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전 감독, "내가 e스포츠 떠나지 않는 이유는.."
CJ 엔투스와의 계약 종료 후 처음으로 만난 김동우 전 감독 인터뷰
CJ 엔투스를 떠나게 된 김동우 전 감독, e스포츠를 떠나는 것은 아니다.얼마 전 CJ 엔투스 프로게임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스타크래프트2팀 감독 교체 사실을 알렸다. EG-TL에서 활동 중이던 박용운 감독이 스타2 선수들의 새로운 수장이 됐고, 조규남 감독 밑에서 코치로 시작해 CJ 창단 멤버로 오랫동안 선수들을 지도해 온 김동우 감독은 더 이상 CJ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이 함께 전해졌다. 스타2 씬에서는 제법 큰 뉴스거리였지만 생각만큼 떠들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게 감독이든 선수든 어느 날 갑자기 이 판을 떠난다는 소식이 더 이상 충격적인 소식이 아닌 것일 수도 있고, 언제부터인가 떠나는 이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해지는 경우가 드물게 되면서 생긴 현상일 수도 있다. '누가 됐든 갑자기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잖아' 뭐 그런 분위기?
나름 e스포츠 업계에서 누구보다 오랜 시간, 그리고 멀리 달려온 김동우라는 사람의 시니컬한 말투를 더 이상 듣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한 번쯤 만나봐야겠다 싶었다. 특별히 얘기할 건 없지만 인터뷰를 피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는 김동우 CJ 엔투스 전 감독을 오랜만에 게임단 연습실이 아닌 도심 커피숍에서 만났다.
CJ를 나온 이후 시간이 흘렀지만 가장 먼저 팀을 나오게 된 이유를 물었다. 혹시 갑작스러운 통보였을까?
"갑을관계라는 게 그렇잖아요. 갑은 계약을 하고 을은 그에 대한 성과를 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보면 (팀을 나온 것이)부당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또 감독이 된 순간부터 언제나 머리 속에는 이런 날이 올 거라는 상상을 하기도 했고요. 감독이란 게 그럴 수 밖에 없는 위치잖아요. 사실은 제가 감독을 맡은 후에 두 번째 시즌이었나? 그 때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었는데 그 다음 시즌까지 우승을 하지 못하면 그만두겠다는 얘기를 한 적도 있어요. 다행히 다음 시즌에 우승을 하긴 했지만 그 뿐이었죠. 단지 이번 시즌에 성적이 안 좋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책임을 물으면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냉정하지만 일견 타당한 말이었다. 특히나 태평성대와는 거리가 먼 현재의 스타2씬에서는 앞으로 제2, 제3의 김동우 감독이 나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다. 그래도 창단멤버인데, 오랜 세월 동안 마치 집처럼 몸담았던 곳을 하루 아침에 나온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닐 터. 특히 식구로 지낸 선수들과 헤어지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 CJ에 남이 있는 선수들은 전부 다 제 손을 탄 선수들인데 헤어지는 게 왜 아쉽지 않겠어요. 선수들 중가장 맏형이 김정우인데 17살 때 제 손으로 직접 뽑은 선수에요. 팀의 주축인 김정우, 신동원 이런 선수들이 서래마을 시절 2군 숙소에서 함께 고생했던 친구들인데 오죽하겠어요."
그가 생각하는 감독과 선수의 관계는 선생과 제자에 가깝다. 그래서 김동우 전 감독은 팀을 나오면서 선수들에게 박용운 감독을 새로운 선생님으로 생각하라는 당부를 남겼다.
"학생은 많이 배워야 해요. 그런 면에서 한 명의 선생님한테 배우는 것보다 다른 걸 가르쳐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잖아요. 선수들이 성장하는데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고, 그래서 박용운 감독님한테 잘 배워서 더 큰 선수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죠."
e스포츠의 태동기에 수많은 스타크래프트 키드 중 한 명이었던 김동우 전 감독은 G.O 시절 조규남 감독과의 인연 때문에 업계에 발을 들였다. 선수를 꿈꿨지만 여의치 않았고 군대 전역 후 자연스럽게 CJ 코치로 합류하게 된 것. 선수로서 1등은 해보지 못했지만 1등 코치가 되고 싶었던 것이 당시 그가 가진 목표였다.
"남들이 어떻게 바라볼 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e스포츠 업계에 있으면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생각해요. 훌륭한 선수들을 키워서 개인리그 우승도 여러 번 해봤고, 승자연전방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우승을 했던 순간도 함께 했죠. 전 아직도 그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어요. 또 제 손으로 뽑은 선수가 당대 최강인 이영호를 상대로 격납고에서 역스윕으로 우승했던 것, 제가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신)동원이가 바로 MLS 우승이라는 선물을 안겨 준 기억도 생생하고요. 게다가 그런 순간들을 저와 함께 했던 그 선수들이 힘을 합쳐서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단체전 우승 트로피를 함께 들어 올렸잖아요. 한 번씩은 다 해본 셈이죠.
