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의 정치시평]기이한 대한민국 '꼬레아 가네'
1960년대 인기를 끌었던 영화 중 < 몬도가네 > 라는 영화가 있다. 세계의 충격적인 풍습들을 다큐멘터리로 소개한 이탈리아 영화로 직역하면 '개 같은 세상'이라는 뜻이지만 세상의 기이한 것들을 모아놓은 것이기에 '기이한 세상' 정도로 의역해 이해했다. 요즈음 자꾸 떠오르는 것이 이 영화제목이다.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자면 몬도가네의 한국판인 '꼬레아 가네', 즉 '기이한 대한민국'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우리가 오랜 투쟁 끝에 민주화를 이룬 지 벌써 26년이 지났다.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만도 6번으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에 이르렀다. 게다가 이제 시대는 1950~1960년대가 아니라 지구화와 정보화가 본격화된 21세기가 아닌가? 그런데 이승만, 박정희 정권 때가 생각나는 국가권력에 의한 관권선거라니 말이 되는가?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댓글작업의혹으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그 규모가 원래의 의혹보다 훨씬 크고 국정원만이 아니라 군까지 개입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한마디로, 반세기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 관권선거가 판을 치던 1950~1960년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게다가 경찰수뇌부는 이를 은폐하기 위해 애를 썼고 이를 조사하는 검찰을 찍어내기 위해 별별 수작을 다 벌이고 있으니 정말 몬도가네가 따로 없는 '꼬레아 가네'이다. 미국의 CIA와 미군정보기관이 예를 들어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 민주당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오바마는 빨갱이"라는 댓글작업을 했다면 어찌 됐을 것인가?
아직도 정보기관들이 문재인 민주당 의원과 같이 급진세력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자유주의적 정치인을 결코 대통령이 돼서는 안되는 종북세력, 반국가세력으로 인식하여 그의 당선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의 당선방해 작업을 벌였다는 사실, 또 그 같은 공작이 결국 세상에 밝혀지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기만 하다. 특히 국정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시민사회대표들이 참여한 과거 청산활동을 통해 과거의 정치적 개입에 대한 자기반성을 했었음에도 그 같은 자기반성 보고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또다시 대선에 개입했다는 것은 참담하기만 하다. 결국 여러 외신들의 대대적인 보도가 잘 보여주듯이, 이번 공작 덕분에 어렵게 이루어 놓은 우리의 민주주의는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되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의 국제적인 이미지에도 손상이 가고 있다.
그러나 정말 충격적인 것, 정말 기이한 것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그 자체가 아니다. 정말 기이한 것은 여권과 보수진영의 반응이다. 여권이 제대로 된 보수세력이라면, 아니 보수-진보를 떠나 상식을 가진 정치세력이라면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철저한 진상규명에 적극 나서는 한편 책임질 것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검찰 수사 관계자들을 야권과 가까운 친노세력으로 몰아가고 야권의 문제제기 역시 대선불복종으로 몰고 감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으니 한숨밖에 안 나온다. 물론 정몽준 의원과 이재오 의원과 같은 중진들은 이번 사태에 대한 여권의 대응에 대해 자기반성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는 예외적 상황일 뿐 여권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번 댓글공작에 대해 "국가기관에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중략)…박근혜 지지자들만 트위터를 쓰고 댓글을 쓰는가"라는 이정현 홍보수석의 발언에는 할 말을 잃게 된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박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 대통령은 본인이 이 같은 공작을 인지하고 있었는가와는 별개로 대승적 입장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와 책임자 처벌을 약속하여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야 했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씨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그것이 아니라 유신독재의 상징적 구호였던 새마을운동을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발전시켜 국민의식혁명을 해야 한다고 천명하고 나서니 답답하기만 하다. 세계화의 21세기에 우리는 관권선거와 관제 국민의식 개조운동이 판을 치던 1950년대와 유신시대로 돌아가는 것인가? 하긴 공식행사에서 유신시대가 그립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판에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정말 기이한 대한민국이다.
<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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