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시인의 인문학 산책] <62> 가슴 뛰는 삶을 살라

2012. 9. 9.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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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은 벌써 독서로 솟구치는 기쁨을 예약한다

[세계일보]아침저녁으론 긴 소매옷을 찾아 입을 만큼 날이 차가워졌다. 햇빛으로 직조한 불꽃 여름은 저 멀리 가버렸다. 연못 주변으로 여름내 풀들이 무섭게 자랐다. 풀들이 삼엄하게 막고 서 있으니 연못 쪽으로 발을 뗄 수가 없다. 며칠째 벼르다가 오늘 아침에 낫을 들고 한나절 내내 풀들을 쳐내 겨우 연못으로 가는 길을 터놓는다. 연못에는 푸른 부들이 물 위로 솟아 있고, 수면 가득 채운 수련과 하얀 수련꽃 세 송이가 올라와 있다. 수련꽃에 잠깐 눈을 주고 있는 사이 갑자기 풀숲에 있던 고라니가 튀어 달아난다. 크기로 봐서 새끼 고라니다.

풀을 쳐내며 여름은 끝났다, 라고 나도 모르게 속으로 외치니, 돌연 가슴에 알 수 없는 희망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한결 또렷해진 가을의 예감 속에서 가슴이 뛰는 이유는 서재의 책상 위에 쌓인 책들로 인해 내 지고한 쾌락이 더 감미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밤은 벌써 읽어야 책들로 인한 솟구치는 기쁨들을 예약한다. 나는 책과 책에서 울려나오는 메아리들에 매혹된 자, 그 중단을 모르는 발아(發芽)에 중독된 사람이다. 내 자아는 책 속에서 날마다 새롭게 발아한다.

책을 읽을 때는 자아라는 비좁은 울타리를 넘어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 따라서 책읽기란 자신을 넘어서서 다른 세계로 가는 행위이다.세계일보 자료사진

시시포스는 신들을 기망한 죄로 가혹한 형벌을 받는다. 시시포스의 형벌은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올려놓으라는 것이다. 바위는 산꼭대기로 밀어올린 순간 다시 밑으로 굴러 내려간다. 시시포스는 다시 바위를 산꼭대기로 올려놓는다. 시시포스의 형벌은 그 무의미한 노동을 영원히 되풀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시포스의 형벌이 가혹한 것은 바위를 산꼭대기로 올려놓는 노동의 고단함보다는 그의 존재가 어떤 가치도 생산할 수 없는 노동의 무목적성에 갇힌 까닭이다. 사람은 의미를 향한 존재인데, 그에 반하여 의미를 낳을 수 없는 노동의 굴레에 갇힌다면, 그보다 더 큰 비극은 없을 것이다.

내가 그토록 책읽기에 매달렸던 것은 책이 나를 의미의 존재로 이끄는 의미로 충만한 세계였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는 "자연의 선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영혼을 바쳐서 창조한 여러 세계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라고 말한다. 책은 심오한 통찰로 이루어진 위대함과 무한한 사유와 창조의 능력으로 이끄는 촉매제다. 한편으로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얼마나 자주 샛길로 빠져 엉뚱한 곳에서 헤맸던가!

하나, 책을 읽다가 딴생각에 빠져 헤매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추론과 생각에서 비롯된 예측불허의 간접적 에두름"(매리언 울프, '책 읽는 뇌' )이다. 그 경험은 주어진 정보를 넘어서서 독자적 사유와 무한한 형태의 창조적 진화에 이르게 한다. 이게 책의 생성적 장점이다. 하지만 나는 즐겁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책읽기는 나날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혁명'의 촉매제다.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로렌스, '제대로 된 혁명')

나는 날마다 웃고 즐기며 책읽기에 빠져든다. 책읽기에서 미처 예기치 못한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낸다. 책읽기는 내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청정무구한 취향이자 지고한 쾌락이다. 로렌스의 시는 우리에게 이렇게 이른다.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는가를 보는 짓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책읽기는 뇌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도, 전문적 지식을 늘이기 위해서도 아니라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다. 그 결단만이 그저 그런 삶, 신비함도 오묘함도 없는 나날들, 어떤 섬광도 품지 못한 채 그저 범속함의 권태에 찌든 채 흘러가는 자아를 넘어서서 어둠을 뚫고 동트는 새벽으로 나아가게 한다.

책을 읽는 행위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프로세스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후천적인 학습과 훈련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책을 읽으려면 "주의와 기억 그리고 시각, 청각, 언어 프로세스"(매리언 울프, 앞의 책)를 작동하면서, '나'라는 존재 지평을 넘어가야 한다. 이때 넘어간다는 것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의 의식에서 비롯된 전혀 다른 관점을 시도해 보고 거기에 동화되어 결국 이입(移入)하는 프로세스"(매리언 울프, 앞의 책)를 가리킨다. 책읽기는 인류가 인지신경의 발달 과정에서 이뤄낸 기적적인 발명이다. 문자를 발명하고 책을 읽게 되면서 인류의 뇌는 크게 바뀌었다. 책을 읽는 것은 "뇌 안에 이미 생리적, 인지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매리언 울프, 앞의 책)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책을 읽는 행위는 어휘들을 읽는 것 이상이 요구된다.

