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따라 걷기 | 서산국화축제와 아라메길] 낙목한천 홀로 핀 국화.. 아라메길, 그 옆에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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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아라메길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다. 상아산 정상에서 왼쪽으로는 가야산, 오른쪽으로는 서해 바다를 보며 산과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 서산 아라메길이다. |
깊어가는 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라 하지만, 오히려 인간에게는 상념에 잠기게 한다. 상념에 빠지는 계절, 가을의 상징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가을의 주된 정서는 서리를 맞아가며 피는 국화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오상고절(傲霜孤節)' 이 한마디로 표현된다.
그렇다. 가을은 국화의 계절이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춘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나니,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조선 후기 문신인 이정보(李鼎輔·1693~1766년)가 국화를 예찬한 시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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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바다와 접해 걷는 서산아라메길 제4구간 범머리구간 해안선을 따라 갯벌을 보며 걷고 있다. |
국화는 예로부터 가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꽃이다. 문학작품 속에 단풍, 기러기와 함께 단골로 등장했으며, 동양화에서 사군자의 한 자리를 거뜬히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 민화에서도 국화꽃을 가을의 화초로 즐겨 그리고 있다.
현대에 와서 국화와 관련된, 국민 누구나 한번 이상은 읊어봄직한 빠트릴 수 없는 시가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다. 워낙 유명하지만 깊어가는 가을에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자.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겨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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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제1구간 마애여래석불이 있는 곳을 가고 있다. |
다시 읽어 봐도 계절과 인생과 국화의 아름다움을 절묘하게 섞어 노래한 시가 아닐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 절절히 다가오는 것 같다.
국화의 계절에 국화축제를 찾아간다. 국화를 시꽃으로 정한 지자체가 서산이다. 서산에서 1996년 시작한 국화축제가 올해로 18년째를 맞아 11월 1일부터 10일까지 충남 서산시 고북면 가구리 '한농원' 일원 3만여 평에서 열린다. '한농원'은 주인 한엄식씨의 성을 따서 지었다.
한농원에는 수만 그루의 국화가 꽃을 피울 채비를 하고 있다. 10월 중순 현재까지 일제히 꽃망울을 머금고 있을 뿐이다. 사과나무밭에도, 포도밭에도, 비닐하우스에도, 화분에도 축제일을 기다리고 있다. 성급한 놈들은 벌써 꽃망울을 터트려 눈길을 끌려고 한다. 조금 일찍 개화하는 아스타는 벌써 진보라색의 화려한 색깔을 뽐내고 있다. 한농원의 주인 한엄식씨는 "축제 때 피는 국화꽃이 100만 송이는 족히 될 것"이라고 자랑한다. 한농원 일대가 울긋불긋 '국화천지'가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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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서산 허수정 문화관광해설사가 마애여래석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서산시 시꽃(市花)이 국화
종류와 전시하는 작품도 다양하다. 분재와 현애국, 다륜대작, 목부작, 석부작 등 1만여 점이 작품 형식으로 전시되고, 야외축제장에는 대국·소국·들국화 등이 대형 하트와 한반도 지도, 소나무정원, 구기자와 국화터널 등에서 각각 자리를 차지하면서 방문객 맞을 채비를 끝냈다.
사과나무와 포도나무 밑에서 자라는 국화는 맺힌 사과와 포도와 어울려 더욱 운치를 더한다. 일명 '과수원 속 국화'며, 국화향에 취한 사과라고 부른다. 국화 향기를 맡으며 자란 사과는 더욱 알차고 맛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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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아라메길에도 붉은 단풍이 짙게 물들어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사진 서산시청 제공 |
통로엔 잔디 대신 보리를 심어 더욱 푸르게 한다. 엄씨는 "어린이들이 국화를 보면서 마음대로 뛰놀 수 있도록 일부러 보리를 심었다"고 했다. 농원 안에 국화가 없는 곳에는 마찬가지로 알타리를 심어 더욱 푸르게 보이게 한다. 녹색의 알타리들은 국화를 구분 짓는 역할을 한다. 구분된 국화는 하트로, 한반도 지도로 다시 태어난다. 쓸데없는 공간이 없을 정도로 알차게 이용하고 있다.
축제기간 동안에 국화꽃따기 체험행사도 한다. 1인당 3,000원만 내면 한 바구니 한도 내에서 마음껏 국화꽃을 따 갈 수 있다. 방문객들은 따 간 국화꽃으로 국화주를 담그기도 하고, 베개나 이불 등에 넣기도 한다. 엄씨는 "축제기간 동안 체험장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고 강조한다.
