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순환출자의 위험성 입증한 대기업 연쇄부도
동양그룹 계열사의 법정관리 후유증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기업을 부실의 늪에 몰아넣고도 오너 일가는 법정관리 신청 직후 개인금고에 보관된 자산을 빼돌렸다는 의혹도 제기된 터다. 최근 STX·웅진그룹에 이은 동양그룹의 연쇄 부도는 취약한 재무건전성도 문제지만 문어발식 경영구조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순환출자를 고리로 한 선단식 경영구조는 특정 계열사가 부도 위험에 빠지면 나머지 회사도 연쇄 부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때마침 지난 5년간 30대 기업의 계열사 수가 50% 가까이 늘었다는 분석 자료가 나왔다. 그만큼 대기업의 연쇄 부도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재벌닷컴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30대 그룹의 계열사 숫자는 1246개로 역대 최대다. 5년 전인 2007년보다 48% 가까이 늘었다. 재벌기업 계열사 수는 2008년 처음 1000개를 돌파한 뒤 매년 급증 추세다. 금호아시아나를 제외하고는 모든 그룹이 너나 할 것 없이 덩치를 키우고 있는 중이다. 이들 중에는 시중에 유동성 위기설이 돌고 있는 대기업도 상당수 포함돼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계열사 확장을 무작정 나무랄 일은 아니다. 인수·합병을 통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것은 기업활동의 일부다. 하지만 계열사 늘리기가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와 일감 몰아주기를 위한 방편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 기업 확장은 자금사정에 여유가 있을 때의 일이다. 계열사 채무보증을 통해 빚내서 하는 인수·합병은 동반부실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한국경제를 수렁으로 몰아넣은 지난 1998년 대우그룹 해체가 단적인 예다. 무리하게 대우건설을 인수했다가 그룹이 통째 공중분해될 처지에 놓인 금호아시아나도 있지 않은가.
최근 대기업 연쇄 부도가 주목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STX와 동양그룹 부도는 무리한 사업 확장과 취약한 재무구조가 주 원인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금융권 대출과 기업어음 발행 때 계열사 간 물고 물리는 연대보증이 연쇄 부도의 직격탄이 됐다는 점이다. 계열사 간 순환출자 구조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사업 확장과 경영권 방어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회사가 위험에 내몰리면 수습책이 없다는 게 문제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순환출자 규제도 이 같은 악습을 벗어나자는 취지다. 1% 남짓한 지분으로 그룹 경영을 쥐락펴락하는 대기업 총수들의 전횡은 차치하고라도 연쇄 부도의 고리는 끊어야 한다. 재계도 경영권 방어 논리만 앞세울 일은 아니다. 순환출자를 한꺼번에 해소하지 못한다면 신규 출자라도 금지한 뒤 단계적으로 해소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다. 여야 정치권은 대기업의 순환출자 구조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바람직한 규제방안을 조속히 내놔야 한다. 대기업을 믿고 투자했다가 손실을 떠안게 된 동양그룹 투자자의 눈물이 되풀이돼서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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