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부패스캔들 미국이 영국보다 12배 많은 까닭은

입력 2012. 12. 7. 13:41 수정 2012. 12. 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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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50대 경영 구루 카카밧세 英크랜필드대 교수
회장·CEO 겸임땐 권한 한곳에 집중, 전횡·비리 커져
잡스같은 강한 회장? 후계자 제대로 못키우면 되레 재앙

세계적인 통신ㆍ보안장비업체 타이코(TYCO).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위크는 2000년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인 데니스 코즐로프스키(Denis Kozlowski)를 '세계 최고의 경영인 25명' 중 1명으로 선정했다. 코즐로프스키는 AT & T에서 인수한 광섬유 케이블사업을 키워 회사 매출을 전년 대비 28% 증가시켰다. 주가도 한 해 만에 2배 이상 뛰었다. 타이코의 회장(chairman, 이사회 의장)과 CEO직까지 장악한 '스타 CEO' 코즐로프스키는 인수합병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타이코는 사업분야가 화재경보기, 광섬유 케이블을 넘어서 금융서비스, 헬스케어까지 늘어났다. 사람들은 타이코를 '제2의 GE'라고 부르기도 했다. 코즐로프스키는 미국 산업계를 이끌어 나갈 차세대 주자로 꼽혔다. 그러나 한 펀드매니저의 고발로 코즐로프스키의 가면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코즐로프스키는 1억달러에 달하는 회사 돈을 탈세하고 일부는 자신의 미술품을 사는 데 사용했다. 사임 직전에는 총 2억4000만달러에 달하는 주식을 팔아 치웠다. CNBC는 2008년 역대 사기꾼 11인의 명단에 '코즐로프스키' 이름을 올렸다.

이 사건은 미국 최대의 회계부정 사건으로 꼽히는 엔론 사태가 터져 나온 지 불과 1년 만에 발생했다. 왜 이런 대형 회계부정 사태가 연달아 터진 걸까. 세계 50대 경영 구루로 꼽힌 앤드루 카카밧세 영국 크랜필드대 경영대학 국제경영개발원 교수는 거대 부패 스캔들의 이면에는 '리더십' 문제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기업의 리더십과 지배구조 전문가인 카카밧세 교수는 최근 매일경제 MBA팀과 인터뷰에서 "미국에서는 회장과 CEO가 한 사람으로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지배구조 속에서는 부패 스캔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도 '경제 민주화' 바람을 필두로 지배구조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이 최근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에서 한발 물러나 '이사회 의장'직을 맡은 데 이어 GS그룹도 지난 4일 정기인사를 통해 이사회 의장인 회장 직과 CEO 직을 분리했다. 카카밧세 교수는 "세계적으로 회장과 CEO직을 1인이 아닌 2인 체제로 나누고 있는 추세"라며 "회장과 CEO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야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카카밧세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한국은 회장과 오너, CEO를 한 사람이 맡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례는 계속 사라지고 있다. 특히 영국에서는 몇 번의 부패 스캔들을 거친 이후 회장과 CEO를 한 사람이 맡는 사례가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영국은 자신이 CEO로 있던 회사의 회장으로 가는 것도 꺼린다.

영국 런던증권거래소는 이러한 사례가 발생하면 반드시 이를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전직 CEO 출신인 회장이 경영진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독 미국에서만 회장과 CEO가 일치한다. 미국 기업의 75%가 그렇다. 이러한 지배구조는 매우 안좋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경영진을 감시해야 하는 이사진의 독립성이 침해당하고 있다.

-그러나 회장과 CEO가 일치하는 기업들도 문제없이 잘 운영되고 있지 않나.

▶회사의 가장 전략적인 실패가 회장과 CEO를 한 사람으로 일치시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부패가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은행ㆍ기업에서 역대 부정 스캔들을 분석한 결과, 미국의 비중이 나머지 국가들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더 많았다. 1980년 이후 미국에서 기업 부패 스캔들이 영국보다 무려 12배나 많았다.

기업은 부패 스캔들이 발생한 뒤에야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깨닫는다. 이사진이 약했기 때문에 오너나 CEO가 원하는 대로 회사를 운영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부패 스캔들로 경영진이 물러나고, 조직의 성장성이 훼손되고 난 뒤에야 시스템을 바꾼다. 엔론과 타이코가 대표적인 사례다. 엔론도 처음에는 좋은 기업이었다. 그러나 회장과 CEO의 역할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결국 부패 스캔들로 이어졌다.

-한 사람이 회장과 CEO를 동시에 맡으면 기업의 추진력이 생겨서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의견도 많다.

▶우리가 찾아낸 바로는 거의 CEO에 가까운 강력한 회장은 기업에는 재앙이란 점이다. 이미 영국과 프랑스 독일 정부는 위원회를 만들어 회장과 CEO 역할을 분리하는 지배구조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

-애플의 고 '스티브 잡스'처럼 회장과 CEO가 일치하더라도 성공적인 사례도 있지 않은가.

▶당신은 뛰어난 머리와 전략을 갖췄으면서 현명하게 결정까지 하는 사람이 회장의 롤모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CEO와 역할을 나누지 않고 강해지려는 회장은 결국 조직에 위해를 가하게 된다. 강하면서도 성공적인 회장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뜻에서 스티브 잡스는 불세출의 인물이다. 그런 천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잡스가 살아 있으면서 실권을 갖고 있는 동안은 문제 없었다. 그러나 잡스가 죽고 나서 애플은 내리막길이다. 잡스처럼 매우 강한 경영인 1명을 만들어 놓게 되면 그가 떠났을 때 지속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잡스는 회사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지 못한 것이다. 강한 회장은 자신을 대신할 후임자를 개발하지 못하게 되는 사례가 많다.