국화는 개화시기에 따라 분류한다. 7월에 개화하는 국화는 하국, 8월은 8월국, 9~10월 상순에 꽃 피는 국화는 9월국, 10월 중하순~11월 상순에 피는 국화는 추국, 11월 중하순~12월 중순에 피는 국화는 동국이라 한다. 이 중 추국이 국화를 대표한다. 엄씨는 "한농원의 국화는 10월 말이나 11월 초부터 일제히 꽃을 피우기 시작해서 보름 이상 계속 된다"고 설명했다. 한농원에는 가을의 대표적인 국화가 꽃을 피운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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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국화는 포도뿐만 아니라 가을 사과밭 밑에서도 함께 자라고 있다. |
서산국화축제 방문객은 지난해 10일간 개최하는 동안 8만~10만 명 정도가 찾은 것으로 추산한다. 하루에 평균 1만여 명 내외다. 민간 주도로 시작된 국화축제의 개최 기간이 불과 10일밖에 안 되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많은 사람이 찾아와 가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서산국화축제는 애초 소방대 전·현직 대원들의 모임인 '선후동지회'에서 시작됐다. 1996년 국화가 좋아서 분재하고 가꾸고 하던 선후동지회 회원 몇몇이 "우리끼리 보기 아깝다"며 서산시청 앞에 전시했다. 반응이 좋아 몇 년 계속했다. 그게 자연스럽게 축제로 이어졌다. 서산시 기술보급과에서 매년 3,000여만 원 내외의 자금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정도다. 올해는 3,500만 원을 지원했다.
처음엔 선후동지회 중심으로 개최하던 축제가 9회 축제 때부터 축제추진위원회를 본격 구성했다. 동호회 성격에서 지역축제 형식으로 발전시키자고 합의한 것이다. 농촌지도회·농가주부모임·적십자·이장단회·마을부녀회 등 20여 마을이나 사회단체장들이 추진위원으로 대거 참가했다. 그 사이 회원들도 120여 명이나 늘었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국화를 가꾸고 행사를 준비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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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아라메길 제1구간 상왕산 정상에 있는 쉼터에서 일행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올해는 '국화, 그 가을빛 추억 속으로'라는 주제로 열린다. 다양한 행사도 마련했다. 11월 2일 시조연구회의 시조 발표회도 있다. 이어 우리소리아카데미에서 민요 발표회도 갖는다. 3일엔 뜬쇠예술단의 난장공연도 볼거리로 제공한다. 9일엔 한국예총 서산시지회에서 거리음악회를 갖고, 풍물공연으로 국화축제의 분위기를 더욱 띄운다.
1인당 3,000원에 국화 꽃따기 체험
원년부터 국화축제를 기획하고 주최하는 한농원 한엄식씨는 "매년 국화축제를 무료로 개최하면서 마을단체 회원들이 자원봉사로 행사를 준비하고 무사히 치르고 있다"면서 "국화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와서 잠시나마 국화 속에 빠져드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많은 방문객이 찾아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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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개심사 범종각에 새겨진 김종필 전 총리 가족들의 명단을 허수정씨가 가리키고 있다. |
낙목한천 홀로 핀 국화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한 후 쉬엄쉬엄 걸으면서 서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길이 서산 아라메길이다. 아라메길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을 예스럽게 부른다는 '메'를 결합해서 명명한 길이다. 서해 바다와 유서 깊은 가야산이 만나는 서산의 지역적 특징을 잘 살린 이름이다. 서산시 관계자는 "서산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둘러볼 수 있는 길을 뜻하며, 공모를 통해서 결정한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2012년 안전행정부의 '우리 마을 녹색길 베스트10'에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제1구간 주변엔 서산 8경 중에 1·2·4·6·8경 모두 5경이 산재해 있다. 뿐만 아니라 국보와 보물을 포함한 서산의 국가지정문화재 90% 이상이 이 구간에 있다. 놓치기 아까운 길이다. 서산 아라메길 제1구간은 서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가장 응집시켜 놓았을 뿐만 아니라 서산의 역사를 제대로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다. 이 구간을 한 번 걸어보기로 한다.
