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탕에 삼탕은 기본 '민망한 창조경제'

권순철 기자 입력 2013. 10. 19. 17:02 수정 2013. 10. 1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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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분뇨 처리사업 등 이름만 갖다 붙인 '창조 사업' 수두룩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창조경제'는 여전히 오리무중을 헤매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 정부가 내년부터 추진하겠다고 국회에 제출한 창조경제 실현 사업들 중 상당수가 기존 사업의 재탕 삼탕으로 이름만 창조경제를 갖다 붙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노웅래 의원(민주당)이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로부터 제출받은 '창조경제 실현계획 관련 사업 2014년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가 창조경제 사업이라고 제출한 사업들은 대부분 과거 정부부터 진행돼 왔던 사업들로 '무늬만 창조경제' 사업이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2012년 12월 18일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서 과학기술과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한 '창조경제론 스마트 뉴딜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 박민규기자 이전부터 해오던 사업 포장만 바꿔

중소기업청(중기청)은 중소 지식서비스 기업 육성, 창업 선도대학 육성을 창조경제 사업으로 내세웠다. 중소 지식서비스 기업 육성 사업과 창업 선도대학 육성 사업은 내년 예산으로 각각 75억원과 508억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이들 사업은 해마다 중기청이 해왔던 사업들이다. 중소 지식서비스 기업 육성 사업과 창업 선도대학 육성 사업은 이명박 정부 때도 정부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벤처·중소기업의 창조경제 주역화 및 글로벌 진출 강화'라는 전략목표 아래 중소·중견기업 수출경쟁력 강화 사업과 산업기술 국제협력 사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사업 역시 기존 사업을 창조경제로 그럴 듯하게 포장을 한 데 불과하다. 우리 경제의 핵심 경쟁력이 될 수 있도록 중소·중견기업을 키운다는 중소·중견기업 수출경쟁력 강화는 올해에도 72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내년에는 창조경제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한다는 명목으로 91억5500만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우리나라와 외국의 기술 공동개발 등을 지원하는 산업기술 국제협력 사업 역시 과거부터 이어져온 사업이다. 산업기술 국제협력 사업은 내년에 505억5200만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해양수산부(해수부)와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도 '창조경제 사업' 리스트에 이미 하고 있던 사업을 올렸다. 해수부는 해양장비 개발 및 인프라 구축 사업(60억원)을, 농식품부는 축산분뇨 처리시설 사업(45억원)을 창조경제 사업이라고 미래부에 보고했다. 심지어 정부 때마다 하고 있는 정부조직 진단사업도 창조경제 사업으로 둔갑했다. 정부는 안전행정부(안행부) 소관인 정부조직 진단관리사업이 '국민과 정부가 함께하는 창조경제 문화 조성'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창조경제 사업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직이름·직위에도 '창조' 덕지덕지

미래부가 국회에 제출한 창조경제 실현계획과 관련한 세부 사업을 보면 총 340개 중 각 부처의 창조경제 관련 신규 사업은 40개로 11.7%에 불과했다. 예산규모로 보면 더욱 미미하다. 전체 340개의 총 예산이 6조4900여억원인 데 비해 신규 사업 예산은 3406억원(5.2%)에 그쳤다. 창조경제를 외치면서도 정작 새로운 사업은 창조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각 부처가 박근혜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기존의 사업을 창조경제 사업이라고 부풀려 제출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이 일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각 부처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창조경제와 관련해 무엇인가 내놔야 한다는 압박감이 매우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웅래 의원은 "창조경제 실현 사업 중에서 순수하게 창조경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10%대에 머문다는 것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가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닌 기존 사업에 이름만 바꾼 '무늬만 창조경제'라는 것을 방증한다"며 "박근혜 정부는 뜬구름 잡기식 창조경제가 아닌 서민경제를 살리는 실질적인 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창조경제 사업이라고 해서 기존에 없었던 사업을 새로운 사업으로 예산안에 편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하지만 기존의 사업이더라도 실제 사업 방향과 내용에서는 과거와 전혀 다를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부가 창조경제라는 미로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정부는 창조경제와 관련해 올해 5월부터 9월까지 88개의 세부과제를 발표했다. 매달 15개 꼴이다. 그러나 정작 계획대로 실현된 것은 거의 없다. 미래부는 지난 4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①상상도전창업 국민운동 전개 ②제3차 과학기술기본계획 수립 ③SW혁신전략 수립 ④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기능지구 육성계획 수립 ⑤이용자 선택형 요금제 출시 등을 100일 안에 이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중 계획대로 시행된 것은 상상도전창업 국민운동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실행이 늦었거나 아직까지 이행조차 되지 않았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유성엽 의원(민주당)은 "박근혜 정부는 아직도 창조경제의 대표 사례로 싸이와 개콘(개그콘서트)을 언급하고 있다"면서 "창조경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차분한 계획 없이 모양새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각 부처가 조직과 직위에 '창조' 또는 '창의'라는 단어를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최재천 의원(민주당)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모든 부처에 창조행정담당관, 창조기획재정담당관, 창조행정인사담당관이 생겨나는 등 70여개에 이르는 정부부처 조직과 직위에 '창조', '창의'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다. 기존의 행정담당관, 기획재정담당관, 행정인사담당관에 '창조'라는 단어만 붙인 것이다. 최재천 의원은 "이번에 조사된 중앙 정부부처 외에 자방자치단체를 포함한다면 '창조', '창의'가 붙은 조직과 직위 수는 훨씬 많을 것"이라며 "조직에 '창조', '창의'란 단어만 덧붙인다고 창조경제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비판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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