CJ 엔투스에서 보낸 시간들에 후회나 아쉬움은 없다고 했다.그래서일까. 김동우 전 감독은 지금에 와서 아쉬움이 남거나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가장 고마운 것은 역시 선수들이라고 몇 번을 강조해서 말했다.
"선수들은 정말 열심히 했죠. 이제 와서 얘기지만 우리 팀의 모토가 '결혼할 여자 아니면 만나지 말자'였고(웃음), 명절 아니면 집에도 잘 안 가고 오로지 연습만 할 정도로 빡센 팀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선수들한테만 그렇게 하라고 하면 안 먹히거든요. 저 또한 열정을 다 쏟았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여한이 없어요. 정말 혹독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따라준 선수들에게 할 말은 고맙다는 말 뿐이죠."
그렇게 열정을 쏟아 부었는데, CJ를 나온 지금부터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어쩌면 이번 인터뷰를 통해 정말 묻고 싶었던 얘기를 꺼낼 때가 됐다. 당신은 e스포츠를 떠날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이냐.
"네. 계속 하고 싶어요. 제 인생의 절반을 e스포츠와 함께 보냈어요. 저를 좋아하시는 분들, 싫어하시는 분들 모두 여기에 있고,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도 이거에요. 아직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긴 어렵지만 기존 게임단이 가지고 있는 형태와는 다른 구조의 뭔가를 만들거나, 혹은 운영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정도로 귀띔했지만 요즘 추세라면 LOL팀을 만들지 않을까 싶었다. 'LOL팀을 만들 계획이 있냐'는 돌직구 질문을 딱히 피하지도 않는 김동우 전 감독.
"저는 e스포츠가 위기라는 말은 동의하지 않아요. 지금 LOL이 이렇게 잘 되고 있는데 왜 e스포츠가 위기죠? 스타2, 그것도 국내 스타2의 위기를 왜 e스포츠의 위기인가요. 물론 여태까지 모든 기업들이 스타2 위주로 게임단을 운영해 왔기 때문에 그런 거겠죠. 저는 시행착오를 겪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LOL이 잘 되고 있지만 언젠가는 또 다른 게임이 나와서 성황을 이룰 수 있고, 계속해서 바통은 이어질 거에요. 사람들은 게임을 계속 할 수 밖에 없어요. 아주 예전에 바둑, 장기로 시작했던 놀이문화가 지금도 이어지는데 게임은 그 이상으로 발전하겠죠. 결국 종목은 바뀔 수 있지만 e스포츠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발전은 계속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CJ도 그렇고, KeSPA 안에 있는 팀들도 이미 LOL팀을 꾸린 곳이 적지 않다. 지난 1년 동안 LOL 선수들이 우후죽순처럼 탄생했고, 현재도 그렇다.지금 LOL팀을 만드는 것이 늦은 것은 아닐까?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스타도 택뱅리쌍은 먼저 시작해서 잘 했나요? 언제나 그 시대를 능가하는 영웅은 나오게 되어 있어요. 후발주자라서 못할 건 전혀 없어요. 체계적인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스스로 하고 싶어서 게임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거죠. 스타1과 스타2의 차이가 거기에 있었어요. 냉정히 말해서 스타2를 그렇게 시작한 선수들은 별로 없죠. 게임이 재미있어서 자연스럽게 파고드는 건 좋은데, 게임을 잘하기 위해서 공부가 선행되어야 하는 건 별로에요. 하지만 LOL은 다르죠. 다들 엄청 하고 싶어해요. 그게 전제된다면 남은 건 그런 선수들에게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 주는 일이겠죠.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거기에 제 장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살짝 힌트를 주자면 모든 선수들이 소모품이 되는 건 싫어합니다. 전 선수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자신이 있어요."
선수 육성에는 자신이 있다는 투의 얘기를 하면서 그의 표정도 '갑을관계' 운운했던 인터뷰 초반과는 다르게 사뭇 밝아진 듯 했다. 그는 지금 두렵지 않고 설렌다고 했다.
"CJ 안에서 안전한 느낌은 있었지만 결코 여유롭지는 않았어요. 지금도 여유 부릴 생각 없고요. 아무래도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인가 봐요. 벌써부터 같이 뭔가를 해보자고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이제 제가 선택할 일만 남았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좋은 느낌이에요. e스포츠가 줬던 희열의 순간들을 분명히 마주하게 될 테니까요."
강영훈 기자 kangzuck@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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