용현계곡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용현계곡은 강댕이미륵불과 마애여래삼존상, 보원사지로 올라가는 초입이다. 고풍저수지로 내려오는 계곡 물줄기의 끝자락이기도 하다. 용이 승천하려고 상왕산의 정기를 마시며 잠자고 있는 계곡으로 통한다. 서산의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며 놀던 곳이기도 하다. 옛날엔 강당골이라고 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이 지역에 들어와 '강당'을 열었다고 해서 기인한 지명이다. 그래서 이 길 자체를 '강당길'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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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서산국화축제 기간에 선보이는 한반도 모양의 국화꽃이 활짝 피어 있다. 사진 서산시청 제공 |
얼마 지나지 않아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국보 제84호인 마애여래삼존불상이 나온다. 불상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달리 보이는 밝고 온화하고(아침) 은은하며 자비로운(저녁) 미소로 인해 '백제의 미소'로 명명된 마애여래불상은 백제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2012년 우리 마을 녹색길 베스트10에 선정
서산마애불은 오랜 시간 지역민들 사이에서만 알려져 있다가 1958년에서야 인근 나무꾼의 증언에 의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장쾌하고 넉넉한 미소를 머금은 석가여래 입상(중앙),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간직한 관세음보살(왼쪽), 천진난만한 소년의 미소를 품은 미륵반가사유상(오른쪽)은 각각 과거와 현세, 미래를 상징한다. 보통 백제의 불상은 균형미가 뛰어나고 단아한 느낌이 드는 귀족 성향의 불상과 온화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서민적인 불상으로 나누는데, 마애삼존불상은 후자의 대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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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국화축제 회원들이 화분에 담긴 국화를 보살피고 있다. |
출발부터 백제의 미소로 강한 인상을 받으며 한참을 바라보다 긴 여운을 남기고 갈 길을 재촉한다. 이어 조선시대 해미현에 거주하던 시인묵객들이 노송과 함께 노닐던 정자 같은 바위, 방선암에 이른다. 널찍한 바위가 계곡 바로 옆에 있어 누구나 놀다갈 만한 곳이다.
보원사지로 가는 이정표가 나오고 곧이어 보원사지에 도착한다. 한때 100개의 암자를 거느렸다고 하는 고사찰이다. 사적 제316호로 보물 제104호인 5층석탑, 보물 제102호인 한국 최대의 석조, 보물 제105호인 법인국사 보승탑, 보물 제106호인 보승탑비, 보물 제103호인 당간지주 등 유물이 줄줄이 남아 있다. 유물로 봐서는 예사 절이 아닌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지금도 유적 발굴이 계속되고 있으며, 보원사 축대를 복원하는 작업도 동시에 하고 있는 듯하다.
보원사지를 지나면서부터는 산길로 접어든다. 상왕산(象王山·353m)이다. < 여지도서 > 에는 상왕산에 대해 '관아의 서북쪽 10리에 있으며, 가야산에서 뻗어온다'고 수록돼 있다. < 세종지리지 > 에는 상왕산에 대해 '현의 사람들이 진산(鎭山)으로 삼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산 모양이 상아 뿔과 같아서 상왕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한다. 불교 색채가 물씬 풍기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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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보원사지 5층석탑과 보승탑, 보승탑비가 백제의 흔적을 대변하는 듯하다. |
한때는 가야산과 상왕산을 혼동해서 부른 적도 있다고 역사서는 전한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 에는 '가야산은 현 동쪽 11리 지점에 있는데, 상왕산과 서로 연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백제 때는 상왕산으로 불렸는데, 신라통일 후 이 산 밑에 가야사를 세우면서 가야산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가야산(加耶山)이란 이름은 < 호산록 > 에 '부처의 서적을 참고해 보면 가야산이란 이름은 본래 불서(佛書) 가운데서 유래한 것이다'라고 나온다. 불교에서 유래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상왕산 숲길로 아라메길은 이어진다. 보원사지가 해발 140m 내외 되는데, 상왕산은 350m 남짓 된다. 정상 쉼터에서 일락산 정상으로 내포문화숲길과 연결된다. 아늑한 솔숲에 여러 사람이 동시에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이정표와 함께 잘 조성돼 있다. 상왕산 아라메길은 옛날 보원사에서 개심사로, 가야산 수덕사로 스님들이 오가던 길이다.
