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대해 말하기

가을 끝자락에 주목받은 젊은 소설가 장편 2권이 나란히 나왔다. 백가흠 '향'(문학과지성사)과 황정은 '야만적인 앨리스씨'(문학동네)다.
백가흠의 두 번째 장편인 '향'은 그의 작품세계에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는 작품이다. '향'은 죽음이란 무엇이며, 얼마나 가까운가에 대해 질문하는 소설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이미 죽어 있거나, 죽어서도 죽음을 향해 가는 지난한 여행의 연속을 담아내고 있다.
해성과 케이를 비롯한 인물들은 그저 아침에 깨어나 사랑을 하고 식사를 하고 여행을 떠나며 '하루'라는 세상의 질서에 순응해 다만 살아간다. 여러 인물은 각자 생과 업을 받치고 살아가면서 어떠한 형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케이는 축구선수로 자라지만 부상을 입고 고향을 떠나온다. 그러던 중 줄리아를 만나 사랑을 하고 하루하루를 견딘다. 해성은 프락치로, 보좌관으로, 다시 국회의원으로 살아가다 비리를 저지르고 떠난 여행지에서 길을 잃는다. 이렇게 많은 인물들이 각자 사연을 품고 숲으로 흘러든다. 이들을 공통적으로 연결시켜주는 것은 각자가 겪거나 만나게 되는 죽음의 사연이다. 작가는 흥미로운 인물의 지형도를 그려내지만,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자칫 길을 잃기 쉬운 복잡한 서사를 만들어냈다.
'야만적인 앨리스씨'는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된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써내려간 잔혹 동화 같은 소설이다. '파씨의 입문' '백의 그림자'에서 기묘하고, 독특한 소설세계를 만들어내 '황정은풍'이라는 고유명사를 만들어낸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단숨에 여장 노숙인 앨리시어의 내면으로 육박해 들어간다.
회상을 통해 전해지는 앨리시어의 소년 시절은 황폐하고 처절한 폭력의 세계다. 재개발을 앞둔 고모리는 그저 한몫을 챙겨 떠나려는 마을 사람들이 남은 곳. 그곳에서 앨리시어와 동생은 속수무책으로 어머니에게 구타당한다. 아버지는 일상적인 폭력 앞에 무심할 뿐이다. 끔찍한 모성, 상습적인 구타, 가족의 무관심, 비정한 이웃. 아이들은 서늘하고 직설적인 대화를 나눈다. "신고해라/누구를. 신고해서 벌을 줘/누구를./엄마를./신고하면 죽냐./죽을걸./알았어./할 거냐?" 폭력의 강도는 점점 심해지고, 결국 엘리시어는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폭주를 하고 만다. 믿고 싶지 않은 잔혹한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작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동화의 외피를 빌려온다. 독백처럼 이어지는 몽환적인 서사가 제법 긴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김슬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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