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반도사관 벗자" 재미사학자 폴 김 박사 '동이배달한민족사' 발간

노창현 2013. 9. 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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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간도협약' 무효청구 국제사법재판소 제기 주역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일본과 청이 멋대로 맺은 사기조약은 원천무효입니다. 간도는 통일 코리아(Corea)가 반드시 찾아야할 우리의 영토입니다."

1909년 9월 4일은 우리 민족에게 잊을 수 없는 오욕의 날이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제국주의는 청나라가 이른바 '간도협약'을 맺고 이 지역의 철도부설권을 받는 조건으로 우리 땅 간도를 멋대로 중국에 넘겨주었다. 청일간의 사기조약으로 대한제국과 중국의 영토는 압록강과 두만강이 경계가 되버렸다.

일본은 1965년 간도협약을 무효라고 국제사회에 선언했지만 남북한 정부 어디도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간도는 현실적으로 중국이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간도를 수복할 수 있는 국제법상의 근거를 갖고 있다고 뉴욕의 재야사학자 폴 김(63 김태영) 박사는 주장한다.

이는 간도협약 100년을 사흘 앞둔 지난 2009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에 민족회의통일준비정부(대표 김영기)가 간도협약 무효청구를 정식으로 제기한 덕분이다. '실효적으로 점유한 영토가 100년이 지나면 해당국의 영토로 간주한다'는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의 100년 시효설은 지난 2009년 뜨거운 쟁점이었다.

당시 선봉에서 피끓는 목소리로 간도협약 무효청구소송을 주장한 주인공이 바로 폴 김 박사다. 동포들의 연대서명과 거듭된 탄원을 이명박 정권은 끝내 무시했지만 정부를 대신해 민족회의측이 '간도협약 100년'을 불과 사흘 남겨두고 국제사법재판소에 정식 제소하는 개가를 올렸다.

폴 김 박사는 4일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국제사법재판소에 무효청구를 제기한 것은 100년 시효설의 함정을 차단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00년이 되기전에 국제사법재판소가 무효소장을 정식 접수했기 때문에 시효설을 근거로 시비를 삼을 여지가 없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해 말 폴 김 박사는 필생의 역작을 탈고했다. 이후 3년이 넘게 손질 보완의 작업을 거쳐 마침내 햇볕을 보게 된 것은 '동이배달한민족사(東夷倍達韓民族史)'이다. 소호출판사에서 지난 여름 발간된 '동이배달한민족사'는 무려 594쪽에 달하는 우리 민족의 참역사 이야기다.

부제로 '김태영의 한국 상고사'가 달린 이 저서는 김 박사가 반평생을 걸쳐 연구하고 찾은 사서와 기록, 자료, 지도를 토대로 엮었다. 그는 수년전의 간도논란을 비롯, 국사학계를 지배하는 식민반도사관을 척결하고 역사의 진실을 찾는데 만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책을 펴냈다고 했다.

김 박사는 "이 책은 현존하는 모든 역사자료들을 토대로 했고 경우에 따라 토씨까지 바꾸지 않고 기록한 곳도 있으므로 엄격히 말해 내가 저자가 될 수 없음을 밝힌다"면서 "당시의 기록을 생생하게 재현시키기 위해 지리지명을 찾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아닌게아니라 책 말미에 있는 참고자료 목록은 눈이 휘둥그레질만큼 엄청난 양이다. 한중일 역사서가 도합 131권, 영어 등 기타외국 서적이 114권이나 된다.

김 박사는 우리 민족의 정확한 명명은 한민족보다는 '동이배달한민족'이 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중국을 '지나(支那)' 혹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약칭 '중공'이라 부른다. 알려진대로 'China'는 지나에서 유래된 영어이고 중국은 수천년전 단군조선이 지어준 이름을 20세기 들어 차용했는데 그 뜻을 천하의 중심국인양 자의적으로 해석해 쓰고 있다는 것이다.