이제는 개심사로 향한다. 개심사 산신각이 먼저 나오고 이어 개심사 본체에 다다랐다. 대웅전 건축양식이 조선 초기 다포계 목조건물로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해서 보물 제143호로 지정됐다. 개심사 영산회괘불도는 보물 제1264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보물 제1619호, 오방오제위도 및 사직사자도는 보물 제1765호 등 개심사에도 보물이 산재해 있다. 길을 안내한 서산시청 문화관광과 윤미경씨와 문화관광해설사 허수정씨는 "봄이면 왕벚꽃으로 가늑한 개심사가 출사가들의 애호장소로 꼽힌다"며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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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개심사에도 울긋불긋 단풍이 화려하게 물들어 있다. 사진 서산시청 제공 |
'백제의 미소'로 명명된 국보 마애여래불상
개심사 범종각에 시주한 사람들의 명단을 유심히 보니, 제일 첫 머리에 김종필이란 이름이 얼핏 보인다. 허수정씨는 "충청도 출신 최고의 정치인이었던 김종필씨가 시주를 많이 해서 가족 명단이 제일 첫 머리에 새겨져 있다"고 귀띔했다.
야트막한 산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다 드디어 해미읍성 북문에 도착했다. < 세종실록지리지 > 에 따르면 '해미'는 고려의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에서 한 글자씩 빌어 1407년(태종7)에 만들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 신증동국여지승람 > 에서는 해미읍성에 대해 '돌로 쌓았는데 주위가 3,710척에, 높이가 12척이며, 서쪽에 있는 조그마한 시냇물이 성안으로 흘러들어 온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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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서산 허수정 문화관광해설사가 보물인 보원사지 석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해미읍성은 우리나라 성곽 중 가장 보존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꼽힌다. 현재는 완전히 복원한 상태다. 일제에 의해 성곽이 허물어지고, 읍성 내부는 민가에 불하되어 국유지는 거의 없는 상태였다. 이를 1970년대부터 점차 보상하면서 복원하기 시작해 2000년대 들어 거의 과거의 모습을 회복한 것이다.
해미읍성은 충청병마절도사영이 1414년 덕산에서 해미로 옮겨지고 다시 1651년 청주로 옮겨질 때까지는 군사적 중심지였다. 서해안에 자주 출몰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230여 년 동안 내포지방을 굳게 지킨 성곽이었다. 이곳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병사영의 군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또 다산 정약용과 정약전이 유배 와서 잠시 머물기도 했던 것으로 전한다. 근대에 와서는 천주교 박해 때 1,000여 명 이상이 처형 당해 시체로 산을 이루었던 장소였다. 그래서 지금은 천주교 성지로 꼽기도 한다.
해미읍성 주차장이 제1구간 마지막 지점이다. 용현계곡에서 마애불~보원사지~개심사를 거쳐 해미읍성 주차장까지 13.8km를 5시간 20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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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구불구불한 개심사 오르내리는 길이 아름답게 늘어서 있다. |
< 신증동국여지승람 > 제19권 서산군편에 서산에 대해서 조선 전기의 문신인 조위(曺偉·1454~1503년)의 시를 소개하고 있다.
'훈훈한 바람 불어 깊숙한 궁실에 야당화(野棠花) 피었는데, 아전들 나가고 텅 비인 관아 뜰엔 돋아 오른 풀빛이 이끼처럼 진하다. 위포(葦浦)의 조수 소리 바다로 다 돌아가서 고요하고, 상산(象山)의 구름기운 하늘과 맞닿아 오는구나. 유숙이 살던 옛집은 어느 곳인지 찾을 길 없고, 최치원도 신선되어 간 뒤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고적 찾아드니 사람의 감개만 더하게 할 뿐, 한 술잔에 취하여 우레같이 코나 골거나.'
산과 바다와 옛 선인들의 흔적을 좇는 선비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바로 그곳이 서산이다. 그 서산에 국화와 더불어 아라메길을 걸으면서 늦가을 정취를 맘껏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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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서산 아라메길 제1구간 개념도 |
서산 관련 정보
교통
서울에서 자가용으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서산IC에서 32번국도→운산→ 고풍리를 거쳐 서산 용현리 용현계곡에 입구에 도착한다. 경부고속도로는 천안IC에서 아산→예산~45번국도→ 덕산→운산→618번 지방도→ 고풍리를 거쳐 용현계곡에 입구에 도착한다. 대중교통으로는 고속버스를 타고 서산공용버스터미널에서 내리면 운산행 시내·시외버스를 탈 수 있다. 이 버스가 고풍리 고풍저수지를 지나 용현계곡 입구에 도착한다. 30~40분 소요. 문의 서산공용버스터미널 041-665-0465.
