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과 공감하는 게 '봄' 아닐까?
[이채훈의 힐링클래식] 모차르트 동요 < 봄을 기다림 > K.596
[미디어오늘 이채훈 MBC 해직 PD]

http://youtu.be/9URYugPt1RU (노래 : 나나 무스쿠리)
봄이 그립다. 2월 4일, 입춘이다.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두어 차례 있겠지만 우수 · 경칩, 이제 따뜻해질 일만 남았다. 그리스의 팝스타 나나 무스쿠리가 사랑한 노래 < 봄을 기다림 > K.596.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인 1791년 1월에 작곡한 동요다. 그 해 가을, 모차르트는 마지막 오페라 < 마술피리 > 에서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존재의 신비와 경이를 노래한다. 이에 앞서 1월, 그는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어린이의 천진난만한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
모차르트가 마지막 해를 어린이의 노래로 시작한 건 우연일까? < 봄 > K.597 · < 우리 어린이들 > K.598과 함께 그의 마지막 동요 3부작을 이루는 < 봄을 기다림 > , 작곡한 이유와 배경은 알려져 있지 않다. F장조 6/8박자, '즐겁게' (fröhlich)라고 악보에 써 있다. 당시 '작은 어린이 문고'(Kleine Kinderbiblioth다)에 실려 있었다는 크리스찬 오버벡의 시.
< 봄을 기다림 >(1절) 아름다운 5월아, 다시 돌아와 수풀을 푸르게 해 주렴 / 시냇가에 나가서 작은 제비꽃 피는 걸 보게 해 주렴 / 얼마나 제비꽃을 다시 보고 싶었는지! / 아름다운 5월아, 얼마나 다시 산책을 나가고 싶었는지!(2절) 겨울에도 재미있는 일이 많긴 하지 / 눈밭을 걷기도 하고 저녁때는 여러 놀이를 하지 / 아름다운 들판에서 썰매도 실컷 탈 수 있지 / 하지만 새들이 노래할 때 푸른 잔디 위를 신나게 달리는 것, 그게 훨씬 더 좋아.(4절) 무엇보다 로트헨이 마음 아픈 게 나는 제일 슬퍼 / 불쌍한 이 소녀는 꽃이 필 날만 기다리고 있지 / 나는 걔가 심심하지 말라고 장난감을 갖다 줬지만 소용이 없어 / 걔는 알을 품은 암탉처럼 조그만 자기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지.(5절) 아, 바깥이 조금만 더 따뜻하고 푸르렀으면! / 아름다운 오월아, 우리 어린이들에게 어서 와 주길 간절히 기도할게 / 누구보다도 우리들에게 먼저 와 주렴 / 제비꽃이 많이많이 피게 해 주고 / 나이팅게일도 많이 데리고 오렴 / 예쁜 뻐꾸기도 데리고 오렴.
(시 : 크리스찬 오버벡)

가사를 음미해 보면, 노래의 주인공 프리츠 - 시의 원래 제목은 '5월의 꼬마 프리츠' (Fritzchen an den Mai) - 는 가난한 집 어린이라는 생각이 든다. 푸르른 봄이 오면 산책 나가서 제비꽃을 보고 싶고, 겨울에는 눈밭을 걷고 썰매를 타는 게 즐겁다. 돈 안 들이고 그저 밖에서 뛰노는 것 밖에 모르는 어린이다. 프리츠는 어머니 말을 잘 듣는 순진한 꼬마인가 보다. 3절에 "내 목마는 저 구석에 있어야 돼, 개울 저편에 가면 안 돼"라는 귀절이 나오는데, 필시 어머니가 단단히 주의를 주셨나보다. 이 꼬마에게 어머니의 말씀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法)인 셈이다.
프리츠는 이웃 소녀 로트헨이 아파서 슬프다. 꽃이 필 날만 기다리며 '알을 품은 암탉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로트헨, 어린이는 이 소녀를 위해서 봄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고 노래한다. 프리츠는 로트헨에게 장난감을 갖다 주었는데, 아마 자기 물건 중 제일 소중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아픈 사람에게 공감하고 치유를 비는 어린이의 마음, 이 4절이야말로 노래 전체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이 꼬마는 봄이 '우리 어린이들에게' 제일 먼저 와 달라고 간절히 노래한다. 제비꽃, 나이팅게일, 예쁜 뻐꾸기 모두 로트헨에게, 내게, 그리고 모든 어린이들에게 성큼 달려와 주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이 단순하고 예쁜 선율은 모차르트가 그해 1월 5일 완성한 피아노협주곡 27번 Bb장조 K.595의 3악장의 주제를 닮았다. http://youtu.be/7vqBBRVRwSg(피아노 : 머레이 페라이아) 깡충깡충 뛰는 6/8박자의 주제를 들으면 정다운 오빠를 따라서 달리며 깔깔 웃는 어린 누이가 떠오른다.
독일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는 이 노래, 7살 꼬마 가수 지씨의 뮤직비디오로 감상해 보자. http://youtu.be/Vt7pKT_ZfnA귀에 익은 이 선율은 오보에 독주로 편곡되어 KBS 1FM의 SB음악으로 나온 적이 있다. 클래식과 동요와 팝의 경계를 너머, 인종과 국가와 계층의 벽을 너머,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닐까?

미국의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의 노래 http://youtu.be/32S53cOuvYA

독일의 바리톤 오이겐 힐티의 노래 http://youtu.be/RJzXw-s3rCY
아픈 사람들이 많은 시대다. 죄 없는 어린이들의 아픔은 눈물을 자아낸다. 아직은 추운 겨울, 봄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아픈 사람들의 상처가 치유되는 게 봄 아닐까? 활짝 핀 꽃과 새들의 지저귐, 그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웃으며 평화를 누리는 게 봄 아닐까? 싸늘한 탐욕과 경쟁 대신 타인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치유하는 따뜻한 마음이 봄을 앞당길 것이다. 어린이가 노래한 < 봄을 기다림 > 은 이 시대 어른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어린이의 마음이 되어 봄을 그리워한 35살 모차르트… 그는 "어린이로 돌아가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걸까? 1791년에도 봄은 어김없이 돌아왔고, 그해 봄은 모차르트에게 마지막 봄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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