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떠받치기'로 전세대란 못막는다

2013. 12. 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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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주 연속 전세가 상승"… "'하우스 푸어' 손절매해야 재앙 막는다"

[미디어오늘 김병철 기자]"전세 매물이 없다. 세입자들이 대기 순번대로 기다렸다가 매물이 나오면,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금부터 넣는다"(공인중개사)

전세대란이 갈수록 심각하다. 많은 세입자들은 매달 내야하는 월세보다 전세를 선호하지만, 전세의 월세 전환은 늘어나고 전세 공급량은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전세가도 덩달아 치솟는다는 점이다. 벌써 65주 연속 상승했고, 언제쯤 잦아들지 예측이 어렵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는 "전세공급 부족현상이 해소되지 않아 전세시장은 상승기조가 이어질 전망"이라고 예측했다. 국토교통부는 "전셋값 상승은 매매시장 부진에 따른 전세 수요 증가, 월세 전환이라는 임차시장의 과도기적 현상에 따른 수급 불균형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전세대란은 부동산 시장 패러다임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저성장 저금리 시대가 도래하면서 자가 보유보다 전월세 등 세입자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자가 보유는 희망사항 일뿐이다. 선대인연구소에 따르면 2010년 기준 20대 세대주가 월세에 사는 비율은 52.6%, 전세에 사는 비율은 35.1%로 합쳐서 87.7%다. 대부분 취직을 한 30대도 전세 42.1%, 월세 24.0%로 세입자 비중이 자가(31.3%)의 두 배에 달한다. 40대도 세입자 비중(52.0%)이 자가(46.3%)보다 더 많고, 50대가 들어서야 세입자 보다 자가 보유 비중이 많아진다.

그런데 정부는 전세대책 보다 매매 활성화 대책에 더 집중하고 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폐지와 분양가 상한제 신축운영, 수직 증축 리모델링 허용 등을 골자로 하는 4·1, 8·28 대책도 핵심은 매매시장 활성화다. '부동산 대세하락기'에 인위적인 '집값 떠받치기'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와 주요 언론은 외면하지만 이런 지적은 여당 내에서도 나온다. 친박계 '경제통'인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집값을 떠받쳐 주택매매를 활성화하면 '미친 전세'가 잡히느냐"며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약발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대시장을 중심으로 재편된 상황에서 어떤 매매 활성화 대책도 전세의 매매 전환 효과는 극히 제한적"이라며 "오히려 전셋값은 못 잡고 주택가격만 자극하는 무책임한 정책일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 서울시 송파구 잠실의 한 공인중개소 ⓒ연합뉴스

야당과 시민단체는 전세대란 대책으로 임대차계약 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도입을 주장하며 여당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이른바 부동산 법안 '빅딜(맞교환)설'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 전월세대책 TF 공동위원장인 문병호 의원은 지난 24일 '3대 세입자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이 법안들은 전세가가 폭등하는 상황에서 세입자를 보호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전월세 상한제'는 전월세를 연 5% 이상 인상할 수 없도록 제한하며, '계약 갱신청구권'은 2년의 계약기간 후 추가 2년의 계약연장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자는 법안이다. 또 '임대주택 등록제'와 '저소득층 월세 보조 확대'도 포함됐다.

정치권 일부에서 꾸준히 군불을 떼는 부동산 법안 빅딜설은 여야가 서로 원하는 법안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여당이 주장하는 분양가 상한제 폐지, 양도세 중과폐지와 야당이 요구하는 전월세 상한제, 계약 갱신청구권 등이 대상이다. 이에 대해 최창우 전국세입자협회 공동대표는 "민주당이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 갱신청구권을 전면 관철할 생각은 포기하고, 정부와 새누리당 기조에 끌려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서로 다른 취지의 입법인데 빅딜설이 나도는 것 자체가 슬픈 대한민국의 실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이한 건 '임대주택 등록제'가 빅딜 대상으로 거론된다는 점이다. 임대주택등록제는 '임대시장을 양성화'하는 것으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갈릴 제도가 아니다. 그러나 다주택자들이 임대사업 등록 의무를 꺼리는 것을 감안해 여당이 반대하고 있다. 세수 부족을 이유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외치는 정부 여당이 '임대시장 양성화'는 주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는 "현재 등록하지 않은 임대주택이 95%"라며 "정부, 여당도 등록제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들은 임대사업을 등록하면 세금징수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며 "반대할 명분은 없지만 정부 여당이 정치적으로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전월세 상한제, 임대차계약 갱신청구권와 더불어 임대주택 등록제의 도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등록제가 없으면 임대인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만약 '딜'을 하려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폐지와 임대주택 등록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계약 갱신청구권 등을 도입하더라도 임대인이 '자신의 딸이 들어와야 하니 나가달라'고 하면 실효성이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 교수는 세금 징수에 대한 우려와 저항을 줄이기 위해, 세금 유예 등을 통한 등록제 도입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양도세 중과폐지를 해주는 대신 임대사업 등록하게 한 후, 세금도 유예해주고 월세 수입이 300만원 이하라면 과세를 안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시장 양성화와 투명화라는 인프라가 조성돼야 다른 제도도 성공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연합뉴스

현재 전세가 폭등의 원인은 '안전한 전세'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선대인 소장은 '선대인, 미친 부동산을 말하다' 책에서 "집주인들이 대부분 빚을 잔뜩 안고 있다 보니 보증금을 떼일 염려가 없는 '안전한 전세'가 드물다"며 "'안전한 전세'가 주식시장의 블루칩처럼 가격의 기준이 되어 전셋값이 계속 상승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파주시 A아파트단지 933세대의 사례를 보면 '깡통주택'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2006년 분양돼 2009년 입주한 이 아파트 933가구 중 84.5%인 788가구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 가구당 평균 대출금 추정치는 3억267만원이다. 682가구(73.1%)가 전세를 줬으며 이중 322가구가 3억원 이상을 대출했다. 선 소장은 전체의 약 77.1%에 해당하는 526가구를 '불안한 전세'로 분류했다. 특히 대출액과 담보액의 합계액이 이미 집값의 100%를 넘은 가구가 414가구로 전체의 60.7%나 차지한다.

선 소장은 "이들의 전세주택은 현재 가격대로 집이 팔린다고 해도 세입자들이 보증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떼일 가능성이 있는 셈"이라며 "A아파트의 경우 전체 전세 물량의 4분의 3 이상이 '불안한 전세'였고, 60% 이상이 이미 '깡통전세' 상태"라고 설명했다.

선 소장은 전세대란을 해결하기 위해 '하우스 푸어'들이 빠르게 손절매를 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선 소장은 "'불안한 전세'를 안전한 전세'로 바꾸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며 "기업으로 치면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값이 추가 하락할 경우 하우스 푸어 집주인뿐만 아니라 세입자까지 손실을 떠안게 된다"며 "정부는 '무리한 집값 떠받치기' 정책을 그만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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