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대한민국은 왜 야구에 열광하는가

2013. 8. 1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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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화국
서울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 5, 6번 출구는 꿈의 궁전으로 가는 통로다. 이곳을 빠져나오면 ‘베이스볼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가 기다린다. 잠실야구장을 촬영한 사진에 태극기를 합성했다. 사진=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69.

이 묘한 숫자를 보고 사직구장 관중 수가 먼저 떠오르는 이는 심각한 ‘야구 환자’가 틀림없다. 부산 야구팬들은 자기 고향을 구도(球都·야구 도시)라고 부르지만 한일 월드컵이 끝난 2002년 10월 19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경기를 찾은 관중은 69명밖에 되지 않았다. 기자는 자신이 이 69명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10명도 넘게 알고 있다. “구단에서 공짜로 준 아이스크림을 두 개나 먹었다”, “자전거를 타고 관중석을 한 바퀴 도는 팬을 봤다”는 게 이들의 공통적인 회상이다.

한 명은 이 69명이 모여 계모임을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말 계모임이 있다면 다른 이들이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을 리가 없을 터. 그에게 모임에 한 번만 데려가 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지만 늘 “이번에는 모임이 없다”는 답변이었다. 그러다 어느 취한 밤 그가 말했다. “자기가 그 ‘69용사’라고 말하는 사람이 수백 명은 더 될걸.”

그는 자기가 진짜 ‘69용사’인지 아닌지 끝끝내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우리 모두 69명의 야구팬 중 한 명 아니던가. 야구란 원래 그런 것이다. 단지 가벼운 구경꾼에 불과했다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69용사’라는 훈장을 내려도 누구 하나 피해 보지 않는다.

사실 이 69명은 프로야구 역대 최소 관중 기록도 아니다. 1999년 10월 7일 전주에서 열린 현대-쌍방울 경기 관중(54명)이 최소다. 이 경기에 있었다고 자랑하는 이는 아직 만나 보지 못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광팬’들이 우글대는 야구공화국 대한민국, 오늘도 밤하늘엔 ‘야빠’(야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팬)들의 야구 찬가가 울려 퍼진다.

▼ 뚱보도 안경잡이도, 야구라면 주인공이 될 수 있다 ▼ 야구는 김유동의 만루홈런이다.

야구장을 찾은 팬들은 ‘승리의 요정’ 치어리더에게 팀이 이기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다. 팬들 소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치어리더들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5월 30일 잠실 한화 경기에서 LG 치어리더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이날 LG팬과 치어리더들은 5-3으로 승리해 소원을 이뤘다. 동아일보DB
“‘멤버 전원의 힘을 모아 보다 강한 힘을 발휘해라.’ 물론 좋은 말이야. 하지만 나의 경험을 통해 말한다면 그건 완전히 허상이다. 2군으로 내려가 얻은 교훈은 바로 ‘내가 팀을 이기게 할 거다’라는 강인한 마음을 갖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안 돼. 그게 진짜 팀워크 아닐까?”(가이타니 시노부·甲斐谷忍 ‘원 아웃’ 중에서)

야구는 점(공)이 선(방망이)을 면(스크라이크 존)에서 만나 공간(야구장)에 떨어지는 경기다. 이 기하학적 변화가 성공할 확률은 평균 30%가 채 안 된다. 이렇게 낮은 성공률로 칭찬받을 수 있는 게 야구다.

그렇다면 타율 0.300와 0.250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프로야구가 6개월 동안 열린다고 할 때 10경기당 한 번씩만 ‘바가지 안타’(행운의 안타)가 터져주면 타율 0.250 타자가 0.300 타자가 된다.

그 때문에 성공률 25%에 대해서도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게 야구다. 타격 성공률이 25%에 불과해도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구에서는 ‘누구나’ ‘그 순간에는’ ‘한 방’을 기대해도 좋다. OB(현 두산) 출신 김유동을 통산 타율 0.235인 타자로 기억하는 팬은 없다. 김유동은 만루홈런이다. 1982년 한국시리즈 6차전 때 국가대표 에이스 출신 삼성 이선희를 상대로 때린 그 쐐기 홈런 말이다.

또 땅딸보부터 뚱뚱보까지 체형에 큰 차이 없이 모두 제 몫을 다하는 종목은 야구뿐이다. 야구는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던 ‘이해찬 키즈’의 꿈이 실현된 공간이다. 숱한 이들이 패자부활전 무대를 거쳐 다시 승자가 될 기회도 준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 안 풀리더라도 잘할 수 있는 다른 한 가지를 찾으면 된다. 홈런왕 삼성 이승엽조차 시작은 실패한 투수였다.

야구에서는 4번 타자라고 타석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한국 프로야구에서 넥센의 현대 시절을 포함하면 아직 우승을 못해 본 팀은 올해 1군 무대에 뛰어든 NC뿐이다. 가장 불쌍한 꼴찌 팀도 10번 중 2번은 이긴다. 야구는 ‘역대 최다 대타 홈런’처럼 벤치 선수를 위한 기록도 잊지 않는다.