"본래 중국은 단군조선의 제12대 아한(阿漢)의 국태사(國太師)였던 유위자(有爲子)가 지어준 이름으로 '가운데 사이의 땅'이라는 뜻이다. 당시 섬서성과 하남성 일부를 제외한 모든 지나대륙 땅은 단군조선 영토였고 모계와 서출로 이뤄진 지나인들을 한가운데 모여 살도록 배려한 것인데 힘이 강해지자 자신들의 조상이자 큰집인 동이배달한민족의 영토를 침탈한 것이다. 황하 북쪽의 아시아대륙은 고려때까지도 우리 민족의 영토였다. 다른땅은 몰라도 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을 포함한 간도(間島)는 1909년 9월 3일까지 우리 땅이었고 역사적 법적으로 당연히 되찾아야 할 땅이다."<138-139쪽 중국이란?>

그는 "일본인들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왜곡 날조 말살한 식민사학의 노예가 된 강단사학이 해방 65년이 지나도록 바른 민족사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뜻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재야사학이라는 이름으로 동이배달한민족사를 밝히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면서 "재야사학이 고구려 백제 신라 이전의 상고사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식민사학이 '단군조선은 신화다'라는 말 한마디로 삼국 이전의 역사를 완전히 말살시켰기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물론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이나 이론이 식민사학의 바이블인 '조선사'처럼 정리되지 않고 특히 지리의 해석이 제각각인 경우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는 만신창이가 된 우리 민족사를 정리하기 위한 통과의례일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단군조선의 역사기록이 분서갱유(焚書坑儒)로 모두 불타 없어지고 해모수가 세운 북부여 역사는 선비족 모용외의 난으로, 고구려 초기까지 역사기록 유기(留記) 100권은 위나라 관구검의 난으로 각각 소실되고 심지어 조선 태종 이방원은 명나라에 사대하기 위해 단군조선의 기록인 신지비사(神誌泌詞), 해동비록(海東秘錄) 등을 불살랐다. 1910년 8월22일 한일합방을 한 일본은 그해 1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경찰과 헌병을 총동원하여 전국각지에서 강탈한 역사서 51종 약 20만권을 불사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것도 모자라 일본은 1923년 6월 총독부직속하에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해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서를 자신들에게 불리하거나 열등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후세인들이 알 수 없게 조작 날조 왜곡을 했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상고사를 약간이라도 언급하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남아 있는 것이다."<79~80쪽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니다'>

김 박사는 "한민족 상고사는 환국(BC8936)으로부터 배달국(BC3898) 단군조선(BC2333)으로 이어지는 약 9900여년의 역사를 말한다. 특히 환웅천황이 음력 10월3일 아사달(산서성 태원)을 도읍지로 배달국을 세우고 47대 단군들이 2100년동안 통치한 조선을 일본의 이마니시류(今西龍)를 비롯한 식민사학자들이 고조선의 이름으로 신화라고 비하했지만 단군조선은 실존한 대연방국가였다"면서 "따라서 동이배달한민족의 역사역년은 2013년을 기준하여 배달기 5911년을 사용해야 옳으며 음력 10월3일을 우리 민족의 설날로 지정하고 이날을 기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이 책에서 제1대 단군 왕검(王儉)부터 제47대 단군 고열제(高列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기술한 것은 물론, 기자조선과 한사군 등 허구의 역사들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또한 "자국의 수치를 감추고 남의 자랑은 깎아내리며, 자국의 역사는 상세히 기록하고 남의 역사는 간단히 기록하는 춘추필법의 엉터리 기록들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정사로 둔갑하고 있다. 오늘날 동북공정과 탐원공정도 그것의 연장선"이라며 민간차원이 아니라 정부차원에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이밖에 '고구려는 900년간 대륙을 지배한 천자국', '백제와 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 '한글의 역사는 4190년이다'는 놀랄만한 주장의 역사적 논거들을 들고 'Corea로 국호를 되돌리면 동해와 독도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고 한일간의 갈등 해법도 제시하고 있다.

책 발간에 맞춰 모국에 다녀온 폴 김 박사는 '동이배달한민족사'를 국회를 비롯한 정부기관, 전국의 주요 대학 도서관에 일일이 발송을 했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기관이나 단체에서도 필요로 하는 곳에 기꺼이 기증할 생각이다.

'한민족사관정립의식개혁회'라는 역사연구단체를 이끌며 요즘도 동포들을 위한 무료 역사강연회를 열고 있는 그는 "둘째 손자의 이름을 '한(韓)', 손녀는 '동이(東夷)', 넷째 손자는 '국(國')이라고 지었다. 부디 우리 자손들이 동이배달한민족사를 잘 지키고 계승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rob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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