숙식(지역번호 041)
서산에 별미가 많다. 해미읍성 내 국밥도 옛날의 추억을 되새기며 지나는 길에 한번쯤 먹어볼 만하다. 서산은 뭐니뭐니 해도 꽃게가 압권이다. 5월이면 알이 꽉 찬 암꽃게, 11월부터는 살이 토실토실한 수꽃게가 밥상의 밥도둑 역할을 한다. 서산 6쪽마늘도 서산특산물 중의 하나다. 용현계곡에서 차로 5분 거리인 백제의미소 펜션은 황토방과 어울린 정취가 매우 뛰어나다. 문의 663-0890 또는 010-3395-0122. 서산꽃게장 665-8829. 관광문의 서산시청 문화관광과 660-2499. 해미읍성 관광안내소 688-3069. 아라메길 관광안내소 662-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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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 |
황금산을 아시나요?
몽돌 해변과 코끼리바위 유명… 임경업 장군 초상 모신 산신당
황금산(黃金山·156m)은 서산 9경 중 7경이다. 해송과 야생화가 어우러진 숲길과 몽돌로 이루어진 해안이 절경이다. 산을 넘으면 코끼리바위가 있는 아름다운 해안절벽과 함께 몽돌해수욕장이 맞는다. 높지는 않지만 해발 '0' 상태에서 오르기 때문에 조금은 등산하는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옛날엔 섬이었지만 지금은 매립되어 걸어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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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 |
황금산의 원래 이름은 평범한 금을 뜻했던 황금에 비해 고귀한 금으로 여겼던 '항금'의 명칭을 딴 항금산(亢金山)이었다고 전해진다. 서산 서쪽의 바위절벽으로 서해와 접해 있고, 금을 캤다고 전하는 2개의 동굴이 남아 있다. 산 정상에는 예로부터 풍년과 안전을 기원했던 당집이 있다. 일제 때 없어졌다 매립지역에 들어온 삼성화학주식회사에서 일부 지원해서 서산시에서 당집(黃金山祀)을 복원했다. 매년 봄 제향을 지내고 있다.
그런데 그 산신을 모신 자리에 임경업(594~1646년) 장군 영정이 걸려 있다. 임 장군은 광해군 10년(1618)에 무과에 급제했으며, 친명반청의 사회 분위기와 함께 우국충정에 뛰어난 충신이자 무장으로 평가받았다. 심기원의 모반사건과 관련되어 인조 24년(1646)에 친국(親鞫·임금이 중죄인을 직접 신문하던 일)을 받던 중 김자점의 명을 받은 형리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임경업은 명나라에 대한 의리와 명분을 내세우며, 반청을 표명하여 민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명망 있는 장군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대내외적 정세에 밝지 못해 결국 옥사한 불운의 인물이다. 민중은 그를 무능하고 실패한 장군으로 머물게 하지 않고 민족의 영웅으로 재탄생시켰다.
신격화된 장군신으로 임경업 장군을 모신 사당은 평북 의주군 백마산성에 그가 업적을 남긴 곳에 있다. 하지만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러 다닐 때 태안을 거쳐 갔기에 연관시켜 모시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는 백마산성뿐만 아니라 연평도 충렬사의 산신이기도 하다.
임 장군을 이곳 산신으로 모신 내력은 이렇다. 황금산 뒤쪽 바다는 물이 깊고 물살이 위험한 해역이다. 이른바 항금목, 항금항이라 칭하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는 배마다 안전을 기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염원을 담아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황금산 산신과 임경업 장군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는 것이다.
완만한 숲길과 절경을 자랑하는 해안절벽, 때 묻지 않은 바다로 트레킹과 등산코스로 제격이다. 물론 땀을 뻘뻘 흘리는 등산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시시할 수도 있다. 트레킹 수준의 등산을 하면서 경치를 즐기는 여유를 가지고 산과 바다를 동시에 보기를 원한다면 후회하지 않을 산이다. 산을 넘어가면 호랑이굴, 코끼리바위, 굴금 등 예로부터 내려오는 정겨운 지명을 따라가다 보면 황금산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 단테 神曲의 지옥 풍경… 말이 안 나온다, 그저 감탄사만…
▶ 연말이면 매일 毒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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