책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주의, 지각, 개념, 언어 및 운동의 프로세스로 이루어진" 인지 수준(cognitive level)에서 "언어 정보와 개념 정보를 모두 연결한 뒤 당신은 각자의 배경 지식과 관여(engagement)에 기반을 두고 나름대로 고유한 추론과 가설을 생성"(매리언 울프, 앞의 책)해야만 한다. 뇌의 뉴런 회로들을 책 읽기에 필요한 수준으로 최적화되어야만 하는데, 이는 책 읽는 뇌로 포맷되어야 함을 뜻한다. "텍스트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독서가가 추론하는 경우, 좌뇌와 우뇌의 전두 시스템이 브로카 영역 주변을 활성화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사용된 단어가 의미론적, 통사론적으로 복잡할 경우 이 전두 영역은 측두엽의 베르니카 영역, 두정 영역의 일부분, 우측 소뇌와도 상호작용을 한다."(매리언 울프, 앞의 책) 그러지 않고는 한쪽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책을 읽을 때 자아라는 비좁은 울타리를 넘어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 책읽기란 자신을 넘어서서 다른 세계로 가는 행위이다. 책을 읽는 행위는 혁신적인 사유를 촉발하고 존재의 가능성을 확장하며 우리를 새로운 어떤 세계로 데려가는 일이다. 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나아간다.

책이 없었다면 나는 하품하는 개나 뒷발질하는 당나귀나 나뭇가지 위에서 뜻 없이 우는 까치와 다를 바 없는 비천한 존재였을 것이다.

동물들이 열등한 것은 스스로 '운명의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은 사람에게 스스로 운명의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19세 때, 나는 삶의 바른 궤도에서 벗어나 시립도서관과 음악감상실이나 들락거리는 백수 청년이었다. 그때 만난 책 한 권이 내게 충만한 시간을 주고, 운명의 중력을 뚫고 더 높은 존재로 도약할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그 책은 시와 서사와 철학이 한데 어우러진 걸작인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니체는 프로이트나 마르크스 등과 함께 현대 철학에 큰 그림자를 드리운 철학자다. 28세 때 첫 번째로 쓴 책 '비극의 탄생'을 펴냈는데, 아폴론적인 가치와 디오니소스적인 가치의 구분을 통해 유럽 문명 전반을 꿰뚫는 통찰을 내놓는다. 니체는 이성에 바탕을 둔 서양의 모든 가치체계를 뒤집고 해체한 뒤, 그 자리에 니힐리즘·가치전도·초인·영원회귀·권력에의 의지 등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형이상학의 성채를 세운다. 그는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에서 뾰족하게 머리를 내민 섭돌이고, 그의 철학은 앞선 것을 가차없이 내리치는 해머다.

희망보다 절망이 항상 넘쳤던 19세 때 나는 '차라투스트라'를 만나 큰 힘을 얻었다. '차라투스트라'는 내가 되고자 하는 궁극의 목표,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을 비추는 별이었다. "가장 긴 사닥다리를 가지고 있는 혼, 가장 깊숙한 곳까지 내려갈 수 있는 혼―자기 자신 속에서 가장 멀리 달리고 방황하며 방랑할 수 있는 혼, 기꺼이 우연 속으로 뛰어드는 가장 필연적인 혼, 생성 속으로 뛰어드는 존재의 혼, '소유'하고 있으나 소망과 의지를 '원하는' 혼, 자기 자신에게서 탈출하여 가장 넓은 원을 그리며 자기 자신을 추구하는 혼, 가장 달콤하게 어리석음을 타이르는 현명한 혼,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혼, 그 혼 속에는 모든 것은 자신의 격류와 역류, 밀물과 썰물을 가지고 있다."(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는 '긍정이라는 축복' 속에서 웃고 춤춘다. 19세 때, 나의 미래는 암울했다. 그때 뼈가 휘는 듯한 고통과 절망 속에서 나는 차라투스트라를 보고 비로소 웃었다. 장차 글 쓰는 것을 생업으로 삼으려는 젊은이에게 "피로 써라. 피는 정신이다. 피로 쓴 것만이 진실하다"라는, 절구도 뼛속에 새겨졌다. 피란 무엇일까? 피는 타고난 기질이고, 본능이고, 정신이다.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지금도 나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다.

어떤 책을 읽었을 경우, 우리는 그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 존재의 생물학적·인지적 형질이 미묘하게 바뀌어버려 우리는 더 이상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책과 그것을 읽는 사람은 역동적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텍스트와 인생의 경험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은 양방향적이다. 우리는 인생 경험을 실어 텍스트를 이해하고 텍스트는 삶의 경험을 뒤바꿔 놓는다."(매리언 울프, 앞의 책) 새로운 책을 읽을 때마다 뇌의 역량이 커지고 생각과 감정은 성장한다.

아울러 책읽기는 치유와 정화의 힘을 준다.

"오랜 기간의 혹독한 참회,/ 삶의 과오에 대한 각성, 그리고/ 오류의 끝없는 반복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로렌스, '치유'). 우울한가? 따분한가? 화가 나는가? 무력하다고 느껴지는가? 그때마다 나는 책을 읽는다. 나는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하기 위해 책으로 달려간다. 책읽기는 인생의 슬픈 터널을 지나서 의식의 고양(高揚)이라는 신세계로 가는 길이다. 내가 읽은 모든 책들이 내 안에 살아서 나를 의미의 존재로 거듭나게 한다. 이 가을 아침 가슴이 뛰는 삶을 살기 위해 나는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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