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View] 끝내 꼬리 잡힌 97세 나치 전범.. 집요한 추적자들

강지원기자 입력 2012. 7. 27. 21:05 수정 2012. 7. 27.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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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죄가 없어. 여기서 당장 나가시오."

목소리는 단호했고, 눈빛은 번뜩였다. 이달 초 영국 일간 더선 취재진이 헝가리 경찰 출신 나치 전범인 라슬로 사타리(97)의 은신처를 최초 보도했다. 부다페스트 주택가의 두 칸짜리 아파트에서 나온 사타리는 신경질적으로 취재진을 내쫓았다. 현관 문패에는 스미스라는 가명을 썼고, 우편함에는 스미스 사타리로 표기됐다. 신문은 그가 자신의 과거를 모르는 가족과 함께 평화롭고 안락한 노년을 즐기는 듯했다고 전했다. 그는 편안한 차림으로 쇼핑했고, 공공장소에서 친구들과 어울렸다. 이웃들은 그를 '파파 사타리'라고 불렀다.

▦ 죗값 치르는 나치전범

이스라엘 나치 전범 수배 1위, 유대인 1만5,700명을 아우슈비츠로 강제 이송한 잔악 무도한 헝가리 경찰. 18일 그가 제보로 15년 만에 붙잡혔다. 사타리는 1948년 체코 법원 궐석재판에서 유대인 학살 가담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은 후 캐나다 등으로 도망쳤다. 95년 캐나다 경찰이 미술상으로 활동하던 그를 발각했지만 체포에는 실패했다. 2차대전 중 슬로바키아 코시체의 경찰 고위 간부였던 그는 유대인 수용소 이송, 불법 고문 등 갖가지 만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증언에 따르면 그는 유대인 격리 거주지였던 게토에서 유대인을 채찍으로 때리고, 맨손으로 언 땅을 파게 했다. 도망가는 유대인을 현장에서 총으로 쏴 죽인 혐의도 받고 있다.

공소시효가 없는 나치 전범들은 신분이 확인되면 사형이나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 미국ㆍ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등이 추정하는 나치 전범은 15만~20만명. 종전 후 미국 등 연합국에 의해 기소돼 처벌 받은 전범은 3만5,000명으로 추정된다.

처벌받은 대표적인 나치 전범은 독일 나치 친위대 장교 출신으로 유대인 학살을 진두 지휘한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과 '리옹의 도살자' 클라우스 바르비(1913~1991), 3월 사망한 존 뎀얀유크(1921~2012), 최후의 나치 전범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클라스 카렐 파베르(1922~2012) 등이다.

▦ 나치 전범을 쫓는 추격자

종전 후 혼란을 틈타 나치 전범들은 피난민으로 가장해 미국 호주 캐나다 영국 등 각지로 흩어졌다. 연합국이 7만명의 나치 전범 리스트를 만들어 전범 추적에 나섰지만 각국 협력 부재, 증거 부족, 신원 미확인 등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현재까지 활발하게 나치 전범을 추적하는 단체로는 시몬비젠탈센터(SWC)와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있다. 나치 대학살의 생존 유대인인 시몬 비젠탈(1908~2005)이 나치 전범을 추적하기 위해 세운 SWC는 나치 전범에 관한 가장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해왔다. 이번 사타리 체포도 SWC가 내건 현상금이 큰 힘이 됐다. 모사드는 2차대전 중 나치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시키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후 첩보활동, 정치공작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정보기관이 됐다. 60년 아이히만을 잡아 성가를 높였다.

▦ 나치 전범 처벌에 대한 논란

나치 전범 처벌을 놓고 논란도 있다. 반인륜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주장이 앞서지만 시대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 노인을 감옥에 가두는 데 대한 동정론도 있다.

SWC의 에프라임 주로프 소장은 "사타리는 잔인한 사디스트였다"며 "그의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피해자들이 살아 있으며, 그가 코시체 경찰 고위 간부였다는 기록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반면 라슬로 카르자이 헝가리 세게드대 역사학 교수는 "당시 코시체의 시장과 경찰서장이 징역형을 받은 만큼 사타리가 사형을 받는 것은 불합리할 수 있다"며 "44년 당시 사타리가 유대인 이송에 관여했지만, 정작 아우슈비츠로 가는지는 몰랐을 수도 있다"고 했다. 카르자이 교수는 "알았다 하더라도 그가 알고 있었는지 여부를 입증하는 게 이번 재판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타리의 변호인도 "그는 명령에 복종했을 뿐 유대인이 어디로 추방되는지 알지 못했다"며 "시대적 범죄에 연루됐지만, 역할은 제한적이었고 그 역시 역사의 희생자"라고 했다. 지난해 사망한 나치 전범 산도르 케피로(1914~2011)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SWC 나치 전범 주요 리스트에는 아직 7명이 남았다. 나치 친위대로 이탈리아 내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게르하르트 소머(93), 2차대전 당시 카틴숲 학살 사건에 연루된 블라디미르 카트리우크(91), 부다페스트 경찰 출신으로 유대인 색출에 가담한 카롤리 젠타이(91), 덴마크 출신의 SS요원인 소렌 캄(91), 우크라이나 출신의 나치 당원 이반 칼리온(92), 리투아니아 경찰 출신으로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알지만타스 다일리드(92), 우크라이나 출신의 나치당원으로 주로 통ㆍ번역 업무를 맡은 헬무트 오베르란데(88) 등이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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