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역사공세에 맞서 진보세력 제대로 현대사 공부해야"

입력 2013. 6. 10. 20:00 수정 2013. 6. 1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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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가 만난 사람]

오는 8월 정년퇴임하는

'한국 현대사 연구 개척자' 서중석 교수

한국 현대사 연구의 개척자로 나라 안팎에서 학문적 성과를 높이 평가받은 서중석(65)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가 오는 8월 정년퇴임한다. 지난 3일 서 교수는 대학원의 '한국 현대사 사료론' 마지막 강의를 했고, 10일엔 고별 특별강연까지 마쳤다.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도 얽혀 있어 사학계가 기피하던 한국 현대사 연구를 자신이 왜, 어떻게 해왔는지, 앞으로 또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곧 비워줘야 할 연구실에 앉아 3일 담담하게 얘기한 서 교수는 퇴임과 관련한 "특별한 소회 같은 건 없다"고 했다. "학교 근처에 개인 연구실도 잡아 놨다. 강의만 없을 뿐 이제까지처럼 매일 똑같은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자료를 훑고, 필요한 글을 쓰고, 책도 쓸 것이다. 요즘 해온 유신과 박정희, 4·19, 이승만 등의 연구작업을 계속할 것이다."1948년 충남 논산에서 나서 1967년 서울대 국사학과에 입학한 뒤 세 번이나 제적을 당하고 고문까지 겪는 파란만장의 세월을 거치면서 1991년 성균관대 교수가 된 지 22년하고도 반년. 그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한눈팔지 않고 해온 일을 여생에도 계속하겠다고, 말썽 피우던 사랑니를 한달 전쯤 뽑은 뒤의 후유증 때문인지 다소 수척해진 그는 말했다.최근 종편과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의 언어폭력, 국사편찬위원회의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검정 통과, 보수언론들의 편향보도 등과 관련해 그는 "상상도 못한 참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수구냉전' 세력의 공세 못지않게 '진보세력'의 대응 수준 역시 한심하다고 했다. "너무 공부를 하지 않은 탓"이라며 현대사 공부 제대로 해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인터뷰/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하루를 보통 어떻게 보내는지?

"내 일상은 아주 단순하다. 새벽 5시에서 5시 반쯤 일어나, 신문 3개를 훑어보고, 아침밥을 먹은 뒤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학교에 도착한다. 강의하고 저녁 약속 같은 것 없으면 오후 7시쯤 귀가한다. 녹화해 둔 다큐나 여행 얘기, 영화 등을 보거나 자료 좀 뒤진 뒤 9시 반에서 10시쯤 취침한다."

-교수 생활은 언제 어디서 시작했나?

"1991년 성균관대 한국 현대사 교수 공채에 응해 채용돼 줄곧 여기 있었다. 22년 반쯤 됐나. 1990년에 '좌우합작에 의한 민족국가 건설운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바로 채용된 거다. 학위논문에서 나는 여운형, 김규식, 안재홍 등 '중도파'들을 다뤘고 그 점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그 전엔 수구냉전이 판치다가 세상 변화로 다시 급진적 주장이 터져나온 상황이어서 나의 중도적 관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역사연구는 사실에 근거해야지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로 재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

-왜 교수, 그것도 역사학 교수를 택했나?

"어릴 때부터 역사를 무척 좋아했다. 중·고교 때 이미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서울대 국사학과에 들어갔을 때는 '고대·중세 공부가 역사'라는 게 학계 분위기였다. 근대사조차 공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가장 연구가 안 된 근현대사, 일제 때 식민 사관과 친일파에 이어 수구냉전 세력이 반공과 국가 이데올로기로 훼손하고 왜곡한 상처투성이의 근현대사부터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사학은 실천학이 돼야 하고, 연구를 위한 연구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역사연구는 현실문제에 바로 답을 줄 수 있어야 하고, 연구에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창시절이 순탄치 않았다.

"입학 다음해에 부정선거 항의 시위가 벌어졌고 학교는 휴교했다. 1969년 삼선개헌 반대 시위가 시작됐다. 그해 철학·미학·종교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다 제적당했다. 결국 군대에 끌려갔다 제대하고 나오니 유신체제였고, 복학 허락이 떨어졌다. 1973년 시위 이후 운동에 적극 가담했는데,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때 사전검속을 당했다. 그때 심하게 당했다. 이철, 유인태 등이 안 잡히니까 그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나를 고문했다. 물고문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고문은 인간을 더없이 추하게 만든다."

남북관계를 잘 풀어야만평화정착·경제돌파구 생겨

-후유증은 없었나?

"그 뒤론 잠을 제대로 못 잤다. 3년 전쯤부터는 수면제를 상시 복용하고 있다. 그때 당국은 폭력으로 도시 중심부를 마비시키고 새 정권을 세우려 했다는 식으로 몰았다. 군사법정에서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심에서 20년으로 감형됐다. 실제 투옥기간은 10개월 반 정도였다. 다시 학교에서 제적당했다. 두번째였다. 그리고 5·18 때 또 붙잡혀 들어갔다. 운동권 후배들을 만났다는 게 이유였다. 그때도 심하게 맞았다. 보안사 젊은 군인들은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그때 또 세번째로 제적당했다. 1979년부터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로 있었는데, 그해에 10·26 사건 나고 다시 복학 조처가 내려져 학생 신분이기도 했다."

-학위는 어떻게 받았나?

