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요람을 흔들다 3' 참가극
(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객원기자 = 신진 연극 연출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요람을 흔들다'(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가 20일 '알유알(R·U·R)' 공연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서울연극협회와 한국연극연출가협회가 주관하는 이 프로그램은 올해가 세 번째. 지난해와 다른 점은 참가 작품(연출가) 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올해는 참가신청작 중 최종적으로 선정된 작품이 5편으로 2편이 더 보태졌다. 또 하나의 차이는 창작·번역극 구분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출가를 육성하는데 굳이 창작·번역극을 가릴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해는 3편 모두가 창작극이었던데 비해 올해는 1편만 창작극이었고 나머지 4편은 모두 번역극이었다.
말이 신진일 뿐 실제로는 참여 연출가들 거의 다가 대학로를 중심으로 짧지 않은 기간 꾸준히 연출활동을 해 온 경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이들이 연극을 만드는 과정에서 중견연출가들이 멘토로서 참여한 덕에 비교적 고르게 관심을 두고 볼만한 작품들이 나왔다. 소재도 다양했다.
김제민 연출의 'R·U·R'은 'Rossum's Universal Robots'의 약어로 로썸이라는 과학자가 공장에서 만들어낸 로봇이라는 뜻이 있다.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가 노동력을 대체하는 인조인간(안드로이드)을 소재로 1920년에 쓴 희곡의 제목이며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로봇이라는 용어는 이 제목에서 나온 것이다. 이 작품은 힘든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기 위해 대량생산된 로봇이 의식을 갖게 된 후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고 로봇 군인들이 시민을 학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로봇에 의존하게 된 인간들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다. 공상과학극인 만큼 코믹하고 만화 같은 장면들이 많이 있다. 김 연출과 배우들은 공동창작과정을 통해 원작 대본을 동시대적인 관점에서 재구성, '인간이 인간을 위해 하는 일이 진정 인간을 위한 일인가?' 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다. 미디어 드로잉이나 프로젝션 맵핑기법을 통해 무대에서 영상을 적극 활용한 것이 눈에 띈 작품이었다.
'알유알'에 앞서 공연된 이준희 연출의 '바냐와 그녀'는 한 남자와 20세 연하 여자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프랑스 연극학자 패트리스 파비스 작품이다. 사랑의 의미, 사랑의 기술, 욕망과 구원의 문제 등이 작품 속에 들어 있다. 37세의 바냐는 17세의 엘레나를 만난다. 바냐가 엘레나를 마지막으로 봤던 것은 그녀가 일곱 살 때. 그만큼 바냐는 10년 전 귀여운 어린 아이의 이미지로 엘레나를 본다. 그러나 엘레나는 바냐의 사랑을 원한다. 바냐에게는 두려움이 생기고, 둘은 제 갈 길을 가나 10년 후 각자의 가정을 가진 채 다시 만나고 정기적은 만남은 이어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중년과 소녀의 만남은 노년과 중년의 만남으로, 다시 노년과 노년의 만남으로 바뀌어간다. 무대에는 아무 세트나 소품이 없다. 다만 무대 바닥에 흰색 분필로 그린 이미지가 가득하다. 음향·음악이 없고 모든 것을 몸의 움직임과 대사로만 풀어내는 독특한 작품. 극의 시작과 끝을 관객이 쉽게 인식하지 못하도록 연출된 것이 특징이다.
'마술도시'의 경우 다섯 편 참가작 중 유일한 창작극. 김정근 연출의 이 작품(작 이오)은 화려한 도시 속의 어두운 욕망과 외로움과 고통을 그린다. 설정이 흥미롭다. 기억을 없애려 망각약을 늘 먹는 마술사와 기억을 되찾아 자신의 과거를 알고 싶은 소녀가 동행하게 된다. 예전에 아내의 정절을 의심해 끝내 죽이고만 마술사는 세상을 떠돌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 기억을 떨쳐버리려 한다. 과거를 기억하고자 하는 소녀는 항상 바다가 가고 싶다. 소녀는 어느 날 '기억 자동판매기'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고 좌절 끝에 환락가로 빠져든다. 이제는 소녀가 기억을 떨쳐버리려 한다. 마술사는 끝내 소녀를 죽임으로써 그녀를 바다로 이끈다. 이 작품은 마술쇼로부터 시작돼 마술쇼로 끝난다. 춤과 마술, 또 '기억 자동판매기'의 설정 등 만화 같은 이야기가 볼거리를 제공한다.
