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돼지와 공짜

2012. 9. 25.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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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GS 경제위기 부른 공짜 복지
대책없는 선심 나라 망하는 길

[세계일보]"목욕탕에 사람이 많습니까?" 어느 날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목욕탕에서 나오다 받은 이 물음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답했다. 목욕탕에 들어간 질문자는 사람들이 꽉 차있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와 화를 냈다. 디오게네스는 웃으며 말했다. "돼지새끼는 많던데 사람은 없더군." '무소유 종결자'답다.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고 했다. 그는 질적(質的) 공리주의(功利主義·utilitarianism)를 제시하면서 사람들이 고급스러운 쾌락을 추구할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이 명언을 남겼다.

박찬준 온라인뉴스부장

돼지는 재물이나 복으로 상징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인간에 빗대어지곤 한다. 근래에는 일부 유럽국가를 돼지(pig)라는 의미가 내포된 신조어로 비꼰다. 바로 'PIGS'다. 포르투갈(Portugal), 이탈리아(Italy), 그리스(Greece), 스페인(Spain)의 첫 글자를 땄다. '피그스'는 심각한 재정적자, 과도한 공공부채, 높은 실업률을 겪고 있다. 2008년 7월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실린 '왜 돼지는 날지 못하나(Why PIGS can't fly)'라는 기사에서 이 신조어가 처음 등장했다. 'PIGS'에 아일랜드(Ireland)가 포함된 'PIIGS', 영국(Great Britain)이 추가된 'PIIGGS'라는 용어도 만들어졌다.

피그스의 경제위기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복지 포퓰리즘'이 꼽힌다. 우리나라도 '선거의 계절'을 맞아 정치권에서 복지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 조세연구원은 저출산·고령화 추세만 반영하고 현재 복지제도와 정책이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가 2050년 128.2%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포르투갈의 정부부채 106%, 아일랜드 109.35%, 이탈리아 121.1%보다 높다. 나아가 여야의 4·11총선 공약에 따른 복지제도 확대, 공공부문 재정위험 일부 현실화, 남북통일 등이 동시에 일어날 때에는 2050년 최대 165%까지 치솟을 것으로 분석했다. 최악의 재정위기에 봉착한 그리스(165.5%)와 맞먹는 수준이다.

복지정책은 막대한 재원이 수반돼야 한다. 정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도 그 부담이 돌아간다. 자칫 증세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최저생활수준(national minimum)과 관련한 복지사업이라도 예산과 효과를 고려하고, 국민적 합의나 정치권·정부·지자체의 협의를 거쳐 추진하는 게 마땅하다. '0∼2세 전면 무상보육 폐기'는 이를 간과한 결과다. 지난해 말 정치권은 0∼2세 보육료 지원대상을 소득 하위 70%에서 모든 계층으로 확대했다. 정부는 털컥 이를 수용했다. 지자체들은 느닷없는 '무상보육 비용의 50% 부담'에 반발했다. 당시 올해 예산을 이미 짠 상태여서 돈을 마련할 방도가 없어서였다. 급기야 예산부족으로 무상보육이 중단위기에 처하는 등 문제점이 터져나왔다.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지방보육료 부족분 6639억원 중 66%는 중앙정부가, 34%는 지자체가 분담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서울시와 경기도는 전액 지원을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결국 정부는 보육지원체계 개편 카드를 꺼냈다. 후유증이 예상된다. 헌데 오락가락 보육정책의 원인제공자인 정치권의 행태는 한심하다. 여야는 '보육후퇴' '책임회피'라며 수용불가를 천명했다. 연말 국회에서 내년 무상보육 예산을 통과시키겠다는 강경 의지도 내비쳤다. 12·19대선을 앞두고 선심 쓰는 데만 혈안이 된 무책임한 모습이다. 정치권이 표를 구하고자 명확한 재원마련 방안 없이 장밋빛 공약으로 내놓은 복지정책은 당장은 좋아보일 테지만 국민의 주머니를 털거나 나라의 곳간을 거덜낼 수밖에 없다. 무분별한 '무상복지 시리즈'는 '공짜 양잿물'과 같다. 양잿물을 공짜라고 마구 마셨다가는 건강을 잃는다. 우리나라도 '퍼주기식 복지', '과잉복지'에 취하면 '유럽의 돼지'처럼 날지 못해 경기침체의 늪으로 추락할 수 있다. 18대 대통령을 선택할 때 곱씹어볼 대목이다.

박찬준 온라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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