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가장 긴 한국, 근속기간은 가장 짧다

박유연 기자 입력 2012. 9. 28. 06:30 수정 2012. 9. 2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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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주요 국가의 절반 수준인 5년에 불과 비정규직의 급격한 증가와 장기 근속자 구조조정 때문 1년 미만 초단기 근속자 37% 10년 이상 근속자는 17%뿐 "고령화로 평균 연령 올라도 근속기간은 한국만 제자리"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이유선(34)씨는 대학 졸업 후 10년간 직장을 일곱 번이나 옮겼다. 이 가운데 자의로 회사를 나온 것은 상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해 그만둔 2010년의 여섯 번째 이직이 유일했다. 나머지는 모두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2년의 계약 기간 후 해고를 통보받았거나, 계약 기간 중 회사의 은근한 압력에 의해 그만둔 것이었다. 이씨는 첫 직장에 들어갔던 10년 전이 아직도 후회스럽다. 그는 "좋은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 일단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새 직장을 알아보려던 것이었는데, 한번 비정규직이 되니 계속 이 모양이 되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지난 8월 일곱 번째 직장에서 해고된 이씨는 더 이상 직장을 구하는 일이 고통스러워, 이제는 간간이 들어오는 광고 전단 등의 작업을 하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그는 "지금껏 200만원 이상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고 매번 100만원 남짓에 불과했다"며 "많이 늦었지만 결혼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고 했다.

이씨와 같은 비정규직이 만연한 우리나라 노동시장 구조 때문에 우리나라 근로자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소속국 가운데 노동시간이 가장 긴 편이지만,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기간은 가장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10명 중 4명, 입사 1년 미만

국회예산정책처는 27일 '고령화가 근속 및 연공임금체계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2010년 기준 한국 근로자의 평균 근속 기간은 5년으로 OECD 소속국 가운데 가장 낮았고 주요국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고 밝혔다. 프랑스(11.7년), 독일(11.2년), 네덜란드(10.6년) 등은 평균 근속 기간이 10년이 넘었다. 이 조사는 현재 근무 중인 직장의 근속 기간을 평균해서 구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근로자 가운데 1년 미만 초단기 근속자의 비중이 37.1%로 일본(7.3%)의 5배였고 덴마크(20.3%), 미국(19%) 등보다 크게 높았다. 반면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 비중은 17.4%로 이탈리아(45.3%), 일본(44.5%), 프랑스(44.1%), 독일(42.7%)보다 크게 낮았다.

한 직장으로 따지면 우리는 10명 가운데 4명이 들어온 지 1년도 안 된 사람인 반면, 일본은 이런 초단기 근무자가 채 한 명이 안 된다는 얘기다.

근로자들의 평균 근속 연수 추이를 보면 한국은 2008년과 2010년 사이 4.9년→5.0년으로 거의 변화가 없다. 반면 외국은 같은 기간 영국은 8.3년→8.7년, 독일은 10.8년→11.2년 등으로 평균 근속 연수가 더욱 늘어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장인성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인구 고령화로 근로자 평균 연령이 올라가면서 평균 근속 기간도 함께 늘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한국에선 이 같은 흐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구조조정이 원인

한국 근로자들의 평균 근속 기간이 짧은 것은 비정규직 근로자 고용이 급증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깊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는 581만명으로 1년 전보다 4만명 증가했다. 주로 2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는 비정규직들은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기 어렵다. 지난해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현 직장 평균 근속 기간은 27개월로, 정규직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잘못된 정부 정책도 한몫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정부는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비정규직법을 도입했다. 하지만 법 시행 이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율은 20.0%(2007년)에서 16.4%(2011년)로 오히려 떨어졌다. 기업들이 2년 단위로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새로 뽑거나, 법 적용을 받지 않는 사내 하도급 고용을 늘리는 식으로 인사 정책을 바꿨기 때문이다.

한 중견기업 인사 담당자는 "단순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서무 직원의 경우 최장 4년만 고용하고 있는데, 처음 2년은 외부 용역업체 소속으로 파견받아 근무시키고, 다음 2년은 계약직으로 신분을 전환시켜 일하게 하면서 규정을 피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규직만 따진다고 해도 근속 기간이 선진국에 비해 길지 않다. 첫째 이유는 갈수록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이직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8월 기준 이직자는 총 52만명으로, 1년 전보다는 다소 줄었지만 전체적인 추세는 계속 증가세에 있다. 최근 취업포털 커리어의 직장인 1373명 설문조사에 따르면 70%가 이직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여기에 기업들이 임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오래 근무한 정규직을 희망퇴직 등 형태로 정리하고, 그 자리를 상대적으로 젊은 직원으로 대체하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발적 이직은 고용시장의 윤활유 역할을 하지만 비자발적 이직은 고통을 수반한다"며 "정규직의 임금을 조정해 좀 더 많은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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