밖으로 연락을 취하기 위해 유씨 아버지를 소개받았고, 이후 가까워져 약 5개월 동안 유씨 아버지 집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2010년 6월 그 집을 나온 A씨는 함경북도 종성군 삼봉부락에 가서 살다가 그해 10월 탈북, 다음해인 2011년 2월 남한에 들어왔다.

알 수 없는 일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 탈북자

A씨는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들은 대로 유가려가 한국에 올 시점을 제보했고 국가정보원이 정확히 그때 체포했는데 내가 거짓말하는 것이냐"고 했다. 그러나 그가 유가려씨의 탈북 및 국내 입국 시점을 정확히 제보했다는 말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유가려씨가 제주공항에 도착해 국가정보원에 체포된 때는 2012년 10월 30일이다. A씨가 유씨 가족과 같이 살았던 마지막 시점과 무려 2년 4개월 이상 시간차가 난다. 몇 개월도 아니고 2년 4개월 뒤에 일어날 일을 시점까지 정확히 제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백보 양보해 동거할 때가 아니라 그 후에 알게 됐다고 추정하더라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국정원이 수사하고 검찰이 작성한 유우성씨 공소사실에 의하면, 북한 회령시 보위부 반탐(방첩)부부장이 유가려씨를 남한에 침투시킬 것을 이미 남한에 있는 유우성씨와 협의한 시점이 2012년 7월경이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A씨가 남한에 들어온 지 1년8개월이 넘은 시점이다. 공소사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또 더 거슬러 올라가 반탐부부장이 유가려씨를 시켜 탈북자 정보를 중국에서 북한으로 갖고 오게 한 첫 시기가 2011년 2월 하순이다. 이 시기 역시 A씨는 이미 탈북해 남한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결국 A씨의 주장은 이미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 북쪽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는 동거 여부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 뿐만이 아니다. A씨는 인터뷰에서 유가려씨가 "오빠가 탈북자로 위장해 서울의 큰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다음날 기사에서는 A씨의 검찰 진술조서를 인용해 "오빠가 지금 남한에 탈북자로 들어가 있고 Y대학을 졸업한 뒤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유우성씨가 대학을 졸업한 때는 2011년 2월이고, 서울시청에서 계약직 일을 시작한 때는 같은 해 6월이다. A씨가 북한에서 유씨 가족과 같이 살았던 시기(2010년 2~6월)에 유우성씨는 서울시 취직은커녕 대학 졸업도 하지 않은 상태였을 뿐 아니라, 졸업과 취업이 이루어진 때는 A씨가 남한으로 들어온 이후다. 그런데 그 말을 동생인 유가려씨로부터 들었다?

A씨는 자신이 유씨 가족과 같이 산 약 5개월 동안에는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너무나도 많이 알고 있고, 또 그 말을 유씨 가족들로부터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재탕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가 16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브리핑실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위조 논란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A씨의 이야기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가 내려진 1심 재판에서 그는 이미 증인으로 나와 진술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의 증언의 신빙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A씨 뿐 아니라 국정원과 검찰이 내세웠던 다른 탈북자들의 증언도 마찬가지였다. 한 탈북자는 재판 당시 2007년 여름에 회령시 역전동 길거리에서 유우성씨를 봤다고 증언했지만, 같은 시기에 찍은 유씨의 사진을 보고선 '자신이 목격한 유씨는 사진에서보다 살이 빠졌고 머리 모양도 다르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다른 탈북자는 2011년 여름과 2012년 초 회령시 유씨 아버지 집에서 유씨를 목격했다고 증언했지만, 그때 유씨 아버지는 회령시 집을 처분하고 중국 옌지로 이사온 상황이었다. 이 탈북자는 법정에서 스스로 '북한에서 빙두(마약의 일종)를 많이 했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지난 17일 < 문화일보 > 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탈북자 목격 증언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공안당국은 화교 출신 탈북자들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마치 새로운 증거가 나타난 것처럼 서술했지만, 이 기사 중반부에도 써놨듯 1심 재판 당시 탈북자 여러 명이 이미 진술한 내용이다.

결국 2심 재판에서 유력한 증거라고 내세웠던 서류들이 조작된 의혹이 일면서 궁지에 몰리자 1심 재판에서 이미 신빙성을 의심받은 탈북자들의 말을 일부 언론을 통해 재탕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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