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기차여행 ③]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아름답다.. 이곳 사람들

김성환기자 브라티슬라바 2013. 7. 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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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하게 흐르는 다뉴브 강보다 웅장한 브라티슬라바 성보다헤어질때 손때 묻은 선물 건네는 순박하고 정 많은 사람들그들이 더 기억에 남는 곳..

때로는 사람을 통해 풍경을 본다.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마지막 밤이었다. 안내를 맡았던 롤란드(44)가 사람 수에 맞춰 디너 테이블에 선물을 풀어 놓았다. 멀리서 찾아와 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했다. "이건 내가 20여 년 전 처음으로 입사했던 회사의 사원증을 달았던 목 끈이야. 내겐 소중한 거지만 네게 주겠어. 이건 내가 아끼는 형광펜인데 세 가지 색깔로 글씨를 쓸 수 있지, 이건 내가 모으는 동전 중에서 가져 온 거야. 그리고 이건…" 이 사람 참 황당했다. 자신의 손 때가 잔뜩 탄 것을 선물이라며 건넸다. 이런 친구 처음이었다. 그런데, 시간 지날수록 그의 순수한 배려가 가슴 뜨겁게 만들었다. 이 도시가 그랬다. 나중에 참 그리워진다.

▲소박하고 꾸밈없는 도시

브라티슬라바는 화려하지 않았다. '동유럽 여행 1번지'로 꼽히는 체코 프라하에 비하면 시골마을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이 도시 인구가 약 42만명. 프라하의 3분의1 수준. 여행자들도 적었다. 이들은 체코에서 헝가리나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다 잠깐 들르는 것 같았다. 이제 막 화려한 프라하를 떠나왔으니, 이 작은 도시가 눈에 들어올까 싶었다.

처음에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브라티슬라바는 심심했다. 교통의 중심이라지만, 중앙역은 한갓졌다. 잡화를 파는 작은 가판대, 배낭 짊어진 몇몇 여행자들, 게으름 부리 듯 늘어선 택시, 가끔 오가는 전차…. 역 앞 풍경은 도시 외곽 조그만 마을의 그것처럼 느렸다.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옛 시가지는 프라하에 비하면 턱없이 작았다. 두 세 시간만 걸으면 이름난 것들을 대부분 다 볼 수 있었다. 도시의 상징인 브라티슬라바 성(城)은 웅장하긴 했지만 강렬함은 덜 했다. 프라하 성에 비해 화려하지 않았고, 1800년대 화재로 소실 된 후 재건된 터라 운치도 좀 떨어졌다.

브라티슬라바를 곱씹게 된 것은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였다. 덜컹거림에 맞춰 그 때의 모습들이 자꾸 떠올랐다. 이 도시에서는 프라하처럼 숨 가쁘지 않았다. 참 천천히 걸었고, 풍경을 음미했으며, 그래서 '이방인'의 긴장도 풀어졌었다. 지금 타고 가는 이 기차의 이미지와 딱 맞았다.

브라티슬라바는 롤란드처럼 순박했다. 성이 벼락같은 감동을 주지 않았지만, 해질 무렵, 이곳에서 바라 본 다뉴브(도나우) 강의 풍경은 은근한 멋이 있었다. 어찌나 평화롭고 온화한지 삶의 생채기가 절로 치유됐다. 옛 시가지는 속살을 들킨 여인처럼 수줍었다. 시가지 관문이 되는, 고딕과 바로크가 뒤섞인 14세기 성 미카엘 탑, 중앙광장에 놓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막시밀리언 2세가 조각된 분수, 광장 한 쪽에 있는 옛 15세기 시청 건물, 18세기까지 대주교의 겨울궁전으로 사용된 예쁜 건물…. 장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단아함이 깃든 유적들이었다.

15세기 축성된 성 마틴 성당의 85m 높이 첨탑마저 위압적이지 않았으며 정결하게 다가왔다. 헝가리가 브라티슬라바를 지배할 당시, 1563년에서 1830년에 걸쳐 19명의 헝가리 왕과 여왕들의 대관식을 치렀던 중후한 성당이었음에도 말이다. 1297년에 처음 세운 성 클레어 교회 수도원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깊이는 어찌나 묵직한지, 가서 봐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풋풋한 정취에 마음 끌리다

골목마다 느껴지는 소박한 정취는 더 진했다. 성 미카엘 탑 앞에서 본, 중부 유럽에서 가장 폭이 좁은(130cm) 건물, 맨홀 뚜껑에 만들어 놓은 조각상, 익살스러운 표정의 동상이 그랬다. 이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로코코 건축물인 브라티슬라바 시티 갤러리, 브라티슬라바 성으로 가다 만난, 장식이 아름다운 건물의 은근한 매력도 나중에 다시 생각나는 것들이었다.

광장이나 언덕의 벤치, 교회 담벼락에 앉은 사람들은 급할 것 없는 오후를 보냈다. 카페와 레스토랑은 인파로 시끄럽지 않았으며, 퍽퍽한 삶을 하소연하기에 딱 좋을 만큼만 북적거렸다. 긴박한 여정에 만난 폭신한 침대 같은 휴식처!

프라하가 너무 예뻐 중세 테마파크 같았다면, 브라티슬라바는 현지 사람들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진짜' 동네였다. 그토록 동경하던 유럽의 정취가 이런 것일까. 롤란드가 준 '목끈'이나 형광펜 같은, 아련한 정(情)이 느껴지는 땅.

브라티슬라바는 불과 20여 년 전 오롯이 한 나라의 수도가 됐다. 슬로바키아는 오랜 기간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다. 이 후 체코와 함께 체코슬로바키아로 남았다가, 1993년 독립국가가 됐다. 이 때 브라티슬라바가 수도가 됐다. 이러니 여행지로서 브라티슬라바는 서툴렀다. 여행자를 맞는 것도, 유적들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것도…. 그런데 이런 풋풋함에 오히려 마음이 더 당겼다.

롤란드 역시 매사가 서툴렀다. 가이드치고 영어가 서툴렀고, 일정 진행도 그랬다. 우리는 재촉과 투정을 반복했다. 그는 웃으며 묵묵하게 제 역할을 했다. 세련되지 않았지만, 묵직한 '진정성'이 결국 우리의 호감을 샀다. 음악가 프란?리스트는 이런 정서에 취해 생전에 열다섯 번이나 브라티슬라바를 찾았다.

여행 가방에는 롤란드가 건넨 '목끈'이 여전히 매달려 있다. 마음 한 구석에는 꾸밈없고 인심 두터운 사람들이 사는 브라티슬라바가 또렷이 남았다.

● 여행메모

체코 프라하에서 오전 9시 39분 기차를 타고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 오후 1시 47분에 도착했다. 1등석을 이용했는데 아주 쾌적했다. 특히 식당 칸이 정갈했다. 창문을 스치는 전원 풍경 만끽하며 와인 한 잔 마시면 시간이 금방 간다. 유럽 철도 패스와 티켓 상품을 판매하는 레일유럽의 동유럽패스는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오스트리아의 국철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레일유럽 한국사무소(02)3789-6100, www.raileurope.co.kr

김성환기자 spam001@sphk.co.kr브라티슬라바(슬로바키아)=글ㆍ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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