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과 현실 사이..미국 '제한적 군사개입' 가닥
크루즈 미사일 또는 장거리 폭격기 동원한 '단기 공습' 유력
의회선 군사개입 반대 목소리…"전쟁에 지치고 빚더미 산적"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 시리아 사태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놓고 고심을 거듭해온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결국 '제한적 개입'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응징을 해야 한다는 명분론과 어려운 국가재정에 전쟁 피로감까지 겹친 상황에서 또 다른 군사개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접점을 찾아가는 모양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27일(현지시간) "오바마 대통령이 제한된 범위와 기간에 걸쳐 군사개입을 하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며 "화학무기 사용을 응징하면서도 더 깊은 군사개입은 자제하려는 의도"라고 보도했다.
사실 오바마 행정부는 당초 군사개입 자체에 조심스러워 하는 기류가 강했다. 시리아가 '레드라인'을 넘어섰다는 확증은 있었지만 국내외 여건상 군사개입을 하는데 따른 부담감이 컸다. 이라크·아프간 전쟁에 따른 피로감 속에서 또다시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군사개입을 감행하는데 따른 부정적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여기에 러시아의 반대 속에서 유엔의 동의없이 군사개입을 할 경우 그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작용했다. 국제테러단체인 알 카에다와 연계된 '알 누스라 전선'이 반군세력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는 점도 미묘한 걸림돌이었다.
오바마 2기 외교안보팀 내에서도 군사개입을 주장하는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이나 서맨사 파워 주 유엔 대사보다는 개입에 반대해온 존 케리 국무장관이나 척 헤이글 국방장관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강했다.
그러나 지난 21일 화학무기 공격을 당한 다마스쿠스 인근 현장의 참상이 인터넷 동영상으로 유포되고 국제사회의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된 것이 방향을 바꾼 결정적 모멘텀이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 등 서방의 우방들이 이 같은 국제여론을 등에 업고 군사개입 쪽으로 방향을 잡자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사실상 선택지가 없는 형국이 됐다.
군사개입에 반대해온 케리 국무장관이 26일(현지시간)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비난수위를 한껏 끌어올리고, 헤이글 장관이 이날 BBC 방송에 나와 "명령만 내리면 즉각 공격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다만 오바마 행정부의 방향전환이 아사드의 정권교체를 겨냥한 전면적 개입 형태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한 모습이다. 국내 여론이 여전히 부정적인데다 10월 중순까지 국가채무 상한을 재조정해야 상황도 대규모 군사개입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군사개입은 하되, 그 범위와 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제한적 개입'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시리아의 정권교체를 겨냥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이를 두고 "지상군 투입은 안된다"라고 표현한다. 전면적 군사개입으로 이어지는 지상군 투입 대신에 '일회성' 공습 형태로 시리아 정권의 핵심 시설을 공격한다는 구상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공격기간은 아마도 이틀을 넘기지 않고 해상에서 공격하는 크루즈 미사일, 또는 장거리 폭격기들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다"며 "시리아의 화학무기 공장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금주 중 정보당국으로부터 시리아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추가 증거를 보고받는 형식으로 군사개입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가 어렵게 방향을 잡은 제한적 군사개입을 놓고 내부의 논란이 만만치 않다. 의회 내에서 상원과 하원, 민주당과 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반대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전문지인 폴리티코는 "의원들 사이에서는 지금 군대를 보내기엔 너무 늦었고, 너무 위험스러우며, 너무 비용이 많이 들고, 또한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다는 인식이 많다"고 전했다.
하원 군사위 소속 로레타 산체스(민주·캘리포니아) 의원은 "군사개입은 의도하지 않은 후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원 정보위 소속 데빈 눈스(공화·캘리포니아) 의원은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압도적 증거가 있지 않는 한 군사개입에 반대한다"며 "단지 미사일 몇 발만을 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톰 케인(민주·버지니아) 상원의원은 "미국 안보에 대한 임박한 위협이 없는 상황에서 군사개입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제한적 개입'의 효과를 의문시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일회성 공격에 그칠 경우 충분한 '협상력'을 확보하지 못해 시리아 문제를 풀어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26일 독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일화성 보복 공격으로는 미국의 이익을 증대시킬 수 없다"며 "더 큰 전략적 관점에서 군사행동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사드 정권을 축출하는 것을 목표로 전면적 군사개입을 해야 외교와 협상의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선임 연구위원인 마이클 오핸론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제한된 군사개입은 아무런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란 속에서도 오바마 행정부의 제한적 군사개입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는게 워싱턴 외교가의 대체적 시각이다.
rh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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