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때 존재한 태극기, 진실은] 거북선에 태극기가?.. 통영 '수조도' 미스터리

입력 2013. 8. 3. 04:04 수정 2013. 8. 3.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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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저건 태극기 아냐?" "정말이네! 거북선에 웬 태극기?" 경남 통영시 명정동에 위치한 충렬사(사적 제236호)에는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삼도수군통제영 관하 각 진영의 전선(戰船)을 그린 '수조도(水操圖)'가 있다. 거북선 43척을 포함해 548척의 전선과 장졸 3만5000여명이 통제사가 타고 있는 좌선(座船)을 중심으로 첨자진(尖字陣)을 펼치고 있는 장엄한 광경을 12폭의 병풍에 그린 그림이다.

이 가운데 좌선의 '원수(元帥)' 깃발 뒤쪽에 태극기가 꽂혀 있는 것을 통영시가 최근 발견했다. 이 그림은 통제영 본영의 파총(把摠·종4품 관직)이었던 정효현(1848∼1928)이 고종(1852∼1919)의 명을 받들어 임진왜란 당시의 전선배치도 등을 근거로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정확한 제작연도 기록은 없지만 도화서(궁중화가) 출신 정효현이 사실적으로 그린 화원풍 그림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임진왜란 당시 태극기가 이미 있었다는 말인가? 그것도 거북선에 태극기를 꽂았다는 말인가? 태극기는 1882년 수신사 박영효(1861∼1939)가 일본으로 건너가는 배에서 처음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정효현이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박영효의 태극기를 보고 거북선에 임의대로 그려 넣었다면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한 꼴이 될 것이다.

최근 통영 충렬사를 찾아갔다. 충렬사는 임진왜란 중에 수군통제사로 큰 업적을 남긴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1606년 선조의 왕명으로 세워진 사당으로, 명나라 신종황제가 내린 8가지의 선물인 '명조팔사품'(보물 제440호) 등 각종 유물이 전시돼 있다. 함께 전시 중인 '수조도'의 거북선 태극기는 그림 상태가 좋지 않아 태극문양과 4괘의 윤곽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가로 6m78㎝, 세로 1m84㎝ 크기의 12폭 병풍에 548척의 전선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고, 각 전선마다 크고 작은 깃발이 수십 기씩 꽂혀 있어 눈여겨보지 않으면 태극기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통영시 관계자는 "120년 넘게 수조도가 보존돼 왔지만 태극기가 그려져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얼마 전 우연히 태극기를 발견하고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배나 사람들의 선, 색깔, 구도가 크고 유연하다. 의관을 정제한 사람들의 표정이 엄숙하게 표현됐다. 점 세 개로 얼굴을 그리기도 했다. 아악이나 궁중무용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여인들도 있다. 군사 외에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을 등장시킨 것은 임금 행차 시 그린 행렬도처럼 수군의 훈련 상황을 장엄한 축제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충렬사 수조도의 거북선 태극기에 대해 학계에서는 두 가지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태극문양은 삼국시대부터 나타난 것으로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에도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평소 이순신을 추앙했던 고종이 정효현에게 수조도를 그리게 하면서 1883년 조선 국기로 삼은 태극기를 상징적으로 꽂도록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견해는 그럴 듯하지만 고종 실록에는 이에 대한 기록이 없으니 추론에 불과하다. 반면 첫 번째 견해는 각종 자료를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이동주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태극문양은 삼국시대 각종 유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며 "충렬사 수조도의 태극기 그림은 2태극 4괘의 문양으로 보아 현행 태극기와 가장 근접한 최초의 그림"이라고 가치를 부여했다.

국내 태극문양이 처음 그려진 유물은 신라 미추왕(재위 262∼284년)의 경주 고분에서 출토된 곡옥(曲玉·장식용 구슬)이다. 경주 계림로 14호분에서 발굴된 신라시대 황금보검에서도 태극문양이 나왔으며, 고려시대 범종에도 현재 태극기와 비슷한 문양이 새겨졌다. 임진왜란에 참가한 청나라 화공이 1598년에 그린 '정왜기공도(征倭紀功圖)'에도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다.

또 청나라 사신 아극돈(阿克敦)이 1724년 영조 때 그린 '봉사도(奉使圖)' 화첩 가운데 조선 여행 중 묵었던 숙소 부근에 걸린 깃발이 태극기라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가운데 청색과 홍색의 태극문양이 뚜렷하게 그려져 있고, 상단과 하단에 2괘가 표시돼 있다. 이런 사실로 미뤄 태극문양 깃발이 임진왜란 당시 자주 사용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수조도 태극기의 경우 태극기가 국기로 정해진 후 상징적으로 그려 넣었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이상훈 해군사관학교박물관 서기관은 "우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해전도(海戰圖·1860년경 제작)와 국립진주박물관 소장 수조도(구한말 제작)에도 태극문양의 깃발이 등장한다"며 "이는 최고 지휘관이 타고 있는 본부 군선(軍船)을 상징적으로 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제국 시절 이순신 숭배가 한창이던 무렵, 이순신이 거북선을 이끌고 출전하는 모습에 당시 국기로 제정된 태극기를 함께 그려 넣는 것이 유행이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태극기를 장중하고 세밀하게 그리지 않고 '원수' 깃발 뒤쪽에 흐릿하게 그린 점에서는 의문이 든다. 초라한 그림이 이순신 숭배와 더불어 태극기 창안이 화제였던 당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태극문양은 삼국시대부터 나타나고, 4괘는 고려시대에 등장했다. 태극기는 임진왜란 때의 '정왜기공도'와 영조 때의 '봉사도'를 거쳐 통영 충렬사의 '수조도'에서 채색이 정립된 것으로 학계는 의미를 두고 있다. 이동주 교수는 "수조도의 정확한 제작연도는 연구대상이지만 국기로 공식화된 시기 우리나라 태극기의 원형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통제영(統制營)

충청·전라·경상도의 삼도수군을 통할하는 통제사가 있는 본진. 조선 선조 26년(1593)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이 한산도에 처음 설치해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병기를 씻는 기관인 세병관(국보 제305호) 등이 들어서 302년간 유지되다 고종 32년(1895)에 폐영됐다. 통영의 지명 유례가 됐다.

통영=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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