야구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스포츠다. 야구 종주국 미국이 해외 대사관 홈페이지에서 자랑스레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야구는 민주적이다”.

야구는 ‘목포의 눈물’이다

““광주일고는 져야 해! 그게 포에틱 자스티스야.”/“POETIC JUSTICE요?”/“그래.”/이 선배는 나의 몰지각과 무식이 재밌다는 듯이 씩 웃는다./…/나는 3루에서 홈으로 생환(生還)하지 못한, 배번 18번 선수를 생각하고 있었다.”(황지우 ‘5월 그 하루 무덥던 날’ 중에서)

“고향이 어디냐”는 사교적 질문이 때에 따라 폭력으로 비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 호남은 한이 서린 고장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 프로야구에서는 호남 팀 해태의 포효가 ‘이것이 정의’라는 듯 쩌렁쩌렁 울렸다.

스포츠 평론가 최동호 씨는 “해태의 우승은 호남의 씻김굿이었다”며 “‘목포의 눈물’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응원가”라고 말했다. ‘목포의 눈물’이 야구장에 처음 등장한 건 1983년 한국시리즈였다. 해태가 첫 우승을 차지한 시리즈다. 1980년대 해태 경기를 찾은 팬들이 수훈 선수 이름 대신 ‘김대중’을 연호하는 것도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1987년 6월 30일(213명·최소 19위), 7월 1일(195명·15위), 7월 2일(132명·6위) 광주 경기는 역대 최소 관중 20경기 안에 모두 들어간다.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한 ‘6·29선언’ 다음 날부터 1987년 전기리그 일정이 끝날 때까지다. 1987년 전기 우승팀은 권력 중심지 TK(대구 경북) 연고팀 삼성이었다.

프로야구가 제5공화국 3S(스포츠, 섹스, 스크린) 정책의 산물이라는 건 사실에 가깝다. 하지만 당시 ‘높으신 분들’은 프로야구 출범을 원하지 않았었다. 이용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초대 사무총장은 “당시 청와대 비서관들은 ‘프로야구가 가뜩이나 심각한 지역감정을 더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반대했다”고 전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각 방송사에 “고교야구 중계를 제한하라”는 방침을 하달하기도 했다. 역시 지역감정을 조장한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KBO는 프로야구 원년(1982년)부터 1986년까지 연고 지역 고교 출신 선수들을 각 구단에서 무제한으로 독점 계약할 수 있도록 했다. 아주 강력한 지역 연고제를 도입한 것이다. 그 덕에 프로야구는 고교야구 인기를 흡수해 성공적으로 첫 걸음마를 뗄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지역 연고 선수들을 뽑는 특혜는 프로야구를 먼저 시작한 미국과 일본에도 없던 제도였다. 어디서 가져온 걸까.

이 전 총장은 대한야구협회(KBA) 부회장이던 1978년 쿠바야구협회장을 만나 “우리나라(쿠바)에서는 모든 선수가 고향 팀에서만 뛴다. 그래서 야구가 국민 스포츠가 됐다”는 말을 들었다. 이 전 총장은 프로야구 출범을 앞둔 1981년 이 논리로 정권 실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반공’의 서슬이 시퍼렇던 그때 공산주의자 카스트로의 야구 제도를 군사정권이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삼성은 1987년 후기리그서도 우승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플레이오프를 거치고 올라온 해태에 무승 4패로 졌다. 그 뒤로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해태를 넘어서지 못했다.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건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2002년이었다. 해태도, 목포의 눈물도 야구장에서 사라진 다음이었다.

야구는 사춘기 짝사랑이다.

“‘당신 삶에서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는 어느 정도 중요한가요?’ ‘순위를 매기자면 레드삭스, 섹스, 그리고 숨쉬기 순서입니다.’”(미국 영화 ‘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 중에서)

LG 팬 이지연 씨(34·여)는 지난달 ‘응답하라 1994’ 유니폼을 주문하려다 분통이 터졌다. ‘(김)재현이 오빠’ 유니폼을 주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씨는 “팀을 옮긴 선수 이름을 유니폼에 새길 수 없게 한 건 사실상 김재현을 타깃으로 삼은 것 아니냐”라고 의심했다. 팀을 옮기기는 했지만 김재현은 여전히 LG 팬들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LG 팬들의 시계는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던 1994년에 멈춰 있는 까닭이다. 이해 프로야구 최고 스타는 단연 김재현 서용빈 유지현 등 LG 3인방이었다.

