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카사노바' 재벌2세 췌장암환자 행세 '미혼女 20명 농락'
# 피해사례 1
경남에 살고 있는 교사 A(38 여)씨는 지난해 3월 스마트폰 SNS 앱에서 "나는 N공업 둘째 아들인 재벌2세이고 서울 서초구에 있는 S빌딩 건물주인 29세 남성이다. 지금 췌장암 말기여서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 미국도 가보고 현대 의술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썼지만 6개월 이상은 어렵다고 한다. 강남에는 내 돈을 보고 접근하는 여자들뿐이었는데 죽기 전에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는 장문의 쪽지를 받았다.
A씨는 안타까운 마음에 답장을 보냈고 상대 남성은 "내일이 생일인데 시한부 인생인 내 처지가 처량하다. 죽기 전까지 내가 해 달라는대로 해주면 나중에 서울 강남에 있는 수십억원대 건물을 주고 10억원의 돈을 주겠다. 너는 나같은 사람을 만난 것 자체가 로또에 당첨된 것"이라며 만남을 제의했다.
오프라인에서 만난 남성은 깔끔한 인상이었다. 남성은 1,000만원짜리 시계라고 재력을 과시했고 아버지인 홍ㅇㅇ 회장이 올해의 경영인상을 받았다고 자랑하며 인터넷으로 검색결과를 보여줬다. A씨는 이 남성을 재벌 2세라고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남성은 A씨에게 귀금속 선물은 물론 술값, 카드비 등을 요구하며 돈을 계속 뜯어갔다. A씨가 불안해하자 남성은 휴대전화로 5만원권 현금이 가득 담긴 박스 사진을 보내며 "곧 10억원을 주겠다. 또 너에게 건물을 사줄 돈 60억원을 마련했다"고 말한 뒤 A씨를 서울로 불러 강남에 있는 건물들을 보여줬다.
A씨가 더는 줄 돈이 없다고 하자 남성은 "곧 100억원이 네 손에 들어갈텐데 집을 팔든가 주위 사람들에게 빌려서라도 돈을 마련하라"고 종용, A씨는 연 39%에 달하는 고리로 대출을 받아 돈을 건네줬다.
6개월이 지나도 남성의 건강에 이상이 없고 돈도 주지 않아 A씨가 의심하기 시작하자 남성은 태도가 돌변해 A씨를 협박했다. A씨는 8개월간 총 2억2,000만원을 편취당했고 고액 대출로 인해 현재 파산 지경이다.
A씨는 경제적 문제는 물론 정신적 고통으로 자살충동을 여러번 느끼기도 했다.
# 피해사례 2
대전에 사는 사회복지사 B(30 여)씨는 평소 SNS 앱에 교회 봉사활동 내용을 올려놔 공유하는 등 독실한 신자였다.
B씨는 어느 날 SNS 앱을 통해 한 남성으로부터 "나는 앞으로 목사가 될 신학생인데 어머니가 3일 전에 돌아가셔서 대구에 내려와 있으니 꼭 좀 위로해 달라. 내가 췌장암에 걸렸다가 어머니의 기도 덕에 나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상심이 크다"며 "나는 400억대 자산가인데 강남 신사동에 월 임대료 수익이 5,000만원에 달하는 건물을 갖고 있고 강남 대치동 아파트에 살고 있다. 누나는 변호사 사무실에 있고 여동생은 백화점 명품관에 일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다.
마음이 여린 B씨는 종교 이야기에 공감을 느낀 데다가 어머니 이야기를 듣자 상대 남성에 대한 동정심이 생겼다.
B씨가 혹시나 해서 남성의 SNS에 갔더니 자신의 소유라며 서울 강남 소재 빌딩과 고가 외제차 사진 등도 게시돼 있었다. 재력을 자랑하는 남성의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남성은 시간이 지나자 B씨에게 돈을 요구했다. 700여만원을 남성에게 건넨 B씨는 남성이 또 돈을 요구하자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돈을 건네주지 않았다.
이 말을 듣자 남성의 태도가 달라졌다. 남성은 온갖 욕설과 협박으로 B씨가 차마 신고할 수 없을 정도로 공포감을 조장했다.
B씨는 이번 일로 큰 충격을 받았으며 지금도 보복을 두려워하고 있다.
# 현대판 카사노바 검거
재벌 2세, 말기 암환자 등을 사칭하며 20여명의 젊은 여성들을 농락한 수억원대 사기꾼이 검거됐다.
