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 성인 놀이터

탁현민 2012. 8. 2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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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옛날…. 서울 홍대 앞 동교동과 서교동이 주택가였던 때가 있었다는 말이 있다. 그 전설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는 여전히 건재한 '홍대 앞 놀이터'인데, 주택가가 모두 사라진 지금 유적처럼 남아 있는 이곳을 혹여 아시는지 모르겠다.

미리 밝혀 두지만 홍대 앞 놀이터는 술집 이름이나 카페 이름이 아니다. 진짜 놀이터다. 여전히 '씽씽한' 그네와 건강한 미끄럼틀이 있는 곳, 정글짐만 사라졌을 뿐 시소도 남아 있는 그 놀이터를 일컫는 것이다.

아직도 간혹 젊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잠시 들르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 가끔은 어른들도 그네를 타고 시간을 흔들며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하고 미끄럼틀에 엉덩이가 낀 어른들이 난처해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낮 동안의 풍경이다.

이곳이 '성인 놀이터'의 진면목을 보이는 것은 역시나 해가 지고 나서부터이다. 해가 지면 놀이터 초입부터 놀이터를 지나 주차장 골목으로 이어지는 거리 전체가 흥청거리기 시작한다. 낮 동안 수그리고 있던 노점들이 몸을 풀고 불을 밝히면 어디선가 등장한 호객꾼들과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골목 곳곳에 자리를 잡고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나누어주기 시작한다.

ⓒ이우일 그림

아예 조명을 거리로 가지고 나온 클럽들은 저마다 요란뻑적지근하다. 오히려 조용한 입구가 더 눈에 들어올 지경이다. 그리고 요란의 절정은 바로 놀이터가 된다.

그 시간쯤이 되면 약속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 이미 만났으나 주머니가 가난한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모든 곳에 걸터앉는다. 미끄럼틀 위에도 이미 맥주 캔과 소주병을 든 사람들이 올라앉아 있고, 그네는 앞뒤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복작거린다. 한쪽에서는 가난한 주머니를 가진 사람들보다 조금 더 가난한 인디 뮤지션이 수준 높으나 아직은 인정받지 못한 음악을 연주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귀신같이, 득달같이 달려드는 이런저런 기업들의 프로모션 행사도 열린다. 자, 이쯤 되면 이곳이 왜 성인 놀이터인지 알 수 있으시겠죠들.

이제는 사라져버린 아티스트들

그 남자는 새로 옮긴 작업실이 근방이라 자주 놀이터에 간다. 가서 그 사람들과 모습들을 풍경처럼 보기를 좋아한다. 언제부턴가는 외국인도 무리를 지어 이곳을 방문하고, 그래서인지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이곳이야말로 글로벌 플레이스라 할 만하다. 언젠가 누군가 홍대 앞이 홍등포가 되었다고 한탄하던데, 홍등포라기보다는 홍태원이 된 듯하다.

하지만 즐겁고 재미진 이곳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자면, 그 남자는 다소 애잔해진다. 이곳에 '꽐라'가 된 청춘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모습보다는 영 투박하나마 사뭇 진지한 인디 뮤지션들이 노래하고, 뭔가 엉성한 마술을 하는 고등학생들과 튜닝도 안 된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며 페트병 맥주를 마시던 우크라이나 아저씨가 있을 때가 그 남자는 그리운 것이다.

두 집 걸러 한 집이던 클럽들이 이제는 다닥다닥 붙어버린 것 또한 좋으면서 싫다. 호객꾼이 늘어나면서 그 사람들과 부딪치면 빠져나갈 수 없는 골목길도 상당히 불편해져 버렸다. 뭔가 창의적인, 새로운, 혹은 다른, 모자라거나 넘치는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것은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다.

뭐 그렇다. 홍대 앞이 뉴욕의 소호 같아서 실험적인 아티스트들이 공간의 정취를 만들어냈으나 예의 기어들어온 상업자본의 번들거리는 욕심에 자기 자리를 내어주고 다른 곳으로 쫓겨났다는, 뭐 그런 뻔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자꾸만 오르는 임대료 때문에 더 더운 여름날, 놀이터 앞에 앉아 신나게 성인 놀이터를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이제는 이 놀이터를 찾지 않는, 그 많던, 제멋에 겨운 아티스트들을 보고 싶은 것이다.

괜스레, 괜스레.

탁현민(공연 기획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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