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시계, 그 오묘한 '남자의 신세계'

한국아이닷컴 조옥희 기자 2014. 1. 1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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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시계, 매년 두 자릿수 매출 신장세최소 수백만원서 수억짜리까지.. 빠져들수록 황홀한 '남자의 물건'"비싸지만 대물림하면 아깝지 않아.. 학습적으로 접근하면 매력적"분해소지 비용 만만치 않아.. 일각선 "가격거품 지나치다" 지적도

직장인 장모씨는 최근 쿠팡에서 시계를 하나 구입했다. 소셜 커머스에서 파는 시계라고 가격까지 싸다고 생각하면 오산. 415만원. 그의 손목에 놓인 시계는 태그 호이어 까레라다. 지난해부터 살까 말까 망설였는데 매장가보다 50만원 정도 저렴하게 나온 걸 보고 큰맘 먹고 질렀다. 앞으로 10개월간 40만원이 넘는 돈이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갈 테지만 빨간색 초침이 물 흐르듯이 움직이는 걸 보면 황홀한 느낌마저 든다. 장씨의 다음 타깃은 1,000만원이 넘는 롤렉스 서브마리너다. 장씨는 "태그호이어가 질릴 때쯤이면 중고로 팔고 돈을 보태 서브마리너를 꼭 손에 넣고 싶다"고 했다.명품 시계 시장은 전 세계에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명품 시계 성장세는 가히 폭발적이다. 다른 명품이 대체로 불경기의 영향을 받는 데 반해 명품 시계는 매년 두 자릿수 매출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한국의 스위스시계 판매액은 2억3,700만프랑(약 2,800억원). 이는 2009년 판매액(2억2,300만프랑)보다 많다. 백화점들은 '믿을 건 명품시계뿐'이라며 수백억원어치 시계를 한꺼번에 선보이는 전시회를 매년 열고 있다. 시계 마니아의 수가 늘다 보니 '크로노스'라는 고급시계 전문 잡지도 탄생했다.원래 고가시계는 결혼 예물용으로 주로 쓰였다. 익히 알려진 롤렉스, 오메가, 카르티에가 대표적인 예물시계이자 명품시계였다. 하지만 시계 마니아가 아니라면 이름도 외우기 힘든 고가 브랜드가 우후죽순처럼 한국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크로노스위스, IWC, 파네라이, 예거 르쿨트르, 피아제, 블랑팡, 브레게, 위블로, 로저 드뷔, 프랭크 뮬러는 물론 세계 3대 시계로 일컬어지는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 파텍 필립 등의 초고가 스위스 시계가 마니아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시계의 제왕' '시계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파텍 필립은 파텍 필립 회장 앞에서 시계를 사려는 이유를 설명하는 면접을 거쳐야 주문할 수 있는 시계, 주문하고서도 2, 3년은 기다려야 찰 수 있는 시계로 알려져 있다. 스위스시계만 유명한 게 아니다. 글라스휘테 오리지널, 아 랑에 운트 죄네 등의 독일 시계, 세이코 등의 일본 시계도 스위스 못잖은 기술과 예술성으로 남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명품시계는 대부분 자동 및 수동 시계다. 손목 운동으로 시계 속 로터를 돌려 태엽을 감는 시계가 자동 시계, 손가락으로 용두를 돌려 태엽을 감는 시계가 수동 시계다. 이들 시계는 대부분 이틀만 둬도 바늘이 멈춘다. 정확하지도 않다.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을 들여서 산 시계가 제 아무리 정확하더라도 길거리에서 파는 5,000원짜리 전자시계보다는 정확하지 않다. 튼튼한 것도 아니다. 수백 개의 정밀한 부품으로 만들어지기에 조금만 충격을 가해도 고장 나기 쉽다.남자들은 왜 이렇게 값은 비싸고 실용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시계를 차고 싶어 하는 것일까. 남자들의 액세서리는 많지 않다. 기껏해야 구두 벨트 안경 넥타이 시계가 전부다. 시계는 이 중에서도 남자들이 유일하게 소유할 수 있는 값비싼 액세서리다. 스타일을 중시하는 멋쟁이 남자가 늘면서 시계 시장이 덩달아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시계는 아는 만큼 보인다. 초심자는 물론이거니와 시계의 매력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에게도 시계는 그 자체만으로 경이로운 소우주다. 디자인에서 무브먼트(바늘을 돌아가게 하는 내부 동력장치) 개발, 조립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이 명장들의 손을 거치는 게 바로 시계이기 때문이다. 1마이크로미터(0.0001mm)의 오차를 두고 명장들은 그야말로 사투를 벌인다. 한 해 서너 개밖에 만들지 못하는 시계가 존재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시계 마니아들은 손목의 움직임만으로, 용두로 태엽을 감는 것만으로도 움직이는 퍼페추얼 캘린더 시계(2100년까지 날짜나 연도를 보정할 필요가 없게끔 프로그램돼 있는 시계), 투르비용 시계(중력에 의한 오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향하더라도 안정적인 정밀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장치를 탑재한 시계)를 보면 짜릿한 희열을 느낀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일각에선 공구나 기계에 끌리는 남자들의 본능이 고가 시계 시장을 키웠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최근 몇 년간 모은 비상금을 탈탈 털어 1,300만원짜리 예거 르쿨트르 정장시계를 구입한 박모씨. 