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작 지상중계] 윤이형 '쿤의 여행' 심사평
"쿤을 뜯어냈다. 말 그대로, 뜯어냈다." 윤이형의 '쿤의 여행'의 첫 구절이다. 난데없이 '쿤'이라니? '쿤'은 무엇인가? 소설에서 '쿤'은 막연한 추상적 상징물이 아닌, 구체적 물질성을 지닌 실체로 그려지고 있다. 그것은 "우무나 곤약과 비슷하게 물컹거리는 회백색 덩어리"로 누군가에게 달라붙어 그 누군가의 삶을 대신하며 점점 그 누군가가 된다. 그 누군가가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무거움을 대신함으로써 그 누군가가 영원히 성장하지 않아도 될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쿤'은 고치를 뜻하는 코쿤(cocoon)을 떠올리게 한다. 혹은 오스카 와일드의 장편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 나오는, 현실의 도리안 그레이 대신 늙고 추해지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무섭고 어렵고 하기 싫은 일은 쿤이 한다. '나' 또한 그런 쿤 뒤에서 처음 쿤을 만났던 열다섯 살 그대로 남는다. 여전히 미성숙하고 무책임하고 무감각한 채로. '쿤'이 구체적 현실을 감당하는 동안, '나'는 세계와 점점 멀어져서 잃지도 얻지도 않는 제로 게임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이제 쿤을 뜯어 낸 '나'는 이 세계를 감당할 만큼 성숙해질 수 있을까? 소설에서 이 물음은 해결되지 않는다. 다만 '쿤'의 보호막 속에서 '불완전한 어린애'의 상태를 뿌듯해하던 코쿤족들이 고치 바깥으로 나갈 결심을 했다는 것. 새 시대의 희망은 그렇게 불완전하게 시작되고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예심위원 심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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