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덴마크산 목재장에서 흐르는 음악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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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입주한 집엔 단일품목으로는 전세금 다음으로 많은 지출을 하게 한 물건이 하나 있다. 로즈우드로 된 장식장인데 미닫이문을 열면 라디오 튜너와 턴테이블이 나오는 1960년대 덴마크 제품이다. 지난해 10월 구입 당시 가구박물관 주인은 "오디오는 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그냥 가구로만 봐도 쓸 만해 보여 덜컥 샀던 거다.
수리할 엄두도 못 내던 그것을 며칠 전 고쳤다. 지난해 말, 서울 세운상가에서 일하는 A 사장님을 따라 미로 같은 그 뒷골목을 탐험했다. "한일 양국을 합쳐도 골동품 오디오 고치기에 이만한 사람이 없다"는 B 사장님은 허물어질 듯한 옛 아파트 건물 2층, 10m²나 될까 한 허름한 작업실에 와룡처럼 도사리고 계셨다. 일주일간의 사투 끝에 그는 반세기 가까이 미라처럼 죽어있던 내 덴마크제 오디오를 살려냈다고 했다. 유럽 주요 도시 이름이 빼곡한 튜너에서 대한민국 클래식 FM 아나운서의 한국 말씨가, 턴테이블에서 현철의 '봉선화 연정'이 터져 나오던 순간, 난 영국 록 밴드 뮤즈의 콘서트 맨 앞줄에서 매슈 벨라미의 전기기타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전율했다.
집으로 오디오를 모셔와 가장 먼저 재생한 LP레코드는 미국의 전설적인 재즈 음악인 허비 행콕이 팝, 록, R & B 명곡을 재해석한 음반 '더 뉴 스탠더드'(1996년·사진)였다. 베이비페이스부터 피터 게이브리얼, 이글스, 스티비 원더, 프린스, 너바나의 곡을 재즈로 부활시킨 앨범 말이다. 쉰 살이 넘은 오디오 스피커는 부활하자마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향을 한국의 겨울에 뿌리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는 스테레오가 아닌 모노 사운드였고, 중저음은 자작나무처럼 바싹 말라 있는 대신 사람 목소리에 가까운 주파수대가 유별나게 강조된 음향이었다. 마치 여러 악기 소리를 들을 줄 모르던 꼬마 때 내 귀에 들리던 음악의 형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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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콕이 2분 5초짜리 비틀스 원곡을 즉흥 연주를 포함한 8분 7초짜리 재즈로 바꾼 '노위전 우드(Norwegian Wood)'는 이 음반의 세 번째 곡. '노르웨이의 숲'으로 잘못 번역되기도 하지만 '노르웨이산 목재'가 맞다. 화자는 노래 속에서 낯선 여자의 집에 갔다가 욕조에서 혼자 잔 뒤 그녀가 자랑한 노르웨이산 목재로 된 가구에 불을 지른다.
내 덴마크산 목재는 50년 동안 단단한 결 사이로 어떤 이야기를 숨겨뒀을까.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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