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 성인 놀이터
멀고 먼 옛날…. 서울 홍대 앞 동교동과 서교동이 주택가였던 때가 있었다는 말이 있다. 그 전설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는 여전히 건재한 '홍대 앞 놀이터'인데, 주택가가 모두 사라진 지금 유적처럼 남아 있는 이곳을 혹여 아시는지 모르겠다.
미리 밝혀 두지만 홍대 앞 놀이터는 술집 이름이나 카페 이름이 아니다. 진짜 놀이터다. 여전히 '씽씽한' 그네와 건강한 미끄럼틀이 있는 곳, 정글짐만 사라졌을 뿐 시소도 남아 있는 그 놀이터를 일컫는 것이다.
아직도 간혹 젊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잠시 들르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 가끔은 어른들도 그네를 타고 시간을 흔들며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하고 미끄럼틀에 엉덩이가 낀 어른들이 난처해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낮 동안의 풍경이다.
이곳이 '성인 놀이터'의 진면목을 보이는 것은 역시나 해가 지고 나서부터이다. 해가 지면 놀이터 초입부터 놀이터를 지나 주차장 골목으로 이어지는 거리 전체가 흥청거리기 시작한다. 낮 동안 수그리고 있던 노점들이 몸을 풀고 불을 밝히면 어디선가 등장한 호객꾼들과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골목 곳곳에 자리를 잡고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나누어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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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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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조명을 거리로 가지고 나온 클럽들은 저마다 요란뻑적지근하다. 오히려 조용한 입구가 더 눈에 들어올 지경이다. 그리고 요란의 절정은 바로 놀이터가 된다.
그 시간쯤이 되면 약속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 이미 만났으나 주머니가 가난한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모든 곳에 걸터앉는다. 미끄럼틀 위에도 이미 맥주 캔과 소주병을 든 사람들이 올라앉아 있고, 그네는 앞뒤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복작거린다. 한쪽에서는 가난한 주머니를 가진 사람들보다 조금 더 가난한 인디 뮤지션이 수준 높으나 아직은 인정받지 못한 음악을 연주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귀신같이, 득달같이 달려드는 이런저런 기업들의 프로모션 행사도 열린다. 자, 이쯤 되면 이곳이 왜 성인 놀이터인지 알 수 있으시겠죠들.
이제는 사라져버린 아티스트들
그 남자는 새로 옮긴 작업실이 근방이라 자주 놀이터에 간다. 가서 그 사람들과 모습들을 풍경처럼 보기를 좋아한다. 언제부턴가는 외국인도 무리를 지어 이곳을 방문하고, 그래서인지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이곳이야말로 글로벌 플레이스라 할 만하다. 언젠가 누군가 홍대 앞이 홍등포가 되었다고 한탄하던데, 홍등포라기보다는 홍태원이 된 듯하다.
하지만 즐겁고 재미진 이곳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자면, 그 남자는 다소 애잔해진다. 이곳에 '꽐라'가 된 청춘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모습보다는 영 투박하나마 사뭇 진지한 인디 뮤지션들이 노래하고, 뭔가 엉성한 마술을 하는 고등학생들과 튜닝도 안 된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며 페트병 맥주를 마시던 우크라이나 아저씨가 있을 때가 그 남자는 그리운 것이다.
두 집 걸러 한 집이던 클럽들이 이제는 다닥다닥 붙어버린 것 또한 좋으면서 싫다. 호객꾼이 늘어나면서 그 사람들과 부딪치면 빠져나갈 수 없는 골목길도 상당히 불편해져 버렸다. 뭔가 창의적인, 새로운, 혹은 다른, 모자라거나 넘치는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것은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다.
뭐 그렇다. 홍대 앞이 뉴욕의 소호 같아서 실험적인 아티스트들이 공간의 정취를 만들어냈으나 예의 기어들어온 상업자본의 번들거리는 욕심에 자기 자리를 내어주고 다른 곳으로 쫓겨났다는, 뭐 그런 뻔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자꾸만 오르는 임대료 때문에 더 더운 여름날, 놀이터 앞에 앉아 신나게 성인 놀이터를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이제는 이 놀이터를 찾지 않는, 그 많던, 제멋에 겨운 아티스트들을 보고 싶은 것이다.
괜스레, 괜스레.
탁현민(공연 기획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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