-회장과 CEO 역할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세계적으로 회장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반면 CEO의 역할은 최고운영자(COO) 수준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회장의 진짜 역할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것이다. 기업의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사람들을 합치고 공통의 이익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회장은 조직을 앞으로 이끄는 사람은 아니다. 기업환경이 전략적으로 복잡해진 오늘날에는 회장과 CEO, 사외이사가 각자의 역할을 구분해 맡는 것이 중요하다. CEO가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회장이 이사회를 장악하게 되면 문제가 계속 커지게 된다. 연달아 스캔들이 이어진다는 게 내 연구의 결과다. 회장이 이사진을 챙기고, CEO가 경영진을 챙기는 것이 가장 좋다. 회장은 팀워크를 조성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열린 대화의 공간을 만들어 회장과 CEO에게 도전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완전한 '성과 중심주의'적인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질투나 자아도취 권력다툼 등이 이사진과 경영진에 끼어들 틈이 없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경영진이 각자의 역할을 균형있게 맡을 것이다. 또한 회사를 시장과 고객 니즈에 맞춰야 한다. 주주 등 이해당사자와 약속을 지킨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내 연구결과에서 도출된 회장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사회에서 회장에게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아주 어려운 문제다. 똑같은 불만이 미국에서도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 회장과 CEO가 한 사람으로 일치해 이사회를 지배하게 되면 사외이사가 반대의견을 표해도 어떤 안건이든 승인이 가능하다. 미국 이사회는 지배구조의 2가지 핵심 중 멘토링(mentoring) 기능만 수행할 뿐 모니터링(monitoring)은 못하고 있다.(전자가 회장을 보좌하는 기능이라면 후자는 회장의 잘못을 지적하는 기능이다.) 좋은 이사진과 좋은 회장은 멘토링과 모니터링의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좋은 회장은 이사진에게 '좋은 친구'처럼 행동한다. 그래야 회사가 지속 가능하다.

러시아의 신흥재벌 올리가르히조차도 최근 전문 CEO를 고용하고 있다. 천연자원 개발사업 위주로 회장 혼자서도 경영이 가능할 텐데 말이다. 러시아 신흥 재벌들은 이사진을 키우고 개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회사의 리스크와 성공 가능성을 판가름하고 회사의 평판을 보호하기 위해 이사진을 매우 열심히 일하는 직원(Hard Working Unit)으로 탈바꿈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중국이 직면한 부패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관습적으로 너무 강력한 리더가 다른 사람들을 전부 침묵하게 만든다. 중국 정부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바라보려면 회사 지배구조를 더 효율적이고 영향력 있게 바꿔야 한다.

-당신은 회장의 바쁜 일정과 지배구조 탓에 회장직이 가장 계발이 덜 된 자리라고 지적한 바 있다.

▶회사의 향후 비전을 제시하는 회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대다. 그러나 그 역할을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우선 회장은 한 회사의 회장일만 하도록 해야 한다. 2개 회사에서 회장을 맡거나 다른 회사의 사외이사를 맡는다면 좋지 않다. 사외이사를 위한 각종 계발 프로그램은 많은데 회장을 위한 프로그램은 극히 드물다. 회장들이 자신의 역할과 성과를 피드백 받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그러나 회장이 자신의 경쟁자에게 '날 가르쳐 달라'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국가적인 차원의 문제다. 정부가 회장들이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회장과 CEO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면서 하나의 팀으로 고성과를 내는 곳이 있나.

▶BAE시스템스, 맥쿼리은행, 루프트한자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 조사 결과로는 회장과 CEO의 이름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회사일수록 성과가 높은 경향이 있었다. 회장과 CEO가 하나의 팀으로 좋은 균형을 이루고 있는 회사일수록 언론 매체와 사람들은 그 회사의 회장과 CEO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루프트한자, 앵글로아메리칸, BMW,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등 크고 성공적인 회사의 회장과 CEO 얼굴이 떠오르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좋은 회장의 롤모델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존 파커 앵글로아메리칸 회장이 떠오른다. 회장의 역할은 뒤에 머무르는 것이다. 앞에 나오는 것은 CEO다. 회장은 뒤에서 CEO를 밀어주면서 동시에 기업의 롤모델로 존재해야 한다.

■ 회장과 CEO 외국에서는 이사회를 이끌어 회사의 비전을 제시하고 경영진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이사회 의장을 '체어맨(chairman)', 즉 회장이라고 부른다. 반면 CEO는 회사 경영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경영자나 오너, 이사회 의장 등을 모두 회장으로 존칭해 부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내에서는 단순히 이사회 의장직만 맡는 경우에는 실권이 거의 없다.

■ He is …

앤드루 카카밧세 교수는 영국 크랜필드대 경영대학 국제경영개발원 교수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리더십 전문가다. 기업의 리더십과 지배구조와 이사회의 효율성, 기업 최고경영진의 성과 향상이 주 연구 분야다. 카카밧세 교수는 영국 미국 러시아 중국 호주 일본 등 총 17개국, 4500개 회사의 최고경영진을 연구해 데이터베이스화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지금까지 총 38권 책과 210편의 학술지 기고, 18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나 국내에 소개된 것은 별로 없다. 그는 지난해 세계 50대 경영사상가를 선정해 발표하는 '싱커스 50(Thinkers 50)'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카카밧세 교수가 몸담은 크랜필드대는 학부 과정이 없는 대학원, 연구중심의 학교다. 그가 속한 크랜필드대의 MBA 과정은 2010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준 세계 26위를 차지했다. 평생 반려자인 아내 나나 카카밧세 영국 노스햄튼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리더십 관련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영국기업 지배구조 공시는 '기본'

[차윤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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