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래 변호사도 한때 김앤장 소속

고제규 기자 2013. 6. 2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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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2월26일 김영무 변호사(71)와 장수길 변호사(71)는 서울 광화문 극동쉘하우스 4층에 자신들의 성을 한 자씩 딴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박정희 정부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김앤장에서 지적재산권 분야를 이끄는 양영준 변호사는 군법무관으로 재직하던 198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와 박흥주의 사형 집행을 직접 목격한 당사자다.

조영래 인권변호사,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도 한때 김앤장에 몸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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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2월26일 김영무 변호사(71)와 장수길 변호사(71)는 서울 광화문 극동쉘하우스 4층에 자신들의 성을 한 자씩 딴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앤장을 있게 한 인연의 고리는 모두 박정희 정부가 만들어줬다. 장 변호사는 고등고시 사법과에 최연소로 합격해 판사로 재직했다. 1971년 6월 신민당사 농성 사건에 연루된 서울대 법대생 10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박정희 정부에 ‘찍힌’ 장 판사는 1973년 3월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김 변호사와 손을 잡았다.  

위 왼쪽부터 김영무·장수길·이재후 변호사.

김앤장 톱 시니어 정계성 변호사(62)가 바로 판사 장수길로부터 무죄선고를 받은 서울대 법대생이다. 1심에서 무죄를 받고 1974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항소심 재판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그도 갈 곳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김앤장행을 권유한 이가 당시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였던 김용준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장이었다. 정 변호사는 김앤장 1호 ‘어소시에이트 변호사’로 합류했다. 박정희 정부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김앤장에서 지적재산권 분야를 이끄는 양영준 변호사는 군법무관으로 재직하던 198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와 박흥주의 사형 집행을 직접 목격한 당사자다. 이 사형 집행을 목격한 후 그는 판사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김앤장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영래 인권변호사,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도 한때 김앤장에 몸담았다. 조 변호사는 1982년 시위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에서 탈락한 문재인 변호사에게 김앤장행을 권하기도 했다. 문 변호사는 김앤장의 고액 연봉 제안을 뿌리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김영무·장수길과 함께 3각 체제를 형성한 이재후 변호사(73)는 1979년에 합류했다. 이 변호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맡는 등 관계가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그는 청계재단 이사이다. 참고 자료:〈법률사무소 김앤장〉 〈김앤장 이야기〉

고제규 기자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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