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의 잡채, 왕이 된 광해를 사로잡다

2013. 3. 1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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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이야기. 잡채

한국인의 잔칫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음식이 있다. 각종 채소와 당면이 먹음직스럽게 어우러진 잡채다. 잡채(雜菜)의 '잡'은 섞는다는 의미고 '채'는 나물과 채소를 뜻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잡채의 원형은 다양한 채소가 버무려진 모습이다. 현재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당면이 들어간 형태와는 사뭇 다르다.

한국의 잡채는 17세기 조선시대의 광해군 집정시기에 궁중연회에서 선보인 것이 시초라 전해진다. <광해군일기>에는 '사삼각로권초중(沙蔘閣老權初重), 잡채상서세막당(雜菜尙書勢莫當)'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처음엔 사삼각로의 권세가 중하더니, 지금은 잡채상서의 세력을 당할 자가 없다'라는 의미다. 여기서 사삼각로는 사삼(더덕)으로 밀전병을 만들어 바친 한효순, 잡채상서는 잡채로 광해군의 환심을 얻어 호조판서에 올랐다는 이충이다. 당시 권력구도의 상황을 음식에 빗대어 표현한 말이겠지만 광해군이 즐겨먹던 음식 중에 잡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잡채 조리법에 대한 기록은 1670년 안동 장씨가 쓴 <음식디미방(飮食知未方)>에서 처음 등장한다. '오이, 무, 표고버섯, 석이버섯, 송이버섯, 숙주나물, 도라지, 거여목, 건박, 호박고지, 미나리, 파, 두릅, 고사리, 시금치, 동아, 가지, 생치(식용 꿩) 등을 각각 채 썰어 볶아 담고 그 위에 즙액을 뿌리고 다시 천초, 후추, 생강가루를 뿌린 것'이라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즙액이란 생치(식용 꿩)를 삶은 국물에 된장 거른 것을 섞고 밀가루를 풀어 걸쭉하게 만든 소스다. 조리법만 봐도 당면이 들어가는 현재와 차이가 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당면을 넣은 잡채가 나타난 시기는 1912년 일본인이 평양에 당면 공장을 세워 대량생산을 하면서부터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시의 조리법이 이어져오면서 현재의 잡채모습으로 굳어졌다. 당면잡채의 역사는 100년 가량인 셈이다.

잡채는 특별한 날에 주로 먹지만 다양한 채소와 버섯, 육류까지 한번에 섭취가 가능해 언제 먹어도 좋은 영양식이다.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각각의 재료의 고유한 맛을 살리기 위해 따로 볶거나 무쳐 준비해야 하니 정성이 듬뿍 담긴 음식이기도 하다. 오늘 저녁식사는 가족들을 위해 제철 맞은 봄나물로 잡채를 준비해보는 것은 어떨까.

조선닷컴 라이프미디어팀 정재균 PD jeongsan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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