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기간 단축 위해 살인적인 야근.. 병 생기고 겨우 오픈한 시스템은 날림"
소프트웨어(SW) 개발자 양모(39)씨는 2006년부터 2년 반 동안 농협정보시스템에서 일했다. 업무시스템을 전산화하는 SI시스템 개발 업무였다. 신생 회사라 새로운 업무를 맡아 개발자로서의 역량과 경력을 쌓을 수 있겠다는 기대는 입사 후 농협NH쇼핑몰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산산이 깨졌다.
개발자들이 1년은 걸리는 프로젝트라고 말했지만 회사는 6개월을 고집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양씨는 마감에 맞추려고 매일 야근하고 새벽 2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양씨는 이 프로젝트를 포함해 연간 4,000시간을 일했다고 주장했다. 주당 77시간, 주 5일 근무 기준으로 하루에 15시간 가량 일한 셈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연평균 근로시간이 2,092시간이다.
그러나 회사는 한 달에 8~12시간의 야근 시간만 할당해 그만큼만 인정했다. 양씨는 과중한 업무에 폐렴까지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마감에 간신히 맞춰 오픈 한 시스템은 엉망진창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하나 주문하면 두 개가 배송되거나 주문 내역이 사라지는 등 오류가 계속됐다. 양씨는 "이유 없이 다운되는 농협전산망도 이러한 막장 프로젝트가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실과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IT노조) 공동 주최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을이라도 되고 싶은 IT노동자 증언대회'에서는 스스로를 을도 아닌 병, 정, 무, 기로 지칭하는 SW개발자들의 고발이 쏟아졌다.
경력 14년의 SW개발자 A씨는 "2008년 오픈마켓을 개발·운영하는 하청업체 직원으로 일할 때 잦은 밤샘 근무로 3개월 만에 몸무게가 15kg 빠지고 손과 발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손발놀람' 증상이 나타났다"며 "하루 12시간 정도만 근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자 '개발자는 24시간 코딩기계가 돼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날 나경훈 IT노조 위원장이 발표한 '2013 IT산업 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4년 조사에서 53.7%를 차지했던 30대 미만 IT노동자들의 비율은 2013년 32.9%로 떨어진 반면 40대 이상의 비율은 10배나 증가했다. 여러 단계의 하도급을 거치는 IT업계 관행 때문에 인건비는 발주사의 최초 계약 액수의 40~60% 수준에 불과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신규 인력들의 IT산업 기피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개발환경 개선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SW개발자 이재왕씨는 "지금 업계 현실에서는 서울대, 카이스트 나온 인재도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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