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받는 일등보다 때론 무명선수들의 노력하는 모습이 더 아름다울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남보다 더 많이 뛰어다니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현장취재를 선호합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메이저리그 정상급 유격수 가운데 한 명인 호세 레이예스(30. 토론토)를 만나러 갔습니다. 올 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보고 처음이니 약 6개월만이었습니다. 레이예스와는 평소에도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여서 오랜 만에 만났지만 시간의 공백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토론토 일본인 내야수 가와사키 무네노리)
레이예스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더니 저에게 꾸벅 목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지?'하고 자세히 보니 일본인 내야수 가와사키 무네노리(32)였습니다. 필자에게 영어로 국적을 묻는 그에게 한국인이라고 답하자 그는 서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나는 가와사키입니다"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가와사키에게 "최지만(22. 시애틀) 때문에 작년 스프링캠프 때 먼 발치에서 당신을 본 적이 있다"고 하자 가와사키는 "오, 최상? 최상 굿 히터!"라고 말하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더군요.
일본프로야구(NPB) 소프트뱅크에서 뛰었던 가와사키는 메이저리거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해 시애틀에 입단했습니다. 일본에서 2011년 연봉으로 한화 약 32억원을 받았던 그가 지난해 시애틀에서 받은 금액은 62만 5천 달러, 우리 돈 약 7억원이었습니다.
2011년 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선수(FA)가 된 가와사키가 미국에 오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 일본에서 연봉대박을 터트렸을 겁니다. 안정된 생활과 높은 인기를 누리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가와사키는 부와 명예 그리고 인기를 뒤로한 체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미국 행을 택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나의 우상인 이치로와 한 팀에서 뛰고 싶다"

(토론토 일본인 내야수 가와사키)
하지만 우상과의 행복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7월 이치로가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원했던 우상과의 동행이 끝나자 맥이 풀렸던 걸까요? 가와사키는 지난해 총 61경기에 출전해 타율 0.192 7타점이란 초라한 성적을 남겼고 시즌이 끝나자 시애틀에서 방출 당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일본프로야구팀들이 가와사키를 영입하려고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또 다시 미국 잔류를 선언했습니다. 올 초 토론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가와사키는 트리플 A에서 시즌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레이예스의 부상으로 지난 4월 13일 메이저리그로 콜업되는 운이 따랐습니다.
이후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를 오가며 대주자 또는 대타 요원으로 뛰고 있는 가와사키는 5일 현재 올 시즌 메이저리그 총 80경기에 출전해 타율 0.220 1홈런 22타점 7도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문득 가와사키가 왜 메이저리그에 남기를 원하는지 그 이유를 듣고 싶었습니다. 제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그의 라커로 향했습니다.
다시 한번 더 가와사키와 목례를 주고받은 저는 그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필자가 일어를 못하고 그 역시 영어를 잘하지 못했기에 자연스럽게 우리는 손짓과 발짓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때론 스마트폰의 번역기 도움을 빌리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이치로와 함께 시애틀에서 뛰었던 가와사키)
지난해 가와사키가 몸 담았던 시애틀에는 지금도 토니(Tony)와 다이스(Dice)라는 일본인 통역 2명이 이와쿠마를 돕고 있습니다. 가와사키에게 토론토에도 통역이 있냐고 묻자 없다고 하더군요. 그에게 불편하겠다고 하자 그는 환한 웃음과 함께 라커에 놓여있던 작은 수첩 크기의 영어회화 책을 꺼내 보여주며 "괜찮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일본에서 뛰면 돈도 많이 받고 편할 텐데 왜 미국에서 고생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가와사키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내놓더군요.
"적은 돈? 많은 돈? 돈은 괜찮습니다. 메이저리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 뛸 수 있는 특별한 무대입니다. 야구선수라면 빅리그를 동경하는 것은 당연하며 나 또한 그 중 한 명입니다. 메이저리그 주전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뛸 수 있어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
필자는 또 '일본과 비교해 메이저리그의 무엇이 마음에 드냐'고 묻자 그는 보디랭귀지와 함께 "메이저리그의 자연스럽고 격의 없는 편한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 "일본도 경기 후에는 괜찮지만 경기 중에는 너무 권위적이고 긴장된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하더군요.
가와사키와의 대화는 약 십 여분 정도 이어졌습니다. 언어문제 때문에 비록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지만 그는 대화 내내 밝은 미소와 호탕한 웃음으로 상대를 편하고 기분 좋게 해주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잠시 후 가와사키는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필드로 나갔습니다. 저도 사진을 찍기 위해 자연스럽게 그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운동장에 모인 토론토 선수들은 트레이너와 함께 간단한 미팅을 했습니다. 모든 선수들이 코칭스태프 앞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했지만 가와사키는 홀로 정자세를 취한 체 코칭스태프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비록, 미국에서 활동하는 그이지만 코칭스태프를 향해 예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바른자세로 코치의 말을 경청하는 가와사키)
이날 가와사키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덕아웃에서 경기 내내 동료들을 격려하며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출격명령을 위해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필자는 평소와 달리 토론토의 라커룸을 찾아 가와사키에게 정중히 목례를 건넸습니다. '진심으로 메이저리그 주전선수로 우뚝 서 주기를 바란다'는 덕담과 함께 말입니다.
평소 일본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진 필자도 이날만큼은 일본인 선수가 아닌 인간 가와사키를 만나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혹자들은 말합니다. '가와사키는 이미 일본에서 벌어놓은 돈이 많아서 그럴 수 있다' 과연 그럴까요?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9천원 가진 자가 1만원을 채우고 싶은 것이 바로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연간 수십 억원에 달하는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꿈을 향해 타국에서 고생하는 가와사키의 모습은 분명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물질보다 꿈과 도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실천하는 가와사키의 모습에 진정 큰 박수를 보냅니다.
가와사키와의 만남을 뒤로한 체 라커룸을 걸어 나오면서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가 남긴 명언이 생각났습니다.
'소시민은 항상 도전하는 자를 비웃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