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부품 이상으로 발사못해.."준비부실 아니냐" 지적도
◆ 멈춰선 나로호 ◆
오전 내내 하늘을 덮고 있던 구름은 모두 걷혔다. 비도 내리지 않았고 바람도 초속 6~8m로 약하게 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우주는 대한민국에 도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Ⅰ)'가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상단(2단) 로켓 '추력방향제어기(TVC)' 이상으로 발사 16분52초를 앞두고 연기됐다. 2단 로켓에 문제가 발생한 만큼 나로호 1단과 2단 로켓을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해 하늘을 향해 섰던 나로호를 다시 눕혀 조립동으로 옮길 예정이다. 이로써 발사 예정일이던 다음달 5일을 넘기는 것은 물론 내년으로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발사 당일인 29일 오전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나로호 3차 발사관리위원회'를 열고 발사 시각을 오후 4시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발사 2시간을 앞두고 1단 로켓 연료인 케로신과 산화제가 주입됐으며 발사를 위해 나로호 기립장치도 철수됐다. 발사 시간 20분 전부터 발사통제동(MCC)에 있는 대형 스크린 왼쪽 모니터에서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16분52초를 남긴 상황에서 갑자기 시간이 멈추면서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짧은 탄식 소리도 흘러나왔다. MCC 내부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몇몇 연구원이 자리를 떴다. 오후 3시 47분 상단 로켓 상태를 점검하던 중 문제가 발견된 게 확인되자 김승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즉시 MCC 밖으로 나갔다. 4시 8분, 나로호는 TVC 이상으로 발사 취소가 확정됐다.
TVC는 나로호 상단 로켓 비행 방향을 제어하는 전자부품이다. 로켓 비행 방향은 연료가 분사되는 노즐에 의해 결정된다. 이 노즐을 구동시키는 장치가 TVC다.
조광래 항우연 나로호발사추진단장은 "노즐 구동을 위해서는 유압이 필요하다"며 "유압을 만들어내는 펌프가 있는데 그것을 제어하는 장치가 고장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ㆍ러시아 연구진은 발사에 앞서 이틀간 총 4회에 걸쳐 TVC를 검증했는데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 조 단장은 "대기하는 과정에서 TVC 전류가 급격히 소모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2단 로켓에는 TVC 외에 10개 전자박스가 있는데 각각 소모해야 하는 전류가 정해져 있다. 이날 TVC에는 전류가 수백 ㎃(1㎃=1000분의 1A) 더 흐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발사 연기 원인에 대해 정확한 해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류가 더 소모되는 현상이라면 '전기 합선(쇼트)'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지만 네 차례에 걸친 점검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 나로호 전자장비 시스템 전반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장영근 항공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쇼트는 일어날 수 있는데 테스트할 때도 멀쩡하던 장비가 발사를 앞두고 중지됐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독립적인 점검에서 문제가 없다면 나로호 전체 시스템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전체 시스템 문제라면 점검과 보안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나로호에 장착된 TVC는 만든 지 5년 경과해 노후화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조 단장은 "그런 의구심을 가질 수 있지만 3개월마다 부품 점검을 통해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며 "노후화가 아닌 전자소자 쪽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TVC는 프랑스산으로 나로호 1차 발사 때부터 사용해왔다. 현재 항우연은 2개의 여유분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발사체 발사 연기가 잦은 일이라고 하지만 연이어 이런 일이 벌어지다 보니 준비가 부실한 것 아니냐는 질책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비록 또다시 연기돼 안타깝지만 원인을 파악해 보완해 나갈 것"이라며 "우리 연구원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국민 여러분의 많은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박기효 기자 / 김미연 기자 / 고흥 = 원호섭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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