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스님 흔적 찾기 위해 전국 헤매며 탁본·사진"

2012. 6. 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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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 대종사 연보' 펴낸 서우담 화엄학연구소장

[세계일보]"국립중앙도서관 책 분류 코너에 '연보(年譜)' 코너가 생겼습니다. 이제까지 연보란 분류가 없었는데 말이죠."

올해는 유불선(儒佛仙)에 통달한 근대 한국불교의 고승 탄허(呑虛·1913∼83) 스님이 탄생한 지 99년을 맞는 해이다. '탄허록' 출간에 이어 지난 13일에는 탄허 스님 열반 29주기를 맞아 곳곳에서 탄허 스님을 기리는 행사들이 열렸다. 탄생 100년을 맞는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행사가 예정돼 있다.

서우담 화엄학연구소장은 "탄허 스님의 화엄학을 정리하고 알리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서 32년째 외로이 '화엄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서우담(74) 소장에게 올해는 뜻 깊은 해이다. 6년여 작업 끝에 세상에 '탄허 대종사 연보(呑虛 大宗師 年譜·도서출판 교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전문학자도 아니고 재력가도 아닌 서 소장은 일생 일대의 소망을 담았다.

'연보'라 이름 붙이다 보니 도서관 분류 코너에 마땅하게 진열할 공간도 없었다.

생전의 탄허 스님.

"국내에서 책 이름에 '연보'라고 들어간 것은 '김대중 연보'와 '탄허 대종사 연보'뿐입니다. 그러니 국립중앙도서관에 분류 코너가 없는 것도 당연할 테죠."

686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연보로 탄허 스님의 일대기와 사상의 핵심을 정리했다. 그는 탄허 스님이 쓴 글이 있는 비석 등을 찾아 전국 23곳을 직접 다녔다. 비석 글씨 탁본도 손수 했고, 사진도 촬영했다.

연보를 낸 이유에 대해 서 소장은 "탄허 스님 열반 후에 제자들이 서로 다른 말을 하니 그냥 정리하고픈 맘에서"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4·19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수배자의 몸이 된 서 소장은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로 피신했다가 탄허 스님 문하에서 출가했다.

수배가 풀린 뒤 그는 환속(還俗)했다. 그리고 청을 받고 탄허 스님의 속가의 딸과 결혼했다. 16세에 결혼해 자식을 뒀던 탄허는 21세에 출가했다. 탄허 스님의 사위이자 큰 가르침을 받은 그로서는 탄허 스님 열반 후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습이 그리 유쾌할 리 없었다.

하지만 서 소장이 책을 통해 정리하고 기억 한켠에서 되살려낸 탄허 스님은 경전이나 교학이 취약한 한국불교에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승려가 되기 전 인물 탄허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탄허 스님이 주석(駐錫)하던 오대산 월정사 방산굴 전경.

"책이 없어 주역(周易) 공부하지 못하다가 처가에서 소를 팔아 주역을 사주자, 집에 돌아오지 않아 글방을 방문해 보니 흡사 미친 듯 춤을 추며 큰소리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처자불고(妻子不顧) 가사불고(家事不顧)를 하지 않겠느냐고 포기했다고 한다. 탄허 선사께서는 당시 주역을 손에 들고 500독(讀) 하셨다고 한다."(32∼33쪽, 만 17세의 일화 중에서)

그가 기억 속에서 되살린 천재학자 양주동(1903∼77) 박사와의 일화는 더 흥미롭다.

"탄허 스님은 나이가 10살이나 많은 양주동 박사를 처음 만났을 때 큰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7일간 장자 핵심 강의를 듣고 난 순간 오히려 양 박사가 탄허 스님을 향해 절을 올렸다고 합니다."

이때 양 박사는 "장자가 다시 살아 돌아와도 탄허만큼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극찬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특히 탄허 스님은 방대하고도 난해한 '화엄경' 80권을 처음으로 우리말로 풀었다. 손 원고지 하루 100장씩 10여년간 작업을 거쳐 23권 분량으로 펴낸 대작이 '신화엄경합론'이다. 서 소장은 '신화엄경합론'에 대해 "원효대사도 다 못했던 위업"이라고 했다.

사위인 그가 바라본 탄허 스님의 인간적 면모는 어땠을까.

"인간적으로 정(情)이 많은 분이었죠. 또 어머니를 절에서 모시고 살 정도로 효심이 지극했습니다. 학문은 뛰어났으나 금전과는 거리가 먼 분이었죠. 두뇌와 재력 둘 다는 허용하지 않은 것 같아요."

서 소장은 "올해에는 1982년 미국 뉴욕 홍법원 개원 10주년 탄허 스님 법회 VTR도 복원했다"면서 "앞으로 탄허 스님에 관한 기록과 화엄학을 정리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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