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물 유포자 족집게 단속..아동 성범죄 막는 '디지털 지문'
[부산]
#1. 2008년 8살 여자 아이를 성폭행해 평생 불구로 만든 조두순 사건.#2. 2012년 7월 경남 통영에서 초등학생을 납치·성폭행해 살인한 김점덕 사건.#3. 2012년 8월 전남 나주의 주택에서 잠자던 초등학생을 이불째 납치해 성폭행한 고종석 사건.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아동 대상 성폭력 사건들의 공통점은 음란물이다. 범인들은 수사 과정에서 하나같이 범행 전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자주 봤다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청소년 음란물이 범인들을 자극해 범행의 주요 동인으로 작용했다는 얘기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미국에서는 아동 음란물을 상습적으로 본 지역 방송사 사장에게 징역 1,000년형을 내리는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아동·청소년 음란물이 범죄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높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음란물 단속의 필요성을 배가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아동·청소년 음란물 단속 업무를 맡고 있는부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사이버팀장 이재홍 경감은 "아동·청소년 음란물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4대 사회악 중 하나인 성폭력 예방을 위해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단속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실효성이 있는 정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전국 최초로 아동 음란물에 대한 디지털 수사 기법을 도입, 불구속 수사를 진행했다.
다만, 사이버 공간에서 은밀하게 유통되는 음란물의 특성 상 단속에 실효성을 거두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모든 가정의 컴퓨터를 전수 조사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사생활 침해 문제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산지방경찰청이 이 어려운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첨단 디지털 지문 수사 기법이 이를 가능케 했다.
부산지방경찰청이 아동음란물 수사 과정에서 활용한 디지털 지문 수사 기법은 주로 해외에서 제작돼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아동음란물 단속을 위해 미국 ICAC 태스크포스(Internet Crime Against Children, 아동대상 온라인범죄대응팀)에서 운영 중인 COPS(Child Online Protective Services, 아동온라인보호서비스시스템) 시스템이라 불린다.
이 시스템은 인터폴이 회원국에게 보급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지난 2012년 11월 경찰청이 도입했고, 올 초 전국의 사이버수사대 대원들에게 공식적으로 교육 연수를 진행한 뒤 부산시가 전국 최초로 '아동음란물 디지털 지문 수사기법'을 활용해 유포자들을 불구속 수사하는 데 성공했다.
정부가 제시한 4대사회악 중 하나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민·관이 협력해서 다양한 시책을 구상하고 있다. (사진=부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이재홍 경감은 "아동음란물의 파일명을 바꿔 정상적인 파일로 위장하더라도 인터폴의 데이터베이스에 미리 축적된 '아동음란물 디지털 지문 정보(해쉬)'를 이용해 국내·외 인터넷 P2P를 통해 유포되는 아동 음란물을 추적·검거하는 기법"이라며 "COPS 시스템은 해쉬값으로 P2P를 모니터링해 전 세계 유포자를 국가별로 찾아낸다."고 설명했다.
모든 사람에게 고요한 지문이 있어 움직인 동선에서 사람의 지문을 발견할 수 있듯이, 컴퓨터 파일도 각각의 고유한 지문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값을 해쉬값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아동음란물 A'라는 디지털 지문을 가진 아동음란물 파일을 내려받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B'라는 이름으로 바꿔 저장하더라도, 인터폴 시스템 상에서는 '아동음란물 A'라는 디지털 지문이 감식돼 아동 음란물 파일로 인식, 용의자를 색출할 수 있다.
이 디지털 지문은 파일이 최초 생성될 때 만들어지는 고유의 값이기 때문에 아무리 컴퓨터 조작에 능숙한 사람이라도 이 지문값을 변환시킬 수는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금까지는 'A'라는 고유값을 모르고 수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담당 수사관들이 직접 영상의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이 파일이 아동음란물 A파일인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B 파일인지 알 수 없었던 것.
부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의 디지털증거분석실. 이곳에서 디지털 지문을 활용해 아동음란물을 수사한다.
