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레전드] 90년대 주름잡은 울산의 '가물치' 김현석 (29)

이현민 2013. 5. 1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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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풋볼]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한국 프로축구는 그동안 수많은 전설과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이 역사의 깊이는 이들의 발자취를 통해서 증폭되어 나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울림의 새 페이지를 열고자 축구의 모든 것 <인터풋볼>은 K리그의 역사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추억의 스타들을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프로선수가 한 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마무리하기란 쉽지 않다. 지도자로 다시 돌아오는 일도 극히 드물다. 하지만 김현석은 프로 생활 14년 중 12년을 울산에 몸담은 진정한 원클럽맨이다.

1990년대 울산의 가물치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공격수로서 178cm로 작은 키지만 상대 진영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당시 김현석은 테크닉이 뛰어난 공격수였다. 100미터를 12.5초에 주파하는 스피드, 볼 컨트롤, 패싱력, 예리한 킥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는 테크니션으로 불렸다.

강원도 삼척 출신인 김현석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강릉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조금씩 두각을 나타냈고, 강릉농고를 거쳐 연세대에 진학했다. 1987년 고려대와의 라이벌전에서 두 골을 터트리며 저승사자로 이름을 날렸다. 1989년 대통령배 전국대회에서 연세대의 우승을 이끌며 1990년 울산 유니폼을 입게 됐다.

입단 첫해 28경기에서 5골 3도움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허나 팀은 6팀 중 5위에 머물렀다. 급기야 1991년 울산은 차범근을 감독으로 앉혔다. 이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김현석은 14골을 뽑아내며 팀의 에이스로 군림했고, 팀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1993년부터 1994년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김현석은 1995년 그간 공백이 무색할 만큼 맹활약했다. 고재욱 감독의 두터운 신임 아래 33경기에서 18골 7도움을 기록하며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팀에 아디다스컵 우승 트로피도 안겼다.

이듬해 울산은 K리그 전반기를 우승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후반기에 신생팀 수원에 우승을 내줘 챔피언결정전을 치르게 됐다. 홈에서 0-1로 1차전을 패한 울산은 부담을 안고 원정길에 올랐다. 김현석은 선제골로 신호탄을 쐈고, 유상철, 황승주의 연속골에 힘입어 3-1(통합 스코어 3-2)로 역전 드라마를 쓰며 첫 정상에 올랐다.

거칠 것 없이 잘 나가던 김현석과 울산은 1997년 고비를 맞았다. 김현석은 시즌 중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했고, 팀 성적도 밑바닥을 맴돌았다. 그럼에도 18경기에서 9골을 터트린 김현석은 그 해 득점왕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부상을 털고 일어난 1998년 리그컵에서 11골을 넣어 팀에 우승을 선물했고, K리그 최초 한 팀에서 40-40클럽(40골 40도움) 달성한 최초의 인물이 됐다.

1990년대 초부터 1990년대 말까지 K리그를 호령했던 그는 1999년 J리그에 진출했다. 장외룡 감독의 부름을 받고 베르디 가와사키로 이적했다. 2000년 단 한 시즌 만 뛰었는데 16골 2도움을 기록하며 한국축구의 위력을 열도에 전파했다.

이때 울산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2001년 팀 리빌딩 과정에서 김현석에게 돌아와줄 것을 요청했고,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복귀한 후 울산의 성적은 상승했고, 김현석은 K리그 사상 첫 50-50클럽의 주인공이 됐다. 2002년에는 파격 변신을 선언했다. 주로 처진 공격수나 미드필더에서 뛰던 그가 중앙 수비수가 되겠다는 것. 당시 유상철도 있었고, 새내기 이천수까지 가세해 뒤에서 안정적으로 리드해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현석은 2003년 20경기를 소화하고, 8월 15일 올스타전에서 선후배들의 축하를 받으며 화려했던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통산 371경기 110골 54도움, 그것도 군 복무와 1년 J리그 생황을 제외하고 한 팀에서만 이룬 대단한 업적이다.

이런 활약에도 불구 대표팀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1990년 대표팀에 승선했지만 월드컵 무대도 밟지 못했다. A매치 22경기에서 5골을 넣은 게 전부다.

그렇지만 그가 진정한 레전드로 불릴 수 있는 이유는 은퇴 이후 행보다. 2004년 독일에서 지도자 연수를 마친 뒤 2005년 울산 코치로 돌아왔다. 수 년간 형님 리더십을 발휘하며 후배들에게 기량적,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줬다. 지난해에는 김호곤 감독을 잘 보좌해 울산이 아시아 정상에 등극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 프로필

이름 : 김현석

생년월일 : 1967년 5월 5일

키 : 178cm

포지션 : 미드필더

소속팀 : 현대(1990~1993, 1995), 울산(1996~1999, 2001~2003)

A매치 : 22경기 5득점

개인수상 : 프로축구 올스타전 MVP(1992), 정규리그 MVP(1996), 정규리그 득점왕(1997), 아디다스컵 득점왕(1998)

글=이현민 기자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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