"1984년 봄에 사면복권됐고, 또 복학했다. 84년 9월 김용섭 교수가 옮겨가 있던 연세대 사학과로 가 3년간 석사과정을 마친 뒤, 88년 3월에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그해 9월 동아일보사를 그만두고 공부에만 전념해 90년 8월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을 책으로 엮은 게 1992년 역사비평에서 나온 <한국 현대 민중운동 연구>였다."

-진보세력이 공부를 더 안 한다고 했다.

"1980~90년대에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때엔 '혁명의 무기로서의 현대사'가 필요했으나, 그 뒤 바뀐 상황에 맞춰 더 깊이있고 전문성이 있는 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어야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해방 50돌인 1995년 무렵부터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보수우익이 오히려 더 체계적으로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2000년 이후 공세는 더 거세졌다. 이승만 살리기, 박정희 키우기에 열심인데도 진보세력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힘든 일에 무관심하고 너무 공부를 하지 않는 것 같다."

극우 허무맹랑한 극단적 주장 걱정모든것 북과 연결하면 만사형동인가

-최근 국사편찬위원회가 한국현대사학회의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검정 본심사에서 통과시켜 논란이 일었다.

"수정 내용을 밝히지 않아 아직 자세한 걸 모르겠지만, 뉴라이트 중에서도 이데올로기적 성향이 더 강한 게 현대사학회다. 뉴라이트 자체가 거의 그렇듯이 거기엔 전문연구자, 특히 한국 근현대사 전문 연구자가 없다."

-일베니 일본 넷우익이니 하는 단체들 얘기도 위험수위를 넘은 것 같다.

"얼마 전부터 너무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한 극단적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아, 우리 사회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상당히 당혹스럽고 걱정스럽다. 북 특공대와 간첩들이 광주항쟁 때 도청 점령했다는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주장이다. 모든 걸 북쪽과 연결시키기만 하면 만사형통인가.

3·15 부정선거 당시에도 마산경찰서가 시위하다 다쳐서 입원한 사람들 호주머니에 북과 내통했음을 보여주는 내용을 담은 종이쪽지를 슬쩍 집어넣어 사건을 날조하려 했다. 이승만은 4·19 때 한 두번째 담화에 '공산당이 배후에 있다는데'라는 발언을 슬쩍 끼워넣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나. 박정희 때도 큰 사건 나면 다 북과 관련 지었다."

-<조선일보>는 역사교과서가 좌편향이라는 사설까지 썼다.

"제목부터 '남로당식 사관, 아직도 중학생들 머릿속에 집어넣다니' 따위로 뽑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런 교과서 용인해온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공산당 정권이란 얘기냐? 그런 황당무계한 극언들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다 의도가 있다. 민주화운동 폄훼해서 현대사 연구 성과를 무위로 돌리고 다시 수구냉전 시절로 복귀하려는 것이다. 이번 사설도 뉴라이트 교과서의 국사편찬위 심사에 맞춰 그걸 통과시키려고 의도적으로 쓴 혐의가 짙다. 지성과 양식, 양심 모두 내동댕이쳤다. 참담한 일이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대응이 없다. 진보세력이 이렇게도 형편없나 싶을 정도다."

-일본에서도 1993년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로 과거사를 사과한 뒤 보수우파들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친일파 기득권 세력의 총궐기다.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 특히 후소사 극우 교과서가 나왔을 때 '일본교과서 바로잡기 운동본부' 상임 공동대표를 내가 맡아 13년간이나 싸워왔는데, 이젠 우리 국내에서 똑같은 내용의 교과서를 만나 그 싸움을 벌여야 할 판이다. 이제껏 뉴라이트 쪽이 후소사 교과서 비판하는 걸 나는 보지 못했다.

뉴라이트, 후소사 교과서 비판 없어수구냉전 격파할 반박논리 제시해야

유신체제, 친일파와 해방, 현대사 제대로 파고들어야 한다. 적당한 수준의 공부로는 안 된다. 수구냉전 논리를 격파할 설득력 있는 반박 논리를 제시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현대사 제대로 알기로 이런 분위기를 바꿔가야 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진보세력이 현대사 공부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 그냥 둬선 안 된다.

분단세력은 분단 속에서만 안주할 수 있다. 6·15 공동선언과 10·4 합의로 화해·협력과 교류가 진행되자 그들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잃어버린 10년'이니 하는 게 그런 정신적 공황상태의 반영이다. 제대로 된 역사에 대한 두려움, 기득권 상실에 대한 공황이다. 그들은 그걸 뒤엎으려 한다. 이건 일본 극우들의 '자유주의 사관'과 상통하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찾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려면 남북관계를 잘 풀어야 한다. 중국과도 잘 지내야 한다. 중국이 더 강해지면 고압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 그럴수록 남북관계가 잘돼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처럼 외세 간섭을 최소화하려면 좌우가 합작해야 한다. 그래야 외세를 오히려 우리가 이용할 수 있다.

6·15 남북 정상회담 뒤 한-중 수교로 틀어졌던 북-중 관계가 좋아졌고, 북-러 관계도 좋아졌다. 다들 바삐 움직였다. 우리가 누구 편이 되느냐에 따라 동북아 세력관계가 바뀌기 때문에 다들 긴장하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상황을 남북이 주도할 수 있다. 거꾸로 남북관계가 나빠지면 주변국들에 대한 종속적 지위로 추락한다. 이걸 잘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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