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터뷰] 조순형 신임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장

신정록 2012. 6. 3.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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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조선일보 '모태 독자'.. 요즘 기자정신, 예전만 못하다"

불법사찰 문건 보도 실망80%가 盧정부 때 작성된 건 재판 기록에 다 있는 내용… 확인도 않고 받아쓰기 먼저

조선일보와 나선친이 1930년대 경영 참여 방응모 선생 만나 인수 설득도… 사설·칼럼, 하루도 안 빼고 봐

언론 중심, 누가 뭐래도 신문학교 폭력·DMB·음주문화 등 조선일보 의제설정 능력 탁월… '檢약식기소 행태' 비판해달라

18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조순형 (77) 전 의원이 4일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장으로 새로운 출발을 한다.

조 신임 위원장은 지난 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수십년 넘게 매일 6개 신문의 사설 18개와 주요 칼럼을 모두 읽어 왔다고 했다. 그는 "온갖 복잡한 사안을 신문만큼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매체는 없다"며 "언론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신문"이라고 했다. 그는 "신문산업이 비록 지금은 힘들다고 해도 장래는 어둡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 언론계 전체가 기자정신이라든지 사실을 추구하는 열정과 집념이 과거보다 못하다는 느낌"이라며 정치권에서 그를 부르는 별명인 '미스터 쓴소리'답게 기자들의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다.

―30년 넘게 몸담았던 정계를 떠난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1981년 국회의원이 되면서 정치를 시작한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31년이나 되는 세월이 흘렀더라. 허전하고 서운하다. 30년 넘게 내가 한 게 뭐가 있었나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정치 원로로서 역할은 계속 해야 하지 않겠나.

"아니다. 난 완전히 떠난 거다. 나이도 있고. 내가 정치권에서 할 역할이 없는 것같다."

―정치권 후배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국회의원 생활을 하면서 보니까 국회의원인데도 국회법을 제대로 읽어 보지 않은 의원들이 정말 많더라. 기본적으로 헌법과 국회법 그리고 국회법 해설서를 꼭 봐야 한다. 여기에다 국회 선례집까지 이 4권은 국회의원의 필독서다. 나는 이 책들을 항상 옆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 읽었다."

―앞으로 조선일보 독자권익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포부를 밝혀달라.

"솔직히 조선일보에서 처음 나한테 독자권익보호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제안했을 때 '내가 과연 이를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사양했다. 그런데 다른 독자권익보호위원들의 명단을 보니까 사회 각 분야에서 워낙 명망 있고 훌륭한 분들을 모아놨더라. 그래서 내가 자신감을 갖고 위원장직을 수락한 것이다. 조선일보에 독자권익보호위원회가 생긴 지 벌써 11년째더라. 독자권익보호위의 축적된 경험들을 토대로 더 좋은 신문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겠다."

―조선일보와의 개인적 인연도 깊은 것으로 안다.

"선친(유석 조병옥)이 1930년대 초 경영이 어렵던 조선일보에 들어가 경영 정상화를 위해 애쓰셨고, 이때 전무 겸 영업국장을 맡아 못 마시는 술도 마셨다고 들었다. 나중에는 계초(啓礎·방응모)를 만나 경영난을 겪는 조선일보를 인수하도록 설득하셨다고 한다. 당시 신문사업은 돈을 버는 일이 아니었다. 민족 부흥과 독립에 대한 열정만으로 하던 사업이었다."

―그런 얘기를 언제 알았나.

"(1960년)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서전을 냈는데 거기에 그런 내용이 실려 있었다. 그래서 알게 됐다. 아버지는 조선일보에 대한 열정이 많았다. 나중에 조선일보가 펴낸 조선일보의 역사와 관련 책들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접하게 됐다."

―언제 조선일보를 처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가.

"조선일보를 읽는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언제부터 읽기 시작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태어나기 전 아버지 때부터 조선일보를 봤으니까."

―그럼 '모태(母胎) 독자'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웃으면서)모태 독자?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다."

―조선일보도 굴곡이 많았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이끈 원동력은 교육과 언론이었다. 그 언론의 중심에 조선일보가 있었다. 조선일보는 뭐니뭐니해도 민족지 아니냐. 우리나라 최고이자 최대 신문이다. 발행 부수로도 그렇고. 이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단계로 진입하는데, 조선일보가 할 일이 많다. 남북관계나 사회 통합문제에 있어서도 항상 중심에 서서 역할을 해줘야 한다."

―독자 입장에서 볼 때 조선일보의 장점은.

"논설이나 칼럼에 중독성이 있다. 사안에 대한 정리와 적절한 평가를 함께 내려준다. 기사를 보지 않고 사설만 봐도 정리가 된다. 사회 의제를 뽑아내는 의제 설정 능력도 탁월하다. 최근 학교 폭력에 대해 조선일보가 타신문과 달리 지속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런 일을 계속해야 한다. 또 운전 중 DMB 시청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조선일보는 다른 신문과 달리 1면부터 다뤘다. 요즘 연재하고 있는 음주문화 캠페인도 매우 좋다. 특히 술 먹은 상태에서 일어나는 범죄와 양형 기준문제까지 집중 조명한 것은 아주 잘한 것이다. 과거엔 술 취하면 그냥 심신 상실로 해석해 처벌이 미흡했다. 언론이 이런 문제점들을 짚어 주지 않으면 누구도 못한다. 또 경남 김해의 한 여학생이 서울에서 열린 학교 폭력 토론회를 찾아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눈물로 자기 동생이 당한 학교 폭력 실상을 알렸다는 최근의 1면 기사도 타신문과 확연히 비교되는 것이었다."

