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역습, 집값의 반란]주택 공급 줄이고 매매 유도에 집중.. 전·월세난 대책이 '빚 내서 올려주라'

박병률 기자 2013. 8. 25.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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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바퀴 도는 정부 대책

전셋값은 2009년부터 두드러진 상승세를 보였지만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주택매매'에 초점을 맞췄다. 다주택자나 주택보유자 등 집을 살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 정책을 집중한 것이다. 집 없는 전세서민은 뒤로 밀려났다.

정부는 매매가 늘어 전세수요가 매매수요로 옮겨가면 전세난은 저절로 해결되는 '종속변수'라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전셋값은 매년 뛰어도 무주택자를 위한 전세대책은 겉돌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정부의 대책도 이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 만만한 전·월세 대출 확대

전·월세 대책으로 정부가 가장 많이 내놓는 것은 대출 확대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신혼부부를 위한 전세지원 대상기준을 완화하고 전세자금대출을 확대했다. 은행권의 전세대출보증도 확대했다. 2011년에도 전세자금대출을 늘리고 대출금리를 낮춰줬다. 전세대출 한도 확대와 만기연장 조치까지 취했다. 급한 불을 끄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그때뿐이었다.

박근혜 정부도 똑같은 처방을 내놓았다. 목돈 안드는 전세제도를 도입했고, 월세자금대출 확대(현행 3000만원→5000만원)를 검토 중이다. 목돈 안드는 전세제도는 집주인에게 받을 보증금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집주인이 자신의 집을 담보로 저금리 대출을 해주는 형식이다.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은 "세입자가 갚아야 하는 이자가 늘어나는 데다 만약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보증금 한 푼 없이 거리에 나앉게 된다"며 "목돈 안드는 전세제도는 생각보다 위험한 상품"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세와 월세에 소득공제 혹은 세액공제를 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 역시 대출확대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세액공제를 위해서는 집주인으로부터 세금 영수증 등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 같은 '집주인 우위' 시장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 전세시장 자극한 공급 축소

정부는 4·1 부동산 대책 후속조치에서 수도권 공급 주택을 4년간 18만가구 정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주택 공급을 줄여 매매를 늘리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신규주택 분양시장은 전세시장에 물량을 대는 주요 공급처라는 점을 간과했다. 공급을 줄이겠다는 발표가 나오자 전세시장이 먼저 반응했다.

공급 축소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계속됐다. 연간 15만가구, 10년간 150만가구를 짓겠다던 보금자리주택은 임기 중 1만가구만 입주완료했을 뿐이다. 새 아파트 품귀는 전세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부동산114 자료를 보면 8월 현재 새 아파트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64.8%로 2009년(39.8%)에 비해 껑충 뛰었다.

임대주택 공급 축소도 심각하다. 2007년 14만7000가구 공급된 임대주택은 2011년 8만3000가구에 그쳤다. 박근혜 정부는 임대주택인 행복주택 20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방자치단체의 반발로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22일 당초 계획보다 한 달 늦게 국토교통부는 오류, 가좌지구에 대한 지구지정을 마쳤다. 목동, 잠실지구 등 5곳은 지정을 또 미뤘다.

■ 분양가 상한제 폐지가 전세대책?

당정은 이번 기회에 '분양가 상한제'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폐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4·1 대책에 포함됐던 이 대책들을 야당이 반대하는 바람에 부동산시장의 신뢰를 잃었고 그 결과 거래심리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폐지해 투기심리에 기대겠다는 것도 문제지만 건설업체가 고분양가를 받는 것을 허용하면 건설시장이 살아난다는 논리에 대해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 많다. 더구나 공급을 축소하겠다는 정부가 공급 확대정책인 분양가 상한제 폐지에 유독 매달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모든 정책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는 만큼 이런저런 정책을 마련해둬야 하는 것 아니냐"며 "호화주택에 살고 싶어하는 수요층도 있으니 이쪽이라도 물꼬를 터주면 거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야당과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전월세 상한제'와 '1회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세물량을 줄어들게 해 '무주택 세입자'가 더 어려워진다는 이유를 댄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한국 임대시장은 과도하게 집주인의 재산권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며 "임대료를 통제해 세입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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