박씨는 50만원대 자동 시계인 티쏘 르로클을 구입했다가 기계식 시계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론진과 오메가 등의 브랜드를 거쳐 하이엔드 브랜드의 수동시계에 입문하게 됐다. 그는 "원래 롤렉스를 구입하려고 했는데 아내에게 구입가를 속이기 위해 아직은 한국인에게 생소한 브랜드인 예거 르쿨트르를 선택하게 됐다. 롤렉스보다 튼튼하진 않지만 디자인이 훨씬 아름답다는 점에서 만족하며 차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아침 출근 전 태엽을 감으면 시계에 숨결을 불어넣는 느낌이 든다. 시스루 백(유리로 만들어 시계 속이 들여다보이는 백케이스)으로 예술품처럼 섬세하게 세공된 시계 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은 시계 마니아가 아니면 모를 것이다"고 말했다.하지만 명품시계의 매력을 탐한 대가는 크다. 명품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만큼 비싸기 때문이다. 수억원짜리 시계도 흔하다. 그런데 오리스를 차면 태그 호이어를, 태그 호이어를 차면 오메가를, 오메가를 차면 롤렉스를, 롤렉스를 차면 언젠가는 파텍 필립을 차고 싶은 게 시계 마니아들의 숙명. 수백만원짜리 시계에서 수천만원짜리 시계로 순차적으로 옮겨 가는 동안 느는 건 시계요, 줄어드는 건 가산이다. 시계 마니아들 사이에선 시계에 빠졌다가 재산을 탕진할 뻔했다는 말이 흔하게 떠돈다.명품시계 값에 거품이 잔뜩 끼었다는 주장도 있다. 올리버 엡스타인 크로노스위스 CEO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명품 시계회사들이 매년 값을 올리는 것은 마케팅을 위해 거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쓴 소리를 날린 바 있다. 그는 5년간 가격이 두 배로 뛴 시계까지 있다면서 시계회사가 마케팅 비용 등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명 시계회사를 이끄는 사람이 한 발언인 만큼 십중팔구는 맞는 지적일 터. 엡스타인은 한정판 시계를 2,000개나 찍어내는 브랜드도 있다며 시계회사의 상술에 혀를 찼다. 하지만 크로노스위스 시계 역시 싸지 않다는 게 함정이다. 몇 년간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며 합리적인 가격대의 시계라고 자랑하지만 최소 500만원이 있어야 이 브랜드의 시계를 손목에 올릴 수 있다. 인기모델은 1,50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고가 시계는 아무리 조심해서 차더라도 5, 6년에 한 번씩은 무조건 분해소지(시계 부품을 모두 분해해 깨끗이 세척한 뒤 재조립하는 작업)를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내부 윤활유가 말라서 부품이 망가지기 쉽다. 그런데 분해소지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오메가나 롤렉스 급은 수 십만원이 기본이다. 퍼페추얼 캘린더나 투르비용 시계를 분해소지하는 데는 수백만원이 든다.고가 시계라고 물이나 습기, 충격에 강한 건 아니다. 오히려 비쌀수록 외부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는 게 시계다. 채모씨는 자전거를 탈 때 시계를 찼는데 400만대 태그 호이어가 작동을 멈췄다고 말했다. 채씨는 "수리를 맡겼더니 태엽이 끊어졌다고 하더라. 산에서 자전거를 몬 것도 아닌데 황당했다. 사설 업체에 수리를 맡겼는데 20여만원이나 들었다. 그나마 정식 AS센터에 맡기면 훨씬 더 많은 수리비가 들었을 거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자식을 대하듯 애지중지하지 않으면 럭셔리 시계는 진저리 시계가 되는 셈이다.고가 손목시계의 세계를 다룬 책 '올댓워치'(한스미디어 발행)를 감수한 장세훈 시계 칼럼니스트는 "진정한 가치를 지닌 시계는 대를 이어 물려줄 만하다. 실제로 상당수 시계 마니아가 자식에게, 손자에게 시계를 물려줄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명품 시계에는 상상을 초월한 매력이 있지만 일반 직장인이 쉽게 취하기엔 가격 부담이 상당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찾아보면 자신의 처지에 맞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명품 시계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시계 시장이 많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정작 시계에 대한 정보는 크게 부족하다"면서 "시계는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에 시계에 대한 학습적인 접근이 선행되면 시계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시욕이나 허영심 충족을 위해 시계를 소유하려고만 하는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게 시계의 매력이다"고 강조했다.

한국아이닷컴 조옥희 기자 hermes@hankoo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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