―평소 조선일보에서 부족하다고 느꼈던 점도 적지 않았을 텐데….

"조선일보 뿐만 아니라 언론 전체에 해당되는 문제인데, 기자정신이라든가 사실을 추구하는 집념과 열정이 근래 들어 부족해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4월 총선 직전에 터졌던 '불법 사찰 문건' 보도가 대표적이다. 한 이틀 동안 모든 언론이 사실에 대한 검증도 안 했다. 그런데 나중에 2600여건 중 80%가 노무현 정부 때 작성됐던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문건들은 재판 기록에 첨부돼 있던 것이다. 변호인을 통하면 합법적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아무 것도 안 했다. 또 최근 논란이 되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에 대한 자격 심사문제도 마찬가지다. 심사 대상이 되는지를 놓고 헌법적 쟁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언론들은 제명 요건인 3분의 2 이상이 충족될지 하는 정치적 현실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다. 헌법학자들 가운데도 심사 대상이 되는지 의견이 다르다. 과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필요하다면 법 개정을 해야 하는 건지 등을 언론이 다각도로 다뤄줘야 한다."

―조선일보가 꼭 다뤘으면 하는 이슈 하나를 지금 꼽는다면 무엇인가.

"검찰의 약식기소 행태다. 최근 교사를 학생들 앞에서 폭행한 학부모가 약식기소됐다는 기사를 봤다. 사법연수원 교재를 구해서 찾아보니까 약식기소는 간단한 범죄, 가령 오토바이 무면허 운전 등에 적용되는 거더라. 학부모의 교사 폭행이 어떻게 무면허 오토바이 운전하고 같나. 그런데도 검찰은 약식기소를 했다. 학부모와 교사 문제에 끼어드는 게 불편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비겁한 거다. 또 검찰 권한을 남용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교권이 제대로 설 수 있겠느냐. 내 생각엔 이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검찰이 약식기소를 어떤 사건에 적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약식기소하면 제일 생각나는 게 바로 국정감사나 청문회 출석을 불응하는 증인들 문제다. 국회가 불출석 증인들을 고발 조치하면 검찰에선 거의 대부분 예외 없이 약식기소를 하더라. 처벌이 이렇게 미흡하니까 증인들도 국회 출석 요구를 받아도 그냥 무시하고 나오지 않는 것 아니겠느냐."

―의원 재직시 의원회관 방에 가면 항상 무언가를 읽고 있더라. 신문 읽기가 의정 활동에 도움이 됐는가.

"국회의원은 모든 영역에 대해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한다. 나는 6개 신문을 보는데, 한 신문당 사설이 3개니까 하루에 사설을 18개 보는 셈이다. 여기에다 주요 칼럼들을 다 찾아서 읽는다. 주간지와 월간지에도 내가 모르는 분야 기사가 있으면 다 챙겨본다. 내가 개인적으로 국방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기사나 책을 찾아보는 것도 좋아한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솔직히 3·4선 의원 때부터는 당내 정치를 잘해야 출세하는데, 그런 면에서 나는 당내 정치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 것 같다."

―국회의원 중에 신문을 그렇게 열심히 읽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신문의 사설이나 칼럼은 글에 군더더기가 없다. 솔직히 난 신문을 읽을 때마다 논설위원들에 대해 감탄한다. 또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도 여기서 얻을 수 있다. 보통 중·고생들한테 '논술 시험 준비를 위해 많이 읽으라'는 말을 하는데, 정치인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찾아 읽는 게 일과가 됐고 생활이 돼버렸다."

―요즘 '신문의 위기'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기술의 발달, 생활 방식의 변화 때문 아니겠나. 그런데 작년 말 워런 버핏은 1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신문 그룹을 인수했다. 버핏은 신문의 장래를 낙관한다고 말했다. 또 신문사 인수를 계속할 생각이라는 말도 했다고 들었다. 복잡하게 얽힌 사안들을 독자들이 쉽게 알도록 정리해주는 게 바로 신문이다. 또 균형된 정보를 준다. 여론을 좋은 방향으로 계도하는 것 역시 신문이다. 비록 지금 힘들다고 해도 신문은 언론의 중심이다. 신문 종사자들은 기자정신, 저널리즘 정신에 좀 더 투철해야 한다. 신문의 장래가 괜찮다고 생각한다."

조순형 신임 위원장은…

5공화국 초기인 1981년 11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13대 한 차례를 제외하고 18대까지 7선 의원을 지냈다. 줄곧 야당 생활을 했으나 계보 정치와는 철저하게 거리를 뒀다. 온종일 국회 의원회관과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의정(議政) 자료를 준비하는 게 그의 일과였다. 술을 마시지 않았고 각종 정치적 모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국정감사와 청문회 등에서 항상'송곳'같은 지적을 해 '미스터 쓴소리' 내지 '미스터 바른말'이란 별명을 얻었고,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19대 국회 당선자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인물'로 뽑히기도 했다. 18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했다.1960년 민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다가 급사한 유석(維石) 조병옥이 부친이고, 작고한 6선의 조윤형 전 민한당 대표가 친형이다.

  • 조선일보 6기 독자권익보호委… 기사로 인한 피해 적극 도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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