윤혜진 연출의 '어느 여름날'은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가 쓴 것으로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 흔히 느껴지는 적막과 불안감이 짙게 깔렸다. 이제 중년이 된 여자는 외딴 바닷가 집에서 남편이 홀연히 사라졌던 과거 어느 날을 회상한다. 그날 남편은 무척 불안해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바닷가에 나가 보트를 타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냥 파도 위에 몸을 싣는 것이 좋다고 했다. 친구의 방문을 기다리던 아내는 남편의 외출이 내키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자신이 원해 도시를 떠나 바닷가에서 살면서도 항상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남편을 내보낸다. 이윽고 친구 부부가 나타나지만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대사는 시적이고 회화적이다. 짧으면서도 같은 내용이 끝없이 반복된다. 남편이 스스로 죽는 길을 택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들긴 하지만 그에게 일어난 사건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두려움과 불안감은 더욱 증폭된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반영, 무대는 부유하듯 바닥에서 붕 떠 있다. 또 등장인물들이 멍하니 쳐다보는 바다 방향의 집 창문 쪽으로는 바닥이 경사졌다. 전형적인 욘 포세 작품으로 현대인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극 속에 녹아 있다.
이번 '요람을 흔들다 3'의 첫 번째 공연작품이었던 홍영은 연출의 '기억의 체온'은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자신과 똑같은 환영(幻影)을 보는 현상인 '도플갱어'(분신 또는 생령)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다. (1월8일 오전 8시에 송고된 '기억의 체온' 리뷰 기사 참조)
한편 이들 다섯 편의 작품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되는 한 작품은 올해 봄에 있을 제34회 서울연극제에서 다시 공연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 '기억의 체온' = 극단 홍차 제작.
만든 사람들은 ▲작 마에카와 도모히로 ▲번역 이시카와 쥬리 ▲연출 홍영은 ▲멘토 박장렬 ▲조명 차재영 ▲무대 김교은 ▲의상 장유정 ▲분장 이현아 ▲조연출 신혜옥.
출연진은 이황의·정성호·김지은·장준희·맹상렬·강수영·황기석·오범석·김기훈·이수민.
◇ '어느 여름날' = 극단 전망 제작.
만든 사람들은 ▲작 욘 포세 ▲번역 정민영 ▲연출 윤혜진 ▲멘토 강량원 ▲무대 송아름 ▲조명 최보윤 ▲음악 백인성·김영경 ▲의상 김미나 ▲분장 한원경 ▲조연출 정현.
출연진은 이정미·이선주·김수현·신윤숙·임정선·김진태.
◇ '마술도시' = 공연예술제작소 비상 제작.
만든 사람들은 ▲작 이오 ▲연출 김정근 ▲멘토 김태수 ▲무대 이주은 ▲조명 김재억 ▲의상 유미진 ▲분장 김가현 ▲음악 서상완 ▲마임지도 고재경 ▲움직임지도 천창훈.
출연진은 정충구·최주현·김양희·이재선·김기현.
◇ '바냐와 그녀' = 4관객 프로덕션 제작.
만든 사람들은 ▲작 패트리스 파비스 ▲번역 이혜경 ▲연출 이준희 ▲멘토 오경숙 ▲미술 신언엽.
출연진은 손성호·김광덕.
◇ '알유알(R·U·R)' = 극단 거미 제작.
만든 사람들은 ▲작 카렐 차페크 ▲연출 김제민 ▲멘토 김석만 ▲드라마투르그 오민아 ▲음악 김병제 ▲무대 봉하일 ▲의상 박정원 ▲안무 양은숙 ▲조연출 이수인.
출연진은 김강현·정원태·황도연·민정희·이준규·김보라·김동민·심우섭.
ringcyc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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