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사람 보면 식은땀? 왜곡된 기억 치료하면 씩씩!

입력 2012. 12. 29. 03:09 수정 2012. 12. 3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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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생활 멘토링 수치심에 시달리는 직장인들

[동아일보]

이은정(가명·여) 씨는 20대 중반이지만 회사를 벌써 세 번째 옮겼다. 특이한 것은 이직하는 회사 규모가 갈수록 작아진다는 점. 지금 다니는 회사는 본인을 포함해 직원이 6명에 불과하다. 그는 회사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자신의 주된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을 다른 직원들에게 설명하거나 사장에게 보고할 때면 가슴이 뛰고 식은땀이 나며 얼굴 근육이 심하게 긴장된다. 특히 윗사람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하는 것이 어렵고 무섭기까지 하단다. 그렇다 보니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자주 살피고 눈치를 보게 된다. 또 혹시 자신이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늘 긴장한다. 그가 직원이 적은 회사로 이직한 것도 신경 써야 할 사람 수가 적은 곳이 그나마 생활하기 편했기 때문이다.

괴로움의 원인 중 8할은 수치심

은정 씨는 혹여 자신의 불안감과 긴장감을 남들이 알아차릴까 봐 두렵다. 다른 사람들이 웃는 것을 보면 혹시 자신을 한심하게 보고서 비웃는 것이 아닌지 머리가 아프다.

그렇다 보니 '눈에 안 띄기'가 행동 전략이 됐다. 업무상 통화를 할 때도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개인 전화가 오면 사무실 밖으로 나가서 받는다. 회식은 대부분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 빠지지만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면 일부러 술을 많이 마신 뒤 취기에 의지해 동료들과 이야기한다.

간혹 회사 상사가 "은정 씨는 목소리를 좀 크게 내야겠어. 밥 좀 많이 먹고 힘내요"라는 말을 던지면, '나의 불안 증상을 저 사람이 알아차렸구나'라는 생각에 수치심이 든다. 그럴 때면 하루 종일 우울증에 시달린다.

은정 씨의 감정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수치심'이다. 진료 중에도 그는 말했다. "선생님 앞에서도 떨리는 것 같아요. 제 입 주위 근육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나요?"

그는 자신의 '실제 모습'을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 결과 자존감 저하에 시달리며 '사회공포증(혹은 대인공포증)'의 전형적인 증상을 보인다. 은정 씨는 사회적 상황, 즉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는 상황에 처하면 그들이 자신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실수하면 어떡하나'라는 과도한 걱정을 낳고 이는 곧 심한 긴장감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자신이 긴장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면 할수록 당황스러움은 더 심해지고, 심리적 위축감도 커진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집착할수록 불안이 더 심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은정 씨는 실제로 스스로를 '남에게 우습고 한심하게 보이는 사람'이라고 확실하게 단정할 만큼 과거 수많은 '수치스러운 경험'을 했을까. 그런 경험이 그가 겪는 대인공포증의 원인일까. 그는 첫 직장에서 발표를 하던 중 너무 긴장한 나머지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고 손까지 떨었던 경험이 있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그에게 상사는 "그만하고 나중에 다시 발표해"라고 말했다. 그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날 그 회사를 그만뒀다. 더 '원초적인' 경험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것이다. 선생님의 지시로 학교에서 책을 읽다 떨리는 목소리로 읽는 바람에 친구들에게서 "너는 왜 울부짖는 소리를 내니?"라며 놀림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상담 결과 그가 실제로 겪은 '수치스러운 경험' 횟수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스스로 만들어낸 공포의 세계

은정 씨의 증상은 정신분석학적으로 '인지 왜곡(cognitive distortion)' 또는 '부정적 인지(negative cognition)'로 표현할 수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우습게 보거나 싫어할 거라 단정할 정도의 많은 경험이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를 '한심하고 우스운 사람'이라 단정했다. 첫 회사에서의 경험, 초등학교 5학년 때의 경험 등 몇 번의 '굵직한' 수치스러운 기억이 그가 수치심에 지배당하게 만든 것이다.

그의 대인공포증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반으로 한 것도 아니었다. 실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직접적으로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다. 증상의 주원인인 과거의 두어 가지 부정적 경험은 이미 끝난 지 오래된 상태다. 필자는 그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그리고 왜곡돼 있음을 지적했다. 그것이 '내가 거리에 나가기만 하면 교통사고가 날 것이 뻔하다'라는 생각과 비슷하다고도 말해줬다.

그렇다면 은정 씨는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최상의 방법은 단 몇 번의 경험으로 왜곡돼 버린 인지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먼저 자신의 부정적 인지가 과거의 몇몇 사건에 기반을 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수치스러운 경험을 되짚어 보며 종이에 천천히 써내려 가는 것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활자로 사실을 구체화하다 보면 자신이 머릿속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상황을 회피해 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자신의 사고가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으로 왜곡돼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던 그는 상담이 진행되면서 자신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힘들어했던 상황과 부딪치는 노력을 시도했다. 그렇게 힘들었던 회식 자리에 가서 막상 노래를 불러 보니 사람들은 별 말이 없었고 오히려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그는 분명히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을 거라고 부정적으로 인지하고 있었지만, 실제 상황은 긍정적이었다. 물론 그는 속으로 떨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과 다르게 떨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다른 사람들의 비난에 대한 걱정을 무시했더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떨리는 현상이 조금씩 없어졌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긍정적인 삶을 찾을 것이다.

손석한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psysohn@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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