대구지방검찰청 형사2부는 20여명으로부터 4억여원을 편취한 혐의로 홍모(30) 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최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홍씨는 스마트폰 SNS 앱을 통해 젊은 미혼 여성들에 접근해 자신을 '시한부 인생을 사는 재벌2세', '목회자를 꿈꾸는 신학생' 등을 사칭해 호감을 산 후 오프라인에서 만나 수회에 걸쳐 돈을 편취하고 발각되자 신고하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협박하는 방법으로 1년 사이 20여명의 피해자로부터 4억여원을 편취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은 피의자 구속 후에도 계좌추적 및 통화내역 분석을 통해 11명 피해자에 대한 범행을 찾아내 추가로 인지, 기소했으며 홍씨 스마트폰에 채팅 친구로 젊은 여성 40여명이 더 있는 것으로 미뤄 피해자가 더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홍씨는 과거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서 '재벌남'이라는 ID로 젊은 여성에 접근한 후 고가의 외제차를 태워주며 "나는 재벌 2세인데 아버지가 말기 암 환자여서 곧 회사를 물려받는다"는 등 재력가 행세를 해 피해자 6명으로부터 1억원 상당을 뜯어내고 혼인을 빙자해 간음한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
그러나 홍씨는 출소한 지 한 달 만에 인터넷 채팅,스마트폰 SNS앱 등을 통해 여성들에 대화를 시도, "나는 모 그룹 둘째 아들인 재벌 2세인데 지금 췌장암 말기여서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며 "죽기 전까지 내가 해 달라는대로 돈을 주고 애인이 돼 주면 나중에 서울 강남에 있는 수십억원대 건물을 주겠다"는 등 거짓말로 오프라인 만남을 유도했다.
홍씨는 여성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날 때 고가의 외제차를 렌트하고 지갑에 수천만원의 현금·고액 수표를 넣어 보여주는 등 재력을 과시해 돈을 편취한 후 의심하거나 거부하기 시작하면 태도를 돌변해 조폭 행세를 하는 등 협박, 돈을 뜯어냈다.
또 피해자들이 신고하지 못하도록 협박하고 만일 이미 피해자가 신고를 한 경우엔 "고소했네, 너 죽어볼래? 내가 조폭일 때 사람 죽인 적도 있는데 동생들 풀어서 집에 잡으러 간다. 사시미 꽂아 죽인다" 등 협박 문자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송해 협박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해 8월 홍씨에 대한 신고를 받고 수사를 했으나 고소가 취하돼 무혐의 송치했다. 그러나 이는 홍씨가 피해자를 강요해 합의된 것으로 밝혀져 검찰은 홍씨의 문자메시지 등을 압수수색해 추가피해 여부를 확대수사했다. 검찰은 다른 피해자 한 명이 더 있는 것을 확인하고 홍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홍씨가 피해자와의 합의서를 제출한 것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이 역시 홍씨가 피해자에게 하룻밤에 400여회에 달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강요에 의한 합의였다. 합의금은 또다른 피해자에게 편취해 마련한 것이었다.
검찰은 수사를 계속한 결과 홍씨가 영장 기각 후에도 8명의 피해자에게 비슷한 범행을 더 저지른 사실을 확인했고 영장심문기일에 출석하지 않고 도주한 홍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추적한 끝에 지난 2월 5일 현행범으로 경찰에 체포된 홍씨에게 영장을 집행했다. 검찰은 이후에도 홍씨를 조사해 피해자 11명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홍씨를 구속기소했다.
검찰수사 결과 홍씨는 자신이 자동차정비업을 해 차량 대여가 용이한 점을 이용, 주로 외제차를 대여해 보여주며 피해자들을 속였다. 홍씨는 피해자들로부터 적게는 10만원, 많게는 2억여원까지 돈을 편취한 것은 물론 3명의 피해자 명의로 수백만원대 스마트폰 7대를 개통해 대포폰으로 팔아넘기기도 했다.
# 여성의 심리상태를 교묘히 악용한 희대의 사기꾼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일회적인 만남이 용이한 인터넷 채팅 사이트,스마트폰 SNS 앱 등을 통해 젊은 여성들에게 접근, 재력을 과시하거나 말기 암 환자라며 동정심을 유발하는 등 결혼적령기 미혼 여성들 심리상태를 교묘히 악용, 수억원을 뜯어낸 사기꾼 홍씨를 끝까지 추적해 붙잡았다.
검찰은 피해자 14명에 대해 대한법률구조공단 대구지부와 협의해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 법률지원을 실시했다. 신고도 하지 못했던 피해자들은 검찰 수사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현대판 카사노바'를 방불케 하는 사기 행각은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신고와 검찰의 끈질긴 수사로 덜미가 잡혀 종지부를 찍게 됐다. (사진=뉴스엔DB)
[뉴스엔 김종효 기자]
김종효 phenom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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