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 1600주년 기념-다시보는 광개토대왕>광개토왕릉은 어디? 中학계 "태왕릉" 국내선 "장군총"

최영창기자 2012. 10. 2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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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412년 39세로 서거해 장수왕 3년(414) 산릉에 묻힌 광개토왕의 무덤은 어디일까.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학자들은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에 위치한 광개토왕비 주변의 태왕릉과 장군총을 놓고 팽팽한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다.

특히 중국 학자들은 2004년 고구려 유적의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한결같이 태왕릉을 광개토왕릉으로, 장군총을 장수왕릉으로 비정하고 있는 반면, 대다수 국내 학자들은 장군총을 광개토왕릉으로 보고 있다.

광개토왕비와의 거리로 따지면 태왕릉이 400여m, 장군총은 1.7㎞ 정도 떨어져 있다. 고분군이 밀집한 국내성 동쪽 용산(龍山)과 우산(禹山) 아래에 형성된 무덤으로, 거리상으로 따지면 태왕릉이 광개토왕릉일 가능성이 높다. 크기도 태왕릉이 장군총의 두 배에 달한다. 그러나 방위적인 면에서 볼 때는 광개토왕비가 장군총 묘실 전면에 위치하고 있어 능의 전면에 비가 위치해야 한다는 원칙에 부합한다.

태왕릉은 무덤 주변에서 '원태왕릉안여산고여악(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바라건대 태왕릉이 뫼처럼 안정되고 높은 산처럼 굳건하기를)'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벽돌이 발견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실시된 조사에서 제대(祭臺) 시설이 확인되고 '신묘년 호대(태)왕 □조령 구십육(辛卯年 好大王 □造鈴 九十六)'이란 글씨가 새겨진 청동방울이 출토됐다. 제대 시설의 성격이나 호태왕이 반드시 광개토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등 반론이 적지 않지만,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태왕릉을 광개토왕릉으로 보는 견해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 학자 가운데 태왕릉을 광개토왕으로 비정해온 조법종 우석대 교수는 지난 18∼19일 열린 광개토왕 1600주기 국제학술회의에서 광개토왕비 앞을 흐르는 소하천을 동천(東川)으로 비정한 뒤 태왕릉과 광개토왕비가 동일 공간에 위치한 것에 비해 장군총은 광개토왕비와 동천으로 비정되는 하천에 의해 별개의 공간으로 구획돼 있다며 자신의 주장을 재확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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