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히 세상 떠난 한국여자골프의 개척자 구옥희

2013. 7. 1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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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태용 기자 = 한국여자골프의 1세대 구옥희씨가 57세라는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일본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남자들이 골프를 치는 것도 특별했던 시대에 여자프로골프 시대를 연 선구자였다.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오빠들과 생활한 고인은 1975년 고양시내 한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사실상 혼자 골프 스윙을 배운 고인은 남다른 실력을 보이자 동료로부터 선수로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때마침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는 여자 골프 활성화를 위해 협회 내 여자부를 신설했고 1978년 한국골프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들을 대상으로 프로테스트를 했다.

그해 5월 경기도 양주의 로얄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프로테스트에서 구옥희는 한명현, 강춘자, 안종현 등과 함께 프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고인은 생전에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남자 골프선수들이 프로테스트를 보는 가운데 한쪽에 10여 명의 여자 선수들이 모여서 테스트를 봤다"며 지금과는 달리 매우 척박했던 환경을 회고했다.

사실 프로가 됐지만 당시 여자프로골프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1978년에는 KLPGA 선수권대회 1개만이 개최됐고 이후 10년 동안 한 시즌 대회 수는 5∼7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구옥희는 1979년 쾌남오픈에서 첫 우승을 시작으로 1980년 5승, 1981년 4승을 거두는 등 국내 1인자로 성장했다.

구옥희 골프 인생의 전환점은 일본 진출이었다.

일본동포의 권유로 1983년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의 문을 두드린 구옥희는 2005년까지 일본 무대에서 23승을 거두는 맹위를 떨쳤다.

특히 1988년에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스탠더드 레지스터 대회에 출전, 한국 선수로서는 첫 우승자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당시 서울올림픽의 열기가 뜨거웠던 한국에서는 구옥희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고인은 당시 "내 우승 소식조차 알려지지 않아서 섭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여자골프에서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명예의 전당 1호로 입회한 고인은 50세가 넘은 나이에도 정규대회에 출전, 후배들과 실력을 겨뤘다.

1994년부터 2010년까지 KLPGA 부회장직을, 2011년부터 2012년 3월까지는 KLPGA 제11대 회장직을 맡기도 했지만 마음은 언제나 필드에 있는 한국여자골프의 전설이었다.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온 고인이 한국도 아닌 일본 땅에서 갑작스럽게 숨지자 한국골프계는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관계자는 "아직 유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장례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c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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