이재홍 경감은 "디지털 지문 수사 기법을 활용하면 유포자의 신원 파악이 어려운 해외 P2P에서도 국내 유포자의 신원 파악이 가능하고, 파일명을 변경해 숨겨놓은 경우라도 쉽게 적발 가능하다."며 "과거에는 단속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 문제가 제기되고, P2P의 모든 파일을 일일이 검사해야 했던 불편함이 있어지만, 지금은 이처럼 족집게식 단속이 가능해져 수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수사기법을 도입하면 아동음란물 A라는 파일이 어느 경로를 통해 어느 사용자의 컴퓨터로 유입됐는지 모든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가정집을 방문해 직접 확인할 필요 없이 해당 파일을 내려받은 사람의 정보를 확보해 아동 음란물 소지자를 손쉽게 색출할 수 있다. 범죄 현장에서 남은 지문을 가지고 용의자를 색출하듯, 인터넷 상에서 내려받은 흔적인 남은 디지털 지문을 활용해 용의자를 적발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일본의 경우 한국과 달리 성인 음란물 소지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미국과 일본의 시스템을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에서도 아동 음란물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폴의 디지털 지문 수사 시스템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용성을 인정받고 있다.
디지털 지문 수사 기법을 전국 최초로 도입한 부산시가 최근 음란물 단속 결과 전국 1위의 성과를 거뒀다. (사진=부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실제로, 부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디지털 지문 수사 기법을 활용해 특별 단속을 벌인 결과, 3~18세 사이의 유아·아동을 착취(학대)해 해외에서 제작된 노골적인 아동음란물(PTHC-Pre-Teen Hard Core, 아동 하드코어의 약자) 1,500여 편을 해외 P2P서비스를 통해 내려받아 소지하거나 다시 배포한 피의자 총 42명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아동음란물 배포·소지)' 혐의로 전원 불구속 기소했다.
아울러 지난 4월 1일~6월 24일 약 두 달간 디지털 지문을 통해 아동 음란물을 적발한 건수는 전국적으로 총 4,428건으로, 그 중 부산이 1,555건으로 1위, 경기도가 952건으로 2위, 서울은 423건으로 부산이 총 적발 건수의 약 4분의 1을 적발했다.
부산에서 적발한 피의자 박○○(44세·자영업)는 2012년 12월 11일부터 자신의 가게 PC에 설치된 P2P프로그램으로 해외에서 제작된 3세∼18세의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총 719건을 내려받아 이를 소지·배포(불구속)했고, 그 외 41명의 피의자들은 재수생, 대학원생, 외국인 강사, 회사원, 자영업 등에 종사하는 자들로 1인당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10~167건을 소지·배포한 것으로 밝혀졌다. 피의자 연령도 10대 1명, 20대 5명, 30대 16명, 40대 15명, 50대 5명으로 다양했다.
부산지방경찰청은 인터넷 관련 교육 시 아동 음란물 예방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사진=부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부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사이버팀장 이재홍 경감은 "부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 이번 수사를 통해 적발한 해외 아동음란물은 3-18세 사이의 아동·청소년의 성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영상물들로서, 전세계 인터넷망을 통해 국내에도 광범위하게 유포된 사실이 밝혀졌다는 점에서 국제공조 수사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며 "이번에 활용한 '아동음란물 수사시스템'은 단속이 취약한 새벽 시간대에도 자동으로 24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하므로 아동음란물을 내려받아 소지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 경감은 "현재로서는 아동음란물과 아동성범죄 발생의 상관관계가 공식적으로 연구된 사례는 없지만, 아동성범죄자 수사 과정에서 아동음란물 소지가 자주 회자되는 만큼 아동음란물 단속함으로써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도 어느 정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멋모르는 시기에 청소년들이 전과자가 되지 않도록 '음란물 예방교육'을 병행하면서, 수사력을 총동원해 오는 10월까지 아동음란물에 대해 강력한 단속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2013년 6월 19일자로 시행된 개정 법률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임을 알면서 소지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으로 처벌이 강화된다.
정책기자 서미자(직장인) sing51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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