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마당]새로 발견된 고구려비 더 활발한 논의를

이형구 | 전 선문대 역사학과 교수 2013. 4. 15.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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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초에 중국 지안시 마셴향 마선하에서 새로운 고구려비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우리에게는 매우 기뿐 소식이고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운 형편으로 쉽게 현장을 답사하지 못하여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으나 마침 지난 11일 이 비를 조사한 두 명의 중국학자가 국내에 와서 '한·중·일 전문가 워크숍'에서 이 비를 소개한 자료를 접하고 긍금증이 해소되었다. 비가 발견된 마선하 부근에는 수천기의 고구려고분이 분포되어 있어 '마선묘구'라고 부르는 곳이다. 마선하 좌우로 천추총과 서대총 등 8기의 왕능급 고분이 있어 왕릉묘역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 비는 화강암제로 된 판상형의 상부 삼각형부분은 일부 잘려 나갔고 하부에는 비좌에 꽂는 촉이 있다. 크기는 높이가 187.5cm이고 중간폭은 65cm이고 중간두께는 19cm이다.

중국에서는 한 대 이후부터 묘 앞에 비를 세우는데, 윗부분이 원형으로 된 홀형과 삼각형으로 된 규형이 있다. 한나라 비는 제액을 비의 비수나 측면 또는 후면에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고구려비는 비수에 제액을 쓰지 않았고 비문만 썼다. 이와 같은 형태나 격식은 고구려의 독창적인 4면 비의 형태를 갖춘 고구려 광개토왕능비와는 다르다. 비석의 뒷면에 한 줄의 글자 흔적이 있다는데 이는 제액을 쓴 흔적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비문은 모두 218자로 추정되는데 현재는 165자만 남아 있다고 한다. 내용은 비문의 앞부분에는 고구려 시조 추무왕이 나라를 세운 뜻의 내용과 능묘를 지키고 제사를 지내는 연호(煙戶)를 두어 4계절에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것이 기록이다. 비문의 중간부분에는 '自戊□定律 敎□發令'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는 연호를 두어 능묘를 지키고 수축하는 일을 법률로 정하고 발령하는 내용인데 이 문구는 광개토대왕능비문의 제4면 8행에 보이는 문구와 매우 유사한 내용이다.

비문의 후반부에는 "아무리 부자라도 묘를 지키는 사람을 전매하지 못하게 하고 이를 위반하는 자는 벌로 다스린다"는 내용으로 광개토대왕능비문의 제4면 마지막 9행과 거의 같은 문구이다. 또한 비문에 보이는 '自今以後'나 '不得擅賣'등의 문구도 광개토대왕능비의 문구와 같다. 그러나 서법상으로 보면 독특한 광개토대왕릉비체와는 다른 점이 있다.

비문에 보이는 "自戊□定律"의 무(戊)자 다음 □자는 간지의 뒷자리로 보이는데, 광개토대왕 재임 중에 앞에 戊자로 나오는 간지는 戊子, 戊申이 있다. 戊자 다음 □자는 마멸이 심해서 잘 보이지 않으나 위에서 아래로 긋는 획(ㅣ)으로 볼 수 있는 흔적이 남아있다. 무신의 신(申)자 아닌지 추측된다. 이는 광개토대왕18년(408)의 戊申년이 된다. 이해(408년) 수묘인(守墓人) 제도를 법률로 정하고 발령한 것으로 보인다. 이 비는 이 시기에 건립된 비로 추정된다.

중국학자들은 1990년부터 2003년까지 마선하 일대에서 8개의 왕릉급 고분을 조사하여 < 지안 고구려 왕릉 > (2004)이란 보고서를 간행한바 있다. 이 왕능급 고분중 하나인 천추총은 이 비와 400여m의 거리에 있다. 이 고분은 사방 63m 높이 11m로 광개토왕능이라고 하는 태왕능의 규모와 비슷한데, 이 천추총에서는 일찍이 '千秋萬歲永固'라 새긴 전돌과 많은 양의 와당이 출토된 바 있다. 천추총은 축조 방법이 간략하고 능원도 완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태왕릉(광개토대왕릉으로 추정)보다 이른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천추총에서 출토된 와당 중에는 '□未在永樂'이란 글자가 보이는데 영락은 광개토대왕의 연호이고 '□未'의 앞자리 □자는 간지 정미(丁未)의 '丁'자의 아래획 같은 흔적이 보인다. 이로 미루어보아 광개토대왕 재임중의 정미년으로 추측된다. 정미년은 광개토대왕 17년 즉, 407년이다. 그러므로 이 천추총의 주인공은 광개토대왕의 부왕인 고국양왕이 된다. 이 비는 고국양왕의 능비이지만 고국양왕의 능을 위시해서 마셴허 유역의 여러 선왕(先王)의 능을 수호와 제사를 드리도록 법을 정하여 공포하기 위해 세운 비로 추측된다.

중국측에서 곧 고구려신비를 공개한다고 하니 많은 연구자들이 현장이나 실물을 보고 활발한 논의가 있도록 정부나 연구기관에서 좀 더 폭 넓은 성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년은 광개토대왕릉비건립 1600주년이 되는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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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구 | 전 선문대 역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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