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잡하다. 한국 여자 배구를 4강으로 이끈 주역 김연경(24)의 마음이다. 한국 선수 최초로 올림픽 배구서 MVP를 받은 김연경이지만 기뻐할 틈이 없다. 자신의 해외 이적에 대한 권한을 쥐고 있는 흥국생명이 허락하지 않고 있기 때문. 흥국생명은 김연경을 임의탈퇴 신분으로 처리, 해외 진출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김연경은 2005년 흥국생명에 입단한 후 한국에서 4시즌, 해외에서 임대 신분으로 3시즌을 뛰었다. 2009~2010·2010~2011 두 시즌을 일본 JT 마블러스, 2011~2012 시즌을 터키 페네르바체의 유니폼을 입은 것. 이후 김연경은 에이전트를 선임, 페네르바체와 새 계약을 체결하며 본격적인 유럽 정복에 뛰어들려 했다.
하지만 흥국생명이 제지하고 나섰다. 김연경은 아직 자신들의 소속이라는 것. 프로배구연맹 규정에 따르면 선수는 입단 후 6년 후부터 자유계약(FA)신분이 된다. 이에 김연경은 입단하고 7시즌을 보낸 만큼 문제가 없다고 판단, 에이전트를 선임해 해외 진출을 타진했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외국 팀 임대 기간은 FA 신분이 되는 6년에 포함되서는 안 된다고 주장, 2시즌을 한국에서 보낸 뒤 해외로 이적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김연경과 흥국생명의 의견은 좀처럼 좁혀질 줄을 모르고 있다. 흥국생명에서는 김연경이 에이전트 계약을 취소하고 직접 해외 이적을 시도한다면 1년 단위로 임대계약을 승인하겠다고 하지만, 김연경은 안정적인 이적을 위해 다년 계약을 원하고 있다. 입장 차가 완연하다.
이를 지켜 보는 배구계의 시선은 어떨까. 한 관계자는 "올림픽서 4강에 올랐다. 누가 봐도 김연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원래 김연경의 기량이 뛰어나기는 했지만 일본과 터키를 거치면서 더욱 월등해졌다. 4위 팀에 MVP가 주어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번을 계기로 배구 선수들의 해외 이적이 좀 더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해외 경험이 많아지는 만큼 다른 선수들의 기량이 성장한다면 올림픽에서 성적이 점점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김연경의 해외 진출을 지지했다.
반대 의견도 확실했다. 다른 관계자는 "김연경이 해외서 기량을 올렸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그 사실이 입증됐다. 하지만 규정은 준수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규정은 융통성이 적용되서는 안 된다. 어떤 이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김연경이 해외 진출을 하기 위해서는 흥국생명과 원만한 협의가 필수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김연경이 해외로 나가기 위해서는 흥국생명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해당 FA 규정이 한국프로배구연맹에서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임대 기간을 흥국생명 소속으로 보지 않는다는 프로배구연맹의 유권해석도 애매하다. 해외 이적이 빈번한 다른 종목(특히 축구)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 국제적인 규정이 강력한 축구의 경우 임대 기간은 원 소속팀과 계약 기간에 포함된다. 하지만 국제배구연맹(FIVB)에서는 해당 지역의 규정, 즉 로컬룰을 중요시 한다. 이때문에 김연경이 흥국생명과 다툴 경우 불리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연경도 최후의 카드는 있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를 이용하는 것. 김연경이 CAS에 이번 이적 사건을 제소할 경우 흥국생명의 주장보다는 김연경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CAS는 주로 축구에서 이적 분쟁을 다루는 등 기준이 축구에 가깝고, 유권해석보다는 원칙을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CAS의 판결이 한국에 적용되는 뉴욕협약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만큼 법적 구속력도 갖고 있어 김연경에게는 최고의 카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CAS는 김연경에게 최고이기는 하지만 최선의 카드는 아니다. 김연경은 당장 9월부터 시작하는 터키 리그에 합류해야 한다. 그러나 CAS에 제소할 경우 적어도 1년에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당장 결론이 나야 하는 김연경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은 아닌 것.
결국 김연경으로서는 흥국생명과 협의를 통해 터키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흥국생명도 김연경을 붙잡을 시간이 길어봤자 1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 거슬릴 수밖에 없다. 물론 흥국생명이 독한 마음을 먹고 김연경과 협의를 거부한다면 김연경은 1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 경우 흥국생명은 '100년에 한 번 나오는 선수'라는 극찬을 받고 있는 김연경의 선수 생명을 망쳤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결국 흥국생명도 김연경과 원만한 합의로 해외로 보내주어야 보기 좋을 수밖에 없다.
OSEN 허종호기자 sports_narcoti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