프로야구는 이 3인방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특히 김재현은 야구를 ‘아저씨들이 하는 먼지 나는 싸움’에서 ‘오빠가 하는 세련된 게임’으로 바꾼 주인공이다. 당시 한 하이틴 잡지는 “무스를 바르고 ‘넌 할 수 있어’를 부르며 사업가를 꿈꾼다”고 김재현을 소개하면서 ‘성경험은?’이라고 물었다. ‘해태의 전성시대’에는 등장하지 않던 질문이었다. 세대도, 감수성도 달라진 것이다. 이들이 우승한 이듬해였던 1995년 프로야구는 그 뒤 13년 동안 다시없을 500만 관중 시대를 맞았다.

당시 김재현을 보러 야구장을 찾던 소녀 팬들은 이제 이모 팬이 됐다. 경영학에서는 청소년층을 타깃으로 삼는 마케팅 기법을 ‘펩시 세대’라는 용어로 정의한다. 탄산음료 시장 만년 2위 펩시는 1990년대 초반 “펩시는 새로운 세대”라는 캐치프레이즈로 10대를 공략했고, 그들이 주 고객층이 된 2005년에는 108년 만에 처음으로 코카콜라를 꺾기도 했다.

2013년 대한민국 야구장을 찾는 이모, 삼촌 팬들은 프로야구의 펩시 세대다. 프로야구 초기 ‘어린이 회원’이던 세대는 이제 자기 아이들을 어린이 회원에 가입시킬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원년 OB 어린이 회원이었던 이득재 씨(38)는 2004년 아들 동준이(9)의 주민번호가 나오자마자 두산 어린이 회원에 가입시켰다. 동준이가 세상에 나온 지 만 18일 5시간 반 뒤였다.

야구는 핏줄을 타고 흐른다. 미국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는 조선 순종 시절(1908년)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지만 지난해만 288만 명이 컵스 안방 구장 리글리필드를 찾았다. 2004년 한국 프로야구 전체 관중보다 많은 수다.

▼ 룰 만큼이나 '불문율'이 많은… 인간미의 스포츠 ▼ 야구는 한일전이다

“대표팀은 육체를 가진 국가다. 대표팀이 취해야 할 스타일을 논의할 때 사람들은 종종 국가가 지향해야 할 자세를 논의하고 있다.”(사이먼 쿠퍼 ‘축구 전쟁의 역사’ 중에서)

정권은 축구를 통해 대한민국의 성공상을 과시했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팍스컵’(박정희 대통령배 쟁탈 아시아축구대회)은 사실 대한민국의 승리를 위한 무대였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한 경기에서 대한민국(516승)보다 많이 이긴 나라는 브라질(564승)과 잉글랜드(527승)뿐이다.

프로야구도 국제 대회 성적을 먹고 컸다.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은 갓 태어난 프로야구 인기로 이어졌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은 2004년 233만 명까지 떨어졌던 관중 수를 525만 명으로 2.25배로 늘렸다.

그때마다 일본이 있었다. 1982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확정한 경기는 하필 한일전이었고(이 대회는 풀리그 방식이었기 때문에 결승전이 따로 없었다), 베이징 올림픽 때도 일본을 두 번이나 이겼다. 아니, 처음부터 일제 식민지라는 통한의 과거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만큼 야구를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올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일본과 맞붙을 기회가 없었던 건 ‘천운’이었는지 모른다.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1회전 탈락했지만 이를 두고 한국 야구의 종말을 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올해도 프로야구 관중 600만 돌파는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 어쩌면 WBC 조기 탈락은 이번 순서는 위험하다며 야구의 신(神)이 보낸 고의사구 사인은 아니었을까. 류현진 추신수 등 핵심들이 대표팀에서 빠진 상태에서 일본과 맞붙는 건 현명한 선택이 못 된다면서 ….

야구는 지루한 영혼에게만 지루하다

“‘땅볼과 숏스톱(유격수)은 똑같습니까?’ 이 질문자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애매한 질문을 가지고 물었다. … 때로는 귀에다 대고 속삭이기도 한다. ‘자, 이제 홈런 사인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꿈에서 만나요’ 중에서)

야구에는 ‘확인사살’을 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다. 점수 차가 크게 날 때는 도루를 해서는 안 되고, 홈런을 치고 나서 과도하게 세리머니를 했다가는 빈볼을 감수해야 한다.

야구 규칙에는 ‘홈런성 타구가 날아가는 새에 맞아 그라운드에 떨어지면 홈런인가 아닌가’처럼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도 정답(홈런)이 나와 있다. 하지만 유독 이런 예의에 대해서는 불문율이다. 그저 선수 스스로의 양심이 기준이다.

본질을 따져 보면 야구에서 ‘확인사살’을 금지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야구는 공이 아니라 사람이 들어와야 점수가 나는 가장 인간 중심의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틀로 보면 인간 세상은 분자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수준이야 어찌됐든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책 몇 권을 써도 모자랄 자기만의 ‘야구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단언컨대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가 야구를 봤다면 지구에는 철학이라는 낱말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야구가 삼라만상이고 삼라만상이 야구다. 야구는 지루한 영혼에게만 지루하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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