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던 6세 안방까지 따라가..국민 판결은

최준호 입력 2012. 9. 5. 01:57 수정 2012. 9. 6.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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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법감정은 '파렴치범 중형' .. 판사들과 시각차국민참여재판 5년, 국민 법감정 해부 <상> 성범죄엔 엄격, 살인·강도엔 신중배심원단, 6세 성추행한 만취 남성에 6년 최고형말다툼 끝에 아내 살해한 남편에겐 2년형 평결

지난 7월 27일 성범죄(강간상해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서울동부지법 1호 법정.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9명(사진 왼쪽)이 피고인이 들어오기 전에 윤종구 부장판사의 재판 진행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박종근 기자]

부산에 사는 권모(57)씨는 2008년 9월 A양(당시 6세)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권씨는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가던 A양을 뒤쫓다 집 안방까지 들어가 속옷을 벗기고 추행했다. 권씨는 술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대법원 양형 기준상 권고형은 징역 5~6년. 배심원은 다수가 6년형을 택했다. 반면 재판부는 5년형을 선고했다. 권씨는 형이 지나치게 무겁다고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권씨가 범죄 전력이 없고 건강 상태가 나쁜 점 등을 감안해 3년으로 형을 줄여줬다.

 지난 5년간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했던 배심원들은 권씨 사례처럼 성범죄에 대해 법관보다 평균적으로 더 높은 양형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전남 나주에서 7세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고종석 사건' 등을 계기로 다시 불거진 국민의 '성범죄 엄벌' 법감정이 책임감을 갖고 실제 재판에 참여해 온 배심원을 통해서도 확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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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렴치한 성범죄엔 엄격=국민참여재판 판결문 546건을 분석한 결과 배심원들은 유독 성범죄에 대해서 엄격하게 죄를 물었다. 법관이 내리는 평균 형량보다 13%(8개월) 이상 높은 양형 의견을 냈다. 이는 살인(법관 96.5개월, 배심원 94.8개월), 강도(법관 33개월, 배심원 34.5개월) 등 다른 강력범죄에선 법관과 배심원 양형이 1~2개월 내로 근접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경제적 궁핍, 불우한 성장사 등 범행 동기를 어느 정도 참작해 줄 수 있는 다른 강력범죄와 달리 인면수심의 파렴치한 성범죄에 대해서는 국민은 '무관용' 양형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경기대 이수정(범죄심리학) 교수는 "기존의 양형 관행에서 벗어나기 힘든 법관과는 달리 재판을 처음 해보는 배심원들은 성범죄를 엄벌해야 한다는 국민정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살인·강도 사건에선 신중=배심원들은 성범죄에서는 엄격한 양형을 선택했지만 살인·강도 등 다른 강력범죄를 포함한 전체 분석에선 법관보다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2010년 아내를 죽인 정모(58)씨 사건이 한 예다. 그는 여자에게 온 문자메시지 문제로 2년간 아내와 다퉈오던 끝에 흥분 상태에서 아내를 칼로 찔렀다. 재판부는 징역 6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이 사건 배심원들은 다수가 2년형을 선택했다. 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벌어진 점, 범행 직후 112에 신고하고 지혈하기 위해 노력한 점, 자녀가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의 요소에 법관보다 더 많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씨 사례와는 달리 배심원이 법관보다 더 센 형량을 제시한 사건은 전체 사건 중 10% 남짓에 불과했다. 법관과 양형이 같거나 낮았던 사건이 훨씬 많았다. 살인·강도 사건에서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졌다. 강도 사건에서 배심원이 법관보다 더 높은 형을 선택했던 경우는 7.2%였고, 살인 사건도 9.9%에 불과했다.

 18회의 참여재판에서 국선변호를 맡았던 송종선 변호사는 "사건과 직접 관계가 없을 땐 인터넷상에 떠도는 정보만 가지고 무조건 엄벌을 주장하지만 막상 배심원이 되면 사건 관련 모든 기록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신중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고 말했다.

 ◆양형 강화 범죄별로 달라야=전문가들은 이 같은 실질적 국민 법감정을 감안해 강력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범죄에 대해선 강화하는 현 추세가 맞지만 다른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일시적 여론에 이끌려 무턱대고 형량을 높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실제로 2009년 8세 여아를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 이후 강력범죄에 대한 양형은 계속 강화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2010년 형법을 개정, 유기징역 상한을 15년에서 30년으로 올렸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지난해 8~11년이었던 보통 동기 살인의 기본형을 9~13년으로 높이고, 8~11년이었던 강도치사의 형도 9~13년으로 상향 조정했다. 이 교수는 "정치인과 사법부가 사회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실제 양형을 강화할 때는 국민 법감정을 정확히 파악해 죄명별로 보다 정교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탐사팀=최준호·고성표·박민제 기자, 오단비 인턴기자(연세대 국문학과), 김보경 정보검색사 < deep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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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고성표.박민제.오단비.김보경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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