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권 '역사 갈등' 파문 확산 일로
무라야마 전총리 `아베 침략 발언' 정면 비판
일본 정치지형도 변화 조짐…극우 유신회 왕따
(도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무라야마 담화 수정 시사 발언으로 촉발된 일본 내 역사인식 논란이 확대되면서 일본 정치권을 흔들고 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는 19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무력으로 적국에 들어가면 그게 침략 아니냐"며 아베 총리의 이른바 '침략 정의' 발언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아베 총리가 지난달 22일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이튿날에는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고 발언하는 등 무라야마 담화를 사실상 뒤집는 인식을 드러낸 데 대해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한 당사자가 직접 나서서 반박한 것이다.
사민당 소속인 무라야마 총리는 그동안 언론 인터뷰 등에서 종종 '무라야마 담화를 수정해선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번에는 침략에 대한 상식적인 정의까지 거론하며 아베 총리를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발언으로 논란이 커지자 "일본이 침략하지 않았다고 말한 적은 한번도 없다"거나 "(무라야마 담화를) 전체적으로 계승할 것"이라며 피해갔지만, 그의 속내가 일본의 과거 침략사를 부정하고 싶은 것 아니냐는 데 대해서는 일본 국내는 물론, 한국·중국 등 이웃 국가들도 모두 동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9일 "아베 총리는 (침략하지 않았다고 한 적은 없다는) 이중 부정의 말 돌리기를 하면서도 '일본이 침략했다'고 밝히는 걸 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라야마 담화의 의미가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로는 처음으로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침략'이라고 표현했다는 데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본 정치권이 침략을 인정할 것이냐를 두고 새삼 충돌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본 내 '극우 원조' 격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유신회 공동대표도 18일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일본이 일으킨 전쟁은 침략이 아니라고 발언하며 논란에 끼어들었다.
무라야마 담화 뿐만 아니라 위안부 강제연행에 관한 고노 담화도 논란의 핵심중 하나다.
고노 담화 수정 논란의 경우 불은 아베 총리가 질렀지만, 폭탄을 짊어지고 불에 뛰어든 것은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 겸 일본유신회 공동 대표였다.
하시모토 시장은 "(전쟁 당시) 위안부는 필요했다"거나 "미군이 좀 더 풍속업(매춘)을 활용하는게 좋겠다"는 망언을 했다가 국제적인 논란이 일자 자신의 표현이 거칠었다고 사과했지만, 19일 한 TV 프로그램에서도 "(일본이) 국가적으로 (여성을) 폭행, 협박, 납치하고 싫어하는 여성에게 무리하게 (위안부 일을) 강요해 '성노예'로 삼았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며 고노 담화 수정을 요구했고, 27일 일본외국특파원협회에서 이 같은 견해를 밝히겠다고 설명했다.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본 내 갈등은 일본 정치지형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우선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 상승세가 한풀 꺾이며 이달 들어 소폭 하락한 것도 역사 갈등과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에서는 특히 아베 내각이 한국, 중국 뿐만 아니라 미국과도 대립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참의원 선거 준비와 개헌 추진 구도에도 불똥이 튀었다. 야당 다함께당은 그동안 일본유신회와 손을 잡고 개헌안 발의 요건을 완화하는 이른바 '96조 개헌'을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하시모토 시장의 위안부 망언을 계기로 선거 협력 논의를 동결하기로 했다. 다함께당은 민주당과의 선거 협력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자민당도 일본유신회와 손을 잡는 것은 득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참의원 선거후에도 공명당과 연립 내각을 구성하겠다는 생각을 밝혔고,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자민당 간사장은 "일본유신회는 정당으로서 (내부)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선거후 협력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언급했다. 이럴 경우 '참의원 선거후 개헌 추진'이라는 구상 자체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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