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입양의 그늘> ①조작되는 입양아 신상정보
입양 대상자 자격 갖추려 '호적세탁' 성행
정체성 혼란 충격…장성後 혈육 찾는데 장애물
(서울=연합뉴스) 기획취재팀 = "과거 국외 입양된 아이들 대부분의 호적 기록이 조작됐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을 입양 보내기 위해서다. 엄연한 범죄이자 인권 유린이다. 정부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입양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진실에 다가갈 길을 열고 더 이상의 조작을 막아야 한다"
1983년 미국으로 입양됐다가 2006년 한국으로 돌아온 마이클 강(36·한국명 강용문) 씨에게는 서로 다른 2개의 호적이 있다. 하나는 친부모와 형제의 이름이 나란히 올라간 원래 호적. 다른 하나는 강씨가 입양되는 과정에서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입양 과정에서 만들어진 새 호적에는 강씨가 버려진 아이로 발견됐고 서울 서대문구청의 기아발견조서를 근거로 서울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그의 성(性)과 본(本)을 새로 만든 기록이 남아 있다.
강씨의 새 호적에는 본인의 이름만 덩그러니 올라 있다. 또 이름의 한자 표기는 원래의 '容門'이 아닌 '龍文'으로, 진주(晋州)였던 본은 한양(漢陽)으로 바뀌어 있었다. 멀쩡히 부모를 둔 강씨를 '법적 고아'로 만든 '호적세탁'이 이뤄진 것.
이는 '부모가 없는 고아만이 입양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의 미국 입양규정에 맞추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 미가입국인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될 수 있는 아동은 '부모가 없거나, 양육 능력이 없는 부모가 서면으로 아이의 이민과 입양을 허용한 경우'로 한정된다.
이런 호적 세탁을 통해 한국은 과거 미혼모 출생아나 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아이들을 손쉽게 처리(?)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한국은 국외 입양인이 16만4천여명(비공식 입양까지 합하면 20만명 이상 추정)에 이르는 세계 최대 '고아 수출국'의 오명을 안게 됐다.
입양기관들은 보육원에 맡겨져 친부모의 입양 동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입양을 보내려고 어쩔 수 없이 이런 수단을 썼다고 항변한다.
강씨를 입양 보냈던 동방사회복지회 관계자는 "입양 수속에 필요해 우리 쪽에서 호적을 만든 것 같다"고 인정하면서도 "입양을 의뢰한 보육원이 서류를 작성했기 때문에 원래 호적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버젓이 호적이 있는데도 입양기관이 새 호적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육원을 거치는 아이들은 대부분 호적을 확인할 수 없다. 강씨 역시 보육원에서 2년 가까이 지내다가 호적 없이 입양 의뢰된 경우"라고 덧붙였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와 같은 신상정보 조작은 입양인의 인생을 근본부터 흔들어놓는 잔혹한 폭력이자 인권 유린이다.
신상정보 조작은 우선 성장기에 접어든 입양인에게 자신이 친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피해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 또 입양인이 성장해 자신의 친부모를 찾으려 할 때도 엄청난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버젓이 살아 있는 부모를 사망 처리해 입양서류를 꾸미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입양인이 자신의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죽은 줄 알았던 친부모의 생존을 확인하면 엄청난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
강씨는 "친아버지가 보여준 원래 호적과 친구가 발견해 낸 입양서류상 호적을 비교해보고 입양 당시 서류들이 조작된 것을 알게 됐다"며 "한국의 입양 시스템이 썩었으며, 내가 버려졌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분노했다.
또 미국에서도 양부모의 학대 등으로 입양과 파양을 거듭했던 그는 "마치 다른 누군가의 삶을 내가 대신 살아온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정보 조작의 피해자는 정씨뿐만이 아니다.
생후 6개월 만에 미국으로 입양됐던 제인 정 트렌카(40·여·한국명 정경아) 씨도 호적세탁을 통해 고아가 된 사례다.
정씨의 경우 쌍둥이 동생과 함께 어머니 손에 이끌려 보육원에 맡겨졌다. 본래 온양 정씨인 그는 이른바 '입양 호적'에서 본관이 나주인 고아로 둔갑해 미국에 입양됐다.
입양이 취소된 다른 사람을 대신해 입양돼 46년간이나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한국계 다큐멘터리 감독 강옥진(미국명 디안 볼셰이) 씨 역시 대표적인 신상정보 조작의 피해자다.
정씨는 "거의 모든 입양인의 기록이 이런 식으로 조작됐다. 신상정보 조작은 아주 광범위하게 이뤄진 관행"이라며 "성장기에 조작된 기록을 본 아이들은 자신이 친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이는 인간에 대한 폭력"이라고 비난했다.
정씨는 이어 "이제 정부가 나서서 입양기관의 신상정보 조작을 철저히 조사해 국외 입양인들에게 올바른 정보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뿌리의 집을 운영하는 김도현 목사는 "고아에게만 입양을 허용한다는 원칙을 피하려고 우리 사회는 과거 법원과 구청까지 나서 공문서를 위조하는 악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노르웨이로 입양된 한 오누이는 입양서류에 친부모가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10여년간 매년 기일에 친부모를 애도하는 '감정 노동'을 했다. 그런데 친부모의 생존 사실을 알고는 큰 충격을 받았고, 자신의 정체성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고 전했다.
김 목사는 "그동안 우리가 입양을 '천사의 선행'으로만 봐왔기 때문에 이런 악행이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장성한 입양인들이 속속 뿌리를 찾아 나서면서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제 시각을 바꿔 친부모와 자녀를 분리하는 입양을 장려하기보다 미혼모 등이 친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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