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34>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부도
서울이 조선왕조 도읍으로 정해지는 데 태조 이성계 외에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승려인 무학(1327~1405)이다. 새 도읍지 후보로는 계룡산을 포함, 10여개가 있었다. 이성계는 일일이 답사를 다녔고 대사로 높여 대접한 무학에게 자문을 구했다. 실록에 따르면 1394년 8월 고려 남경터를 보여준 뒤 의견을 물었을 때 무학은 "사방이 높고 수려하며 가운데는 평평하니 도읍할 만하다"고 했다 한다. 600년 역사의 서울이 결정된 순간이다. 구세력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성계의 천도의지와 한강유역의 지정학적 고려, 그리고 무학 등 당시 불교계의 풍수지리설 영향에 따른 것이다. 불교는 부패집단으로 지탄받았으며 왕조교체의 빌미도 됐지만 아직 이념적으론 건재했다. 하지만 점차 수세에 몰리게 된다. 무학이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태종)과 사이가 나빴고 또 전반적인 숭유억불 정책이 강화되면서 서울과 관련한 그의 역할은 잊혀지고 '왕십리'같은 설화로만 남았다. 사진은 양주 회암사에 있는 무학대사 부도(덕이 높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넣고 쌓은 돌탑)다. 무학이 생전에 머물던 회암사는 왕실사찰로 조선 초까진 번성했지만 지금은 터만 있다. 새 회암사가 옛 회암사터 위쪽에 세워졌다.
글·